익숙함이 언제나 진실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믿는 이유가 단지 너무 많이 들어 왔기 때문인 경우가 있다. 가족이 늘 그렇게 해 왔다는 이유로 어떤 방식이 옳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어떤 평가는 여러 대화에서 반복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할 만해 보이게 된다. 어떤 선택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가 더 이상 적합해서가 아니라 익숙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때도 있다. 일상에서 익숙함은 흔히 안전하다는 느낌과 함께한다. 그러나 익숙한 것과 옳은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이 차이를 깨닫는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의심하거나 축적된 경험을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은 매우 중요하고, 습관은 사람이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돕는다. 문제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한 느낌이 관찰과 검증, 독립적인 사고를 대신할 때 비로소 생긴다. 그러면 상황이 오래전에 바뀌었는데도 과거의 일이 진리의 겉모습을 걸칠 수 있다.

왜 익숙함은 쉽게 신뢰감을 만들어 내는가?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주는 단서를 흔히 찾는다. 여러 번 접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보다 경계심을 덜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그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고, 어느 정도 그 전개를 예측할 수 있으며, 처리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런 느낌은 특히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동시에 사고의 지름길도 만든다. 눈에 익은 것을 옳은 것과 동일시하고, 새로운 것은 의심스럽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감정을 숨기는 것이 강함의 표현이라고 여기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된 뒤에도 그 원칙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그 사람은 불평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며, 늘 괜찮은 척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삶의 방식이 오랫동안 이어졌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일부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개방성을 요구하는 관계를 만나거나 압박감이 너무 오래 쌓인 뒤에야, 익숙한 것이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복은 정보를 평가하는 방식도 바꾼다. 어떤 의견이 여러 번 등장하면, 등장 횟수가 정확성을 증명해 주지 않는데도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가정이나 직장,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는 다각적인 분석보다 단순한 판단이 더 빠르게 퍼지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것을 ‘전에 들어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은 기억하면서도, 어디서 어떤 상황에 들었는지,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는 잊을 수 있다.

익숙한 영역은 흔히 무엇을 가리는가?

타인에 대한 편견

편견은 대개 악의적인 생각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무해해 보이는 한마디, 개인적인 경험 또는 지나치게 선명하게 기억되는 몇 가지 사례에서 시작될 수 있다. 반복되면서 그 평가는 점차 하나의 틀로 변한다. 우리는 직업, 나이, 출신 지역, 옷차림 또는 과거의 한 가지 실수를 통해 사람을 바라본 뒤, 자신이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주목할 점은 익숙하다는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질문을 덜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떤 동료가 한 번 마감 기한을 넘긴 적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늦었던 경우는 쉽게 기억하고 약속을 지킨 경우는 지나칠 수 있다. 누군가가 한 번 서툴게 반응한 적이 있으면, 그 이후의 모든 행동도 계속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번 낡은 결론이 형성되고 나면, 새로운 정보는 흔히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끌려간다.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선택

많은 사람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직업, 소비 방식, 의사소통 방식 또는 삶의 리듬을 유지한다. 이런 안정감은 때로 매우 필요하지만, 모든 안정감이 적합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 단계에서 형성된 습관은 생활 조건, 건강, 책임 또는 우선순위가 바뀌면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해 왔다’고 말하며, 마치 어떤 선택이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만으로 그 선택을 지킬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지속된 시간만으로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한때 효과적이었던 방법이 새로운 목표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갈등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침묵이 나중에는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한때 기쁨을 주었던 관계도 현재는 익숙한 것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

우리가 자신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익숙한 영역이 될 수 있다. ‘나는 원래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이야’, ‘나는 의사소통을 잘하지 못해’, ‘나는 늘 잘못된 결정을 내려’와 같은 결론은 명확해 보이지만, 대개는 선택적으로 기억된 몇 가지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결론을 너무 오랫동안 믿으면 우리는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연습을 덜 하게 되고, 그러면 부족한 결과가 처음의 믿음이 옳았다는 증거로 이용된다.

