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지나도 움직이지 않는 시계

돌아온 날, 민은 어머니를 보기 전에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여러 번의 장마로 색이 짙어진 나무 장식장 위, 예전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 유리 표면에는 왼쪽 모서리에서 숫자 6 근처까지 이어지는 가느다란 흠집이 나 있었다. 시곗바늘 두 개는 8시 17분에 멈춰 있었다.

민은 그때를 아주 또렷하게 기억했다. 7월 말 어느 날 오후 8시 17분, 빗물이 문턱을 넘어 흘러들고 아버지가 낡은 여행 가방을 끌고 집을 나가던 순간이었다. 그것은 민이 대학에 가기 위해 도시로 떠나기 전,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민은 열여덟 살이었다. 어른들의 얼굴에 드리운 긴장감을 알아차릴 만큼은 컸지만, 한 가족이 어째서 시곗바늘이 빈틈 하나하나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침묵할 수 있는지는 이해하기에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

시계는 그날부터 고장 나 있었다. 어머니는 고치지도, 떼어 내지도 않았다. 집을 청소할 때마다 시계 주변의 먼지만 닦았다. 마치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물건도 방 안에서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듯이. 민이 여러 번 물어도 어머니는 시계가 낡아서 그냥 두어도 된다고 짧게 대답했다. 민은 더 묻지 않았다. 아버지와 관련된 일은 언제나 모자 둘 다 들어서기를 피하는 영역에 놓여 있었다.

서랍 속에 간직된 세월

민의 아버지는 골목 끝, 낮은 차양이 달린 작은 가게에서 시계를 고쳤다. 가게는 밝지 않았다. 높은 곳에 매달린 노란 전등 하나와 드라이버, 톱니바퀴, 돋보기로 가득한 나무 책상만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흔히 민의 아버지가 인내심 있는 손을 지녔다고 말했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시계도 그의 손을 거치면 몇 년은 더 움직일 수 있었다.

민은 그 가게를 좋아하지 않았다. 기계 기름 냄새와 아주 작은 부품 상자들, 그리고 아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고개를 들기보다 늘 시계 문자판에 얼굴을 바짝 가까이 대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다. 민이 어디든 함께 가자고 할 때마다 아버지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그 ‘조금’은 때로 오후 내내 이어졌다.

하지만 민은 나이가 들고 나서야 아버지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다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 서툴렀을 뿐이다. 아버지는 늘 말없이 가장 맛있는 생선 조각을 아들의 밥그릇에 올려 주고, 전구가 나가기 전에 갈아 끼우고, 민이 자전거를 타고 골목 어귀로 나갈 때마다 아주 천천히 뒤에서 걸었다. 그런 일들은 너무 사소해서 어릴 때의 민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좁은 셋방에서 혼자 살게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세심한 배려가 한때 지붕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덮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게가 어려움을 겪은 한 번의 일을 계기로 부모님은 불화를 겪기 시작했다. 시계를 고쳐 달라며 돈을 빌린 사람이 너무 오래 돈을 갚지 않았고, 임대료는 올랐으며, 어머니는 아버지가 좀 더 안정적인 일을 찾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저 가게 문을 더 일찍 닫고, 식탁에 더 오래 앉아 있었으며, 때때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시계가 해답을 내놓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때 민이 기억하는 것은 문 뒤에서 들려오던 논쟁의 소리뿐이었다. 어머니가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고, 아버지가 자존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중간에 끊겨 버린 말들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오후, 아버지는 갈색 여행 가방에 옷 몇 벌을 챙겨 넣었다. 어머니는 부엌에 서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민은 계단 곁에 서 있었다. 누구도 그를 내려오라고 부르지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해 주지도 않았다.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는 시계 아래에서 멈췄다. 이미 며칠 전부터 느리게 가고 있었는데도 손을 뻗어 추를 다시 조정했다. 민은 아버지가 문자판을 아주 오래 올려다보았던 것을 기억했다. 민은 뛰어 내려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묻고 싶었지만, 분노와 두려움이 그의 발을 붙잡았다. 문은 8시 17분에 닫혔다. 바깥의 천둥소리보다 작고 건조한 소리였지만, 집을 바꾸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거리는 단지 킬로미터로만 계산되지 않는다

그 후 몇 년 동안에도 아버지는 필요한 때마다 꼬박꼬박 돈을 보내왔다. 민이 입학했을 때 봉투 안에는 돈과 짧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따뜻한 옷 좀 더 사거라. 거기는 춥단다.” 아버지의 글씨는 가지런했고, 모든 획이 제자리에 놓인 톱니바퀴처럼 고르게 이어져 있었다.

