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 곁의 등불
옛날 옛적, 푸른 계곡 한가운데 자리한 한 마을에 마을 입구에서 개울가까지 이어지는 긴 비탈길이 있었습니다. 비탈길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구불구불했고, 울퉁불퉁한 돌이 많았습니다. 낮에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뛰놀았고, 어른들은 물소와 소를 끌고 지나갔으며, 채소를 실은 수레들은 이른 아침마다 천천히 굴러갔습니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비탈길은 무서운 곳으로 변했습니다. 길 양쪽에는 무성한 덤불이 있었고, 가지와 잎사귀가 커다란 손처럼 서로 얽혀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 그림자가 땅 위에서 흔들려, 길을 가는 사람들은 누군가 조용히 뒤따라 걷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비탈길 끝에는 낡은 돌등 하나가 있었습니다. 등불은 높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었고, 기와지붕이 덮여 있었으며 작은 청동 문도 달려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등불이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전해 왔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처음 불을 밝힌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매일 저녁이면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기름을 가져와 등불을 밝혔습니다. 등불에서 나오는 따뜻한 노란빛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돌계단을 잘 보고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안은 아홉 살 소녀로, 비탈길 어귀 가까이에 있는 통나무집에서 어머니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이는 눈이 반짝였고, 검은 머리는 늘 파란 천 띠로 묶고 다녔습니다. 안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특히 마음씨 좋은 사람들, 서로를 도울 줄 아는 동물들, 그리고 절대 꺼지지 않는 등불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매일 오후, 안은 작은 물동이를 들고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갔습니다. 가는 길마다 아이는 비탈길 끝을 내려다보며 등불이 켜졌는지 확인했습니다. 안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청동 문 뒤에서 불꽃이 환하게 타오르는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불빛이 콩알만큼 작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넓게 퍼져 길 위에 부드러운 황금빛 원을 드리웠습니다.
등불을 밝힐 사람이 없던 비 오는 밤
늦은 계절의 어느 날 저녁, 먹구름이 아주 빠르게 몰려왔습니다. 바람이 집 지붕 사이로 세차게 불어 마른 잎들이 마당 가득 날아다녔습니다. 안의 어머니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큰비가 올 것 같으니 창문을 일찍 닫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날은 마을 끝에 사는 목수 람 아저씨가 기름을 가져가 등불을 밝힐 차례였습니다. 그러나 람 아저씨는 아침부터 아픈 동생을 돌보기 위해 이웃 마을에 가 있었습니다.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마을의 다른 사람들도 마당에 널어 둔 벼를 거두고 가축을 외양간으로 들이느라 바빴습니다.
날이 막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빗방울이 기와지붕을 두드리며 톡톡 소리를 냈습니다. 바람은 빗물을 새하얀 장막처럼 휘몰아쳤습니다. 안은 문틈으로 비탈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돌등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엄마, 오늘 밤에는 아무도 등불을 켜지 않아요?” 안이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작 다발을 다시 묶으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마 모두 잊어버린 모양이구나. 이렇게 비가 오는데 누구도 밖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안은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채소를 짊어진 농부 아저씨일 수도 있고, 어린아이를 안은 어머니일 수도 있으며, 눈이 이미 어두워진 노인일 수도 있었습니다. 비탈길이 칠흑같이 어둡다면 그들은 어떻게 걸어올까요?
“제가 등불을 그곳에 가져갈래요.” 안이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탁자 위의 작은 기름등을 바라본 뒤 문밖의 빗줄기를 보았습니다. “길이 아주 미끄러울 거야. 너는 아직 어리니 혼자 갈 수 없어.”
안은 어머니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야기를 듣자 장롱 안에서 낡은 우비와 작은 기름병 하나를 꺼냈습니다.
“옛날에 할머니도 그 등불을 밝히러 가곤 했단다.”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어둠이 무섭지 않아서가 아니야. 빛이 없으면 누군가는 더 무서워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안의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스러웠지만, 결국 아이와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어머니는 기름등을 들고, 안은 기름병을 가슴에 꼭 안았습니다. 두 사람은 우비를 걸치고 집 밖으로 나섰습니다.
