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바람을 부르는 종

옛날 옛적, 푸르른 계곡 끝에 보래우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은 낮은 언덕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고, 사방에는 논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었으며 맑고 투명한 시냇물 하나가 마을을 가로질러 흘렀습니다. 마을의 노인들은 예전에 보래우에는 늘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바람은 대나무 숲 사이를 지나 논을 살랑이게 하고, 귤나무 꽃 향기를 집집마다 실어 날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바람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아침에는 여전히 해가 떠오르고 저녁에는 여전히 달이 떴지만, 마을의 공기는 언제나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뭇잎은 흔들리지 않았고, 시냇물 표면은 거울처럼 잔잔했으며, 아이들이 종이로 만든 바람개비는 한 바퀴도 돌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그저 바람이 잠잠한 계절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위는 무더워졌습니다. 들판의 벼는 시원한 기운이 부족해 축 늘어졌고, 밭의 호박 덩굴은 시들어 버렸으며, 물소들은 한낮 내내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어른들은 불평하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더는 뛰어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마을에는 안이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안은 시냇가 기와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안은 친구들보다 건강하거나 민첩하지는 않았지만, 귀가 아주 밝았습니다. 안은 돌 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나무 벽 안을 기어 다니는 개미 소리, 초여름 첫 빗방울이 초가지붕에 닿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소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놓치는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단다.”

어느 날 오후, 안은 뒤뜰에서 장작을 줍다가 아주 작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새소리도 아니고, 마른 나뭇잎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소리는 맑고 투명해서, 마치 도자기 그릇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 같았습니다.

안은 그 소리를 따라가다가 목화나무 아래에서 흙을 빚고 있는 노인을 발견했습니다. 노인은 길고 하얀 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빛이 바랜 갈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흙으로 가득 찬 바구니를 곁에 두고 있었습니다. 노인의 앞에는 꽃잎처럼 생긴 작은 구운 흙 조각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지금 무엇을 만들고 계세요?” 안이 물었습니다.

노인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바람을 부르는 종을 만들고 있단다. 하지만 아직 소리가 나지 않는구나.”

안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이 어떻게 바람을 부를 수 있어요?”

“어떤 종들은 소리로 바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란다.”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로 바람을 부르지. 만든 사람이 바람을 자기 혼자만 간직하려고 생각한다면 그 종은 침묵할 거야.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안다면, 잠들어 있는 바람의 흐름을 깨울 수 있단다.”

노인은 안에게 아직 굽지 않은 흙종 하나를 건넸습니다. 종은 주먹만큼 작았고, 겉에는 물줄기처럼 구불구불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의 바닥에는 아직 작은 구멍 하나가 비어 있었습니다.

“이 종을 완성하려면 세 가지를 찾아야 한단다.” 노인이 말했습니다. “나누어 준 물 한 방울, 건네준 씨앗 하나,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말이지. 억지로 빼앗아서는 안 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내어 줄 때만 그것들이 나타난단다.”

안은 종을 품에 안고 노인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노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의 당부는 안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안은 세 가지 선물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나누어 준 물 한 방울

안이 처음 발견한 것은 마을 끝집에서였습니다. 그곳에서는 티와 나 남매가 물이 다 마른 항아리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계속된 더위 때문에 마을의 우물은 수위가 아주 낮아져 있었습니다. 각 가정은 마시고 요리할 물을 조금씩만 퍼 갈 수 있었습니다.

티와 나는 막 물 한 국자를 길어 오다가 안을 보았습니다. 안은 두 사람에게 종을 채울 물 한 방울을 나누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티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우리 집도 저녁까지 쓸 물이 모자라. 한 방울이 아주 작아도 물은 물이야.”

안은 그 말을 이해했기에 조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 아이 곁에 앉아 항아리를 닦아 주고, 우물 입구에 나뭇잎을 덮어 먼지가 떨어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런 다음 안은 남매와 함께 얼마 안 되는 물을 집 안으로 가져가 친구들의 할머니에게 먼저 따라 드렸습니다.

정오가 되자 티와 나의 할머니는 안의 손에 들린 흙종을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물 한 국자를 떠서 손바닥에 조금 따른 뒤 말했습니다. “국자 가득 줄 수는 없지만, 한 방울은 나눌 수 있단다.”

물방울이 종 안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종의 바닥에 이슬방울만큼 작은 투명한 보석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안은 할머니에게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건네준 씨앗 하나

두 번째 선물은 안을 마을에서 가장 큰 호박을 길러 내는 르우 아저씨의 밭으로 이끌었습니다. 르우 아저씨는 신중한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좋은 씨앗은 무엇이든 따로 천 주머니에 보관했고, 자신의 밭에만 심었습니다.

안은 아저씨에게 종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르우 아저씨는 이야기를 다 듣고 호박씨가 든 주머니를 손으로 만지며 말했습니다. “아주 튼튼한 씨앗이 하나 있단다. 하지만 네게 주면, 내가 큰 호박을 하나 더 기를 기회를 잃게 되지.”

