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굽이굽이 흐르는 강의 끝자락에 바이러우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강은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물이 불어나는 계절이면 강물은 은빛 거울처럼 펼쳐져 마을을 두 강변으로 나누었다. 이쪽에는 대나무 숲 아래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이 있었고, 저쪽에는 논과 현청 소재지 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강을 건너려면 오래된 나무다리를 건너거나, 반평생 넘게 나루터를 지켜 온 뱃사공 럼 아저씨의 나룻배를 빌려야 했다.
나무다리는 아주 오래전에 세워진 것이었다. 널빤지 하나하나에는 햇빛과 비바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어떤 곳은 위로 휘어져 있었으며, 어떤 곳은 길게 금이 가 있었다. 낮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건널 수 있었지만, 누구나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다리는 어둡고 위험해졌다. 다리 입구에 걸어 둔 석유등이 바람에 꺼지기라도 하면, 건너던 사람은 미끄러져 차가운 강물에 빠질 수 있었다.
마을에는 안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강 나루터 가까이에 있는 초가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안의 부모님은 안이 어릴 때부터 먼 곳에 일하러 갔고, 할머니는 안을 돌보는 한편 바구니와 소쿠리를 엮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안에게는 예쁜 장난감도, 새 옷도 없었지만 밝은 눈과 특별한 습관이 있었다. 매일 저녁 할머니의 마당 청소를 도운 뒤면, 안은 나루터로 나가 물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곤 했다.
안은 강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말했다. 물이 잔잔하게 흐를 때면 익어 가는 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물이 높이 불어날 때면 저 멀리 상류에서 내린 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초승달이 뜬 밤이면 강은 무언가를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 듯 그저 조용히 있었다.
잊힌 등불
장마 끝 무렵의 어느 날 밤, 안은 시장에서 바구니와 소쿠리를 모두 팔고 할머니와 함께 돌아오고 있었다. 달은 뜨지 않았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강에서 불어온 바람에 대나무들이 서로 부딪히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이 다리 입구에 도착했을 때, 늘 켜져 있던 석유등은 언제 꺼졌는지 이미 꺼져 있었다.
할머니는 안의 손을 잡고, 럼 아저씨를 찾아 나룻배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려고 되돌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 다리 건너편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한 여인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리를 건너려 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미끄러운 널빤지 사이에 꼼짝도 못 하고 서 있었던 것이다.
안은 눈앞의 어둠을 바라보다가 불이 식어 버린 석유등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어깨에 두르고 있던 천 스카프를 풀어 손을 감싸 바람을 막고, 몸을 숙여 불을 붙였다. 첫 번째 성냥은 곧바로 꺼졌다. 두 번째 성냥도 잠깐 반짝였을 뿐 사라져 버렸다. 세 번째 성냥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작은 불꽃이 심지에 옮겨붙었다.
희미한 빛이 퍼져 나갔다. 몇 걸음 앞을 비출 수 있을 만큼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리 건너편의 여인은 그 빛을 보았다. 여인은 아이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천천히 걸었다. 강가에 도착한 여인은 몸을 숙여 안에게 고맙다고 말했고, 아이는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이렇게 작은 등불이 어떻게 다리 전체를 비출 수 있겠니?” 할머니가 안의 이마에 맺힌 물방울을 닦아 주며 물었다.
안은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리 전체를 비출 필요는 없어요, 할머니. 다음 발걸음 하나만 비출 수 있으면 충분해요.”
할머니는 그 말을 이웃 몇 사람에게 전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 대부분은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모두 다리가 낡았고 등불이 고장 난 것은 촌장과 책임자들이 처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다리를 건널 때 좀 더 조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밤길의 발걸음
그날부터 안은 등불을 돌보는 일을 스스로 맡았다. 매일 저녁 할머니에게 기름을 조금 얻어 유리 표면을 깨끗이 닦고 심지를 점검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오래된 양철 조각을 바깥쪽에 대어 불꽃이 꺼지지 않게 했다. 어떤 날에는 기름이 부족해서, 이웃집들을 돌아다니며 남은 양초 조각을 주워 녹인 다음 솜실과 섞어 임시 연료를 만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여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다가 불빛이 보이면 그대로 지나갔다. 몇몇 사람은 안이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까지 했다. 생선 장수 뚜 아저씨는 그저 불장난을 하는 것뿐이라고 했고, 찻집 주인은 그런 일은 어른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럼 아저씨가 심한 열병에 걸렸다. 나룻배는 나루를 떠날 수 없었고, 강 건너편에는 아픈 사람을 진료소로 데려가야 하는 가족이 있었다. 결국 그 집 아들은 아버지를 부축해 다리를 건너야 했다. 날은 어두웠고 강물은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지만, 안의 등불 덕분에 그들은 다리 한가운데 부러진 널빤지를 발견하고 피해 갈 길을 찾았다. 그 빛이 없었다면 두 사람 모두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빠졌을지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그 소식은 바이러우 전체에 퍼졌다. 등불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등불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작은 기름병을 가져왔고, 다른 누군가는 온전한 유리판 하나를 가져왔다. 생선 장수 뚜 아저씨는 등불 주위의 바람막이 상자를 고쳐 주었다. 찻집 주인은 양초 몇 개를 보태며 기름이 떨어지면 언제든 가져가라고 안에게 말했다.