민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 돈이 설명 한마디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이 떠났다는 사실, 어머니와 자신을 힘겨운 세월 속에 남겨 두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바랐다. 민의 마음속에서 갈색 여행 가방은 늘 버림받음의 가장 분명한 증거였다. 그는 어른들도 때로는 무력한 상태에서 떠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남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이상 모든 것을 상처 입히지 않을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서 떠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명절이면 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은 늘 아주 짧은 말만 주고받았다. 아버지가 공부는 어떠냐고 물으면 민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는 건강하시냐고 물으면 민은 여전히 일을 다니신다고 말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가게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민은 바쁘다며 말을 끊었다. 또 한 번은 민이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물으려 했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메마르게 들려서 다시 입을 다물었다.

시간은 온전하지 못한 통화들 속에서 흘러갔다. 민은 졸업했고, 직장을 구했으며, 다른 도시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늙어 갔고 관자놀이 양쪽의 머리카락은 점점 희어졌다. 시계는 여전히 8시 17분에 멈춰 있었다. 집 안에는 새 물건이 많이 늘어났지만, 누구도 그 시계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던 장마철 어느 아침, 어머니가 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침착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아프고, 지금 집에서 차로 몇 시간 떨어진 어느 마을에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웃이 낡은 수첩에서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고 했다.

민은 그 소식을 듣고 창가에 아주 오래 앉아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을 여러 번 상상해 보았지만, 자신이 아버지를 찾아가야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준비한 적이 없었다. 마음속에 간직해 온 원망의 말들이 갑자기 무겁고 서툴게 느껴졌다. 그것들은 너무 깊이 박힌 못과 같았다. 빼내고 싶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는 뺄 수 없는, 문에 박힌 못처럼.

낮은 차양 아래에서의 만남

민의 아버지는 시장 뒤편의 작은 셋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시계 수리점은 방 하나 정도의 크기였고, 벽에는 수십 개의 시계가 서로 어긋난 소리를 내며 걸려 있었다. 어떤 시계는 빠르게 가고, 어떤 시계는 느리게 가며, 어떤 시계는 완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민이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둥근 문자판 앞에 몸을 숙이고 가느다란 핀셋을 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들었고, 아들을 알아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한때 검고 숱 많던 머리카락은 이제 성기고 거의 다 희어져 있었다. 아버지의 어깨는 민의 기억 속보다 작아져 있었다. 아버지는 웃으며 먼 길은 힘들지 않았느냐고 말한 뒤, 민에게 배고프지 않느냐고 물었다. 여전히 예전과 같은 방식의 질문이었다. 서툴고 에둘러 묻는 방식.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이름 붙이지 못한 세월이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벽 주위의 시계들을 바라보다가 아버지에게 왜 여전히 낡은 물건들을 고치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더니, 많은 사람이 시간을 알아야 해서 시계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가족의 물건을 간직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집 안에 한때 존재했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고 했다. 고칠 수 있으면 고치고, 고칠 수 없어도 원인을 찾아보려 한다고 했다.

그 대답에 민은 집에 있는 시계가 떠올랐다. 민은 아버지에게 그해 그 오후를 아직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핀셋을 내려놓고, 빗물이 줄지어 흘러내리는 차양 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기억한다고 말했다. 다른 일을 구하면 며칠 뒤에 돌아올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집안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돌아올 때마다 민의 어머니를 화나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에 더욱 부끄러워졌다. 돈은 계속 보내고 안부도 물었지만, 자신이 닫아 버린 문을 어떻게 다시 넘어설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

민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진실이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설명은 상처를 지워 주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 준다. 아버지는 오해받은 영웅도 아니었고, 모든 일에서 완전히 잘못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남은 자존심이라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해 너무 오랫동안 침묵을 선택한, 나약한 한 남자였다.