이것이 일시적인 평가가 정체성으로 변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더 이상 ‘나는 이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표현 방식의 변화는 작아 보이지만 큰 영향을 미친다. 구체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 붙인 꼬리표는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을 포기하게 만들기 쉽다.

익숙하다는 느낌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첫 단계는 느낌과 결론을 분리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분명하다’고 느껴질 때,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다. 그것이 옳기 때문에 분명한가, 아니면 내가 그것을 여러 번 듣고 보았기 때문에 분명한가? 이 질문은 직관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무엇이 실제로 자신의 판단을 이끌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잠시 멈추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다음으로는 처음의 판단을 흔들 수 있는 세부 사항을 찾아보자. 어떤 사람이 늘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실패한 경우만 기억하는 대신 전체 상황을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어떤 계획이 분명히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계획의 어떤 점이 걱정되는지, 구체적인 데이터는 무엇인지, 단지 예상에 불과한 것은 무엇인지 확인해 보자. 좋은 결론은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질문을 통해 강화되거나 조정된다.

경험과 기계적인 반복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경험에는 결과를 관찰하고, 조건을 파악하며, 한정된 교훈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 포함된다. 반면 기계적인 반복은 단지 ‘예전에도 이렇게 했어’라는 말에 의존한다. 과거의 경험을 적용할 때는 현재의 상황이 여전히 비슷한지 물어야 한다. 목표와 사람, 자원이 달라졌다면 방식 역시 바뀌어야 할 수 있다.

또 다른 유용한 방법은 작은 규모로 시험해 보는 것이다. 낡은 습관을 즉시 부정하거나 삶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대신, 적당한 기간 동안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시도하고 결과를 관찰하며 조정할 수 있다. 발언하는 것을 늘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회의 전에 짧은 의견 하나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모든 일을 혼자 떠맡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업무의 일부를 맡겨 보고 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지켜볼 수 있다. 작은 실험은 변화를 자신과의 지나치게 큰 대결로 만들지 않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수집하도록 도와준다.

기반을 잃지 않으면서 열린 태도 유지하기

새로운 것이 모두 좋은 것도 아니고, 오래된 것을 모두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깨어 있는 삶은 모든 낯선 생각을 좇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다시 검토하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입증된 가치는 지켜 내는 능력으로 만들어진다.

가족과 전통, 습관은 소속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것들은 사람이 과거와 연결되고 삶에 필요한 의식을 만들어 내도록 돕는다. 그러나 뿌리를 소중히 여긴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길러 준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면서도, 필요하다고 깨달았을 때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충분한 자유를 가질 수 있다.

관계에서 열린 태도는 대개 자신이 상대방을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은 자신의 가장 나쁜 행동 하나로만 정의되지 않으며, 우리가 처음 그 사람에게 가졌던 인상만으로 정의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이 변할 수 있도록 허용할 때, 우리는 동시에 자신의 인식을 갱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셈이다. 이것은 상처를 넘겨버리거나 위험 신호를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된 꼬리표 하나가 아니라 전체 과정과 상황을 바탕으로 평가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갱신하는 능력이다

누구도 매일 모든 믿음을 다시 점검할 수는 없다. 바쁜 삶에서 사람은 행동하기 위해 단순한 규칙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목표는 결정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회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떤 믿음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직업을 바꾸거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거나, 반복되는 실패를 마주하거나, 계속해서 지친다고 느끼는 시기는 기존의 관점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신호인 경우가 많다.

갱신하는 능력에는 겸손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때 자신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던 판단이 더 이상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적합했던 조언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과거의 상황에서 매우 잘해 냈던 예전의 자신이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법을 더 배워야 할 수도 있다.

익숙하다는 느낌은 경험과 가치, 그리고 검증된 것들을 떠올리게 해 주는 신뢰할 만한 친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의 최종 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쉽게 내린 결론, 너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선택, 또는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붙인 꼬리표 앞에서는 잠시 시간을 내어 한 번 더 관찰해 보자. 때로는 짧은 멈춤만으로도 습관이 가리고 있던 것을 바라볼 가능성이 열리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