안은 매우 기뻤지만,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다리가 어두우면 등불을 켜고, 다른 사람이 무서워하면 기다려 주고, 널빤지가 헐거우면 뒤에 오는 사람에게 알려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 일들은 너무 작아서 누가 했는지 굳이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작은 일들이 서로 곁에 놓이자 나루터는 변하기 시작했다.
마을 모두의 다리
몇 주 뒤, 촌장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회의를 열었다. 촌장은 낡은 상태로는 다리가 영원히 버틸 수 없다고 말했다. 돈이 많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그전에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마을의 각 가정에 힘을 조금씩 보태 달라고 요청했다. 대나무가 있는 집은 대나무를 내고, 나무가 있는 집은 나무를 냈으며, 힘이 센 사람은 낡은 널빤지를 해체하는 일에 참여하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밧줄을 엮고 난간을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해서 돈을 낼 수 없다고 여전히 불평했다. 촌장은 누구나 반드시 돈으로 보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루의 노동, 대나무 한 다발, 못 한 줌, 혹은 다리를 고치는 사람들을 위한 한 끼 식사도 자발적인 마음으로 내놓는다면 모두 똑같이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럼 아저씨는 몸이 아직 약했지만 지팡이를 짚고 나루터로 나와 물살이 세게 소용돌이치는 곳과 다리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말뚝을 박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안의 할머니는 마을의 노인들과 함께 밥을 지었다. 아이들은 떨어진 못을 줍고, 밧줄을 묶고, 어른들에게 물을 날랐다. 안을 비웃었던 사람들까지도 찾아와 힘을 보탰다.
다리를 고치는 일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그동안에도 나루터 입구의 등불은 매일 저녁 켜졌다. 이제 안은 혼자 일할 필요가 없었다. 해 질 무렵이면 누군가 늘 기름을 가져오거나 곁에 앉아 불을 지켰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밤이면 사람들은 번갈아 가며 임시 지붕을 씌워 등불을 가려 주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고치는 것만 중요한 일이 아니라, 모두에게 속한 것을 함께 돌보는 방법을 마을 사람들이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새 다리가 완성된 날, 바이러우 사람들은 강가에서 소박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다리는 여전히 나무로 만들어졌고 누군가 건너면 여전히 살짝 흔들렸지만, 양쪽에는 튼튼한 난간이 생겼다. 널빤지는 빈틈없이 맞물려 있었고, 다리 입구에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작은 지붕도 세워졌다. 낡은 등불은 새 유리 상자 안에 놓였고, 전보다 더 밝게 빛났다.
촌장은 다리에 공을 세운 사람의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다. 촌장은 안의 이름을 따서 ‘안 다리’라고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소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였다면 이 다리는 서 있을 수 없었을 거예요.” 안이 말했다. “모든 사람의 이름을 가져야 해요.”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 의논한 끝에 그들은 다리를 ‘함께 다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소박한 이름이었지만, 모두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빛
여러 해가 흘러 안은 자라났다. 안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바이러우를 떠나 읍내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강가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가르치는 교실을 열었다. 그때의 다리는 더 튼튼한 다리로 바뀌었지만, 낡은 등불은 여전히 마을 회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누군가 왜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버리지 않았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이가 든 안의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달 없는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는 처음의 빛이 아주 작은 불꽃 하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 불꽃은 강 전체의 어둠을 몰아낼 수도 없었고, 물의 흐름을 멈출 수도 없었으며, 혼자서 다리를 고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음 발걸음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발걸음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서로를 보게 된 뒤에는 쉽게 등을 돌리고 외면할 수 없었다.
강가의 등불 이야기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졌다. 마을의 아이들은 모두 모든 선한 일이 힘이나 돈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한 사람이 몸을 숙여 널빤지 조각 하나를 줍고, 유리판 하나를 닦고, 불꽃 하나를 지키거나, 다른 사람이 위험한 곳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는 데서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밤이 내려올 때마다 강가의 등불은 여전히 켜졌다. 그 등불은 삶에서 어둠이 모두 사라지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밤이든 작은 빛 하나가 낯선 사람들이 서로를 찾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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