민은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쓸쓸하게 웃으며, 네가 어렸을 때는 네게 강한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네가 자란 뒤에는 자신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 네가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민이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물은 많지 않았다. 무릎 위에 놓인 손등으로 몇 방울이 떨어졌을 뿐이다. 민은 곧바로 아버지를 안지 않았다. 그는 마주 앉아 침묵이 한동안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수천 개의 톱니바퀴를 고쳤던 손가락은 이제 가볍게 떨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따뜻했다.

모든 시계가 다시 움직일 필요는 없다

민은 아버지와 사흘을 함께 지냈다. 가게를 정리하고, 고장 난 시계들을 분류하고, 아버지를 병원에 데려갔다. 두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자주 끓이던 새콤한 국, 오래된 집, 민이 한때 잃어버렸던 자전거, 그리고 아버지가 골동품 시계 하나 때문에 손님에게 붙잡혀 밤새도록 가게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두 사람은 며칠 안에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아직 남아 있는 질문들이 있었고, 사라지지 않은 상처들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처음으로 민은 아버지의 침묵을 절대적인 벽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 뒤에는 두려움과 열등감, 그리고 이름 붙이는 법을 몰랐던 사랑이 있었다.

떠나기 전, 민은 아버지의 낡은 손목시계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고쳐서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냥 두라고, 몸이 건강해지면 고치겠다고 말했다. 민은 막연한 약속을 기다리고 싶지 않아 이달 말에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민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그 약속이 흐지부지 남겨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벽시계의 먼지를 닦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행에 대해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민은 아버지가 어머니가 새콤한 국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으며, 어머니가 오래전에 만들어 준 손수건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유리 표면을 닦으며 들었고, 그 말을 듣자 손길이 느려졌다.

어머니는 어떤 세월에는 너무 화가 나서 아버지가 돌아오더라도 문을 열어 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노도 결국에는 지치는 법이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가리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이 여전히 무사하다는 것을 아는 일이라고 했다.

민은 시계 아래 서서 두 바늘이 여전히 8시 17분에 멈춰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고치러 갈 생각이 있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렇게 두라고 했다. 어떤 일들은 예전과 똑같이 되돌릴 필요가 없으며, 그저 일어난 그대로 올바르게 인정받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민은 이해했다. 시계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의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며 젊음과 자존심, 하지 못한 말들과 사람들이 첫 번째 판단이 아니라 연민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법을 배울 기회를 함께 데려갔다.

몇 달 뒤, 아버지는 옛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곧바로 예전과 같은 부부가 되지는 않았다. 두 사람에게는 침묵의 식사도 있었고, 짧은 논쟁도 있었으며, 각자 마당의 한쪽에 앉아 보내는 오후도 많았다. 하지만 문은 더 이상 굳게 닫혀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부엌 선반을 고쳤고, 어머니는 처마 밖에 옷을 널었다. 민은 주말마다 집에 들렀다.

시계는 여전히 벽에 걸려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시계를 떼어 내 뒷뚜껑을 열고, 여러 해 동안 쌓인 먼지를 깨끗이 닦아 냈다. 작은 톱니바퀴 하나를 갈고 기름을 친 뒤 시계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분침이 움직이자 거실에 똑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고, 민도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 규칙적인 소리를 듣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소리는 그들을 옛날의 그 오후로 되돌려 놓지도 않았고, 잃어버린 것들을 지워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죽은 것처럼 보였던 물건도 때로는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누군가 충분히 인내심을 가지고 그것을 열어 고장 난 부품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가장 작은 것부터 고치기 시작한다면 말이다.

민은 아버지를 바라본 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마 가족이란 모든 것이 언제나 온전한 곳은 아닐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가족은 사람들이 자신의 균열을 안고 돌아와, 한때 숨겨 두었던 말을 꺼내는 법을 배우고, 용서란 잊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다. 용서란 때로 오래된 한순간이 남은 인생 전체를 계속 결정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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