안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소녀는 르우 아저씨의 넓은 밭을 바라본 뒤, 울타리 밖의 메마른 밭고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새 농사를 지을 씨앗이 더는 충분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안이 물었습니다. “아저씨가 씨앗 하나를 주시면, 제가 시냇가 옆 공동 밭에 심어도 될까요? 열매가 열리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씨앗을 받아서 계속 심을 수 있도록요.”

르우 아저씨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자기 밭만을 위한 큰 호박 하나만 생각했지, 작은 씨앗 하나가 그렇게 멀리 퍼져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저씨는 연한 노란색 호박씨 하나를 안의 손바닥에 올려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돌볼 수 있는 곳에 심으렴.”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그 나무가 살아남으면, 다른 집에도 씨앗을 더 나누어 주마.”

안은 호박씨를 시냇가 옆 밭으로 가져갔습니다. 소녀는 작은 구멍을 파고 씨앗을 넣은 뒤 흙을 덮었으며, 마을 아이들과 함께 한 국자씩 아껴 가며 번갈아 물을 주었습니다. 씨앗이 땅속에 조용히 자리 잡자, 종 안에는 아주 작은 푸른 싹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

마지막 선물은 안이 생각했던 것보다 찾기 어려웠습니다. 소녀는 마을 곳곳을 다니며 서로 다툰 사람들을 만났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잘못이 이웃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왜 화가 났는지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은 절대로 사과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안은 마을 창고 뒤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오라는 남자아이가 부러진 바람개비 앞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바오는 대나무로 장난감을 만드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아침에 민이라는 친구가 바오의 바람개비를 들어 보다가 실수로 날개 하나를 부러뜨렸습니다. 화가 난 바오는 민의 대나무 바구니를 잡아당겼고, 대나무 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안이 다가가자 바오가 말했습니다. “민이가 먼저 내 바람개비를 망가뜨렸어. 난 사과할 필요 없어.”

안은 대나무 살 하나를 주워 들고 물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기만 기다리면, 바람개비가 저절로 다시 고쳐질까?”

바오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여전히 화가 나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뒤 바오는 민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가 네 대나무 바구니를 잡아당긴 건 미안해.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하지만 내 바람개비가 부러져서 나도 속상했어.”

민은 잠시 말이 없다가 대답했습니다. “나도 네 물건을 먼저 물어보지 않고 들어서 미안해. 내가 너와 함께 다시 고칠게.”

두 아이는 나란히 앉아 부러지지 않은 대나무 살로 새 바람개비를 만들었습니다. 바오와 민이 함께 사과의 말을 건네자, 흙종 안에 달빛처럼 가느다란 은빛 실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세 가지 선물이 모두 갖추어진 것입니다.

밤에 울린 종소리

안은 종을 목화나무 아래로 다시 가져갔습니다. 전에 만났던 노인은 그곳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보석 같은 물방울과 푸른 싹, 은빛 실을 종 바닥의 빈 곳에 넣었습니다. 작은 것들은 갑자기 서로 어우러져 따뜻하게 빛나는 흙덩이로 변했습니다. 노인은 그것으로 종의 바닥을 단단히 막은 뒤 안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이제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곳에 매달거라.” 노인이 말했습니다.

안과 마을 사람들은 공동 마당 한가운데 있는 목화나무에 종을 매달았습니다. 그날 밤,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았는데도 모두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티와 나는 물이 담긴 그릇을 가져왔습니다. 르우 아저씨는 씨앗 주머니를 더 가져왔습니다. 바오와 민은 새로 고친 바람개비를 들고 왔습니다.

안이 종을 살며시 건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종 안에서 아주 가느다란 울림이 퍼져 나왔습니다. 그 울림은 마을 마당을 지나 지붕 위를 미끄러지고, 시냇물 표면을 따라 흐른 뒤 언덕 비탈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때 목화나무의 나뭇잎 하나가 흔들렸습니다.

곧 두 번째 잎도 따라 흔들렸습니다. 대나무 가지들이 바스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냇물 표면에는 작은 동그라미가 일렁였습니다. 먼 언덕 쪽에서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계곡으로 몰려 내려와 흙내음과 들꽃 향기를 실어 왔습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어른들은 손을 내밀어 바람을 맞았습니다. 바람개비들이 차례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들판에서는 벼가 파도처럼 차례차례 몸을 기울이며 인사하는 듯했습니다.

그날부터 보래우에는 다시 바람이 불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바람이 종 덕분에만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가진 것이 부족할 때에도 나눌 줄 알게 되었고,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을 건넬 줄 알게 되었으며, 분노가 마음 사이의 벽이 되기 전에 사과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바람이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르우 아저씨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저씨는 집집마다 씨앗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티와 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우물을 지켰습니다. 바오와 민은 바람개비를 더 많이 만들어 길가에 놓아 두었고, 어떤 아이라도 가지고 놀 수 있게 했습니다.

안은 매일 밤 목화나무 아래에 앉아 종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떤 때는 종이 아주 또렷하게 울렸고, 어떤 때는 바람 속에서 살며시 떨리기만 했습니다. 안은 종이 언제나 크게 울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마을에 서로를 기꺼이 생각하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바람을 부르는 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소녀 안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일이 대개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물 한 방울, 씨앗 하나, 사과 한마디는 하나씩 따로 놓고 보면 대단하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건네면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마치 가벼운 바람 한 줄기가 온 들판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