바람 속의 빛
비탈길은 안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미끄러웠습니다. 빗물이 돌멩이들 사이로 줄줄 흘렀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안은 기름병이 날아가지 않도록 몸을 숙여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한 걸음씩 아주 천천히 걸었습니다.
두 사람이 돌등에 도착했을 때, 청동 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안에는 불씨 하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안의 어머니는 돌 받침대를 닦아 말리고 작은 칸에 기름을 부은 뒤 심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불이 붙자마자 세찬 바람이 문틈으로 들이쳐 불꽃을 휙 꺼 버렸습니다.
안은 몸으로 문 앞을 가렸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불꽃은 떨리며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꺼졌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구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비가 조금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어.”
안은 위쪽의 칠흑같이 어두운 비탈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두 사람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빗소리 사이로 길가의 덤불 쪽에서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의 어머니는 등불을 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나무 밑에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는 갈색 옷을 흠뻑 젖은 채 입고 있었고, 곁에는 대나무 바구니 하나가 엎어져 있었습니다.
“너는 누구니? 왜 여기 앉아 있니?” 안의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소년은 흐느끼며 자신은 띠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숲에 죽순을 따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반딧불이 한 마리를 쫓느라 길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개울 쪽으로 자신을 찾으러 갔고, 띠는 물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더는 앞으로 가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안은 목에 두르고 있던 파란 스카프를 풀어 띠의 어깨에 둘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구운 감자 하나를 꺼내 소년에게 건넸습니다.
“이제 울지 마. 우리가 너를 집에 데려다줄게.” 안이 말했습니다.
안의 어머니는 등불을 바라본 뒤 두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띠의 아버지를 찾으려면 빛이 필요해. 하지만 등불이 아직 켜지지 않았구나.”
안은 할머니가 늘 불씨를 보관하는 데 쓰던 작은 나무 상자를 떠올렸습니다. 할머니는 불씨를 잘 가려 두면 아주 오래 따뜻함을 간직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안은 기름병에서 마른 천 조각 하나를 꺼내 돌돌 말아 새 심지를 만든 뒤, 두 손으로 불꽃을 감쌌습니다. 안의 어머니는 앞에 서서 바람을 막았습니다. 띠도 다른 쪽에서 두 손으로 바람을 가렸습니다.
이번에는 불꽃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불꽃은 작았지만 끈질겼습니다. 청동 문틈으로 노란빛 한 줄기가 젖은 돌 위로 비쳤습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바람도 여전히 불었지만, 등불은 자신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은 사람들
등불의 빛은 아주 멀리까지 비추지는 못했지만, 가까운 돌계단을 분명히 밝히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안의 어머니는 띠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걸었습니다. 안은 작은 기름등을 들고 앞장섰습니다. 세 사람은 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걸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울가 쪽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띠의 아버지가 젖은 횃불을 들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비탈길을 거슬러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길 끝에서 빛이 보이자 그는 아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띠를 와락 끌어안고 안 모녀에게 거듭 감사했습니다. 띠는 아버지에게 꼭 붙었지만, 여전히 뒤돌아 돌등을 바라보았습니다.
“등불이 켜지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나무 밑에 앉아 있었을 거예요.” 소년이 말했습니다.
안이 미소 지었습니다. “등불만 그런 게 아니야. 엄마와 언니도 너를 찾아냈잖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다시 말발굽 소리가 덜그럭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 여자가 채소를 실은 수레를 비탈길 위로 끌어 올리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수레바퀴는 두 개의 돌 사이에 끼어 있었고, 말은 진흙 위에서 발을 미끄러뜨리고 있었습니다. 등불의 빛 덕분에 사람들은 서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띠의 아버지는 아들을 내려놓고 안의 어머니와 함께 그 여자와 수레를 도왔습니다. 안과 띠는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바퀴 밑에 깔았습니다.
수레가 미끄러운 곳을 지나가자 여자는 모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돌등은 여전히 비탈길 끝에서 타오르며 떨어지는 빗방울 위로 황금빛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왔을 때, 안은 할머니가 화롯불 곁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아이의 머리를 닦아 주며 물었습니다.
“이제 너는 왜 매일 밤 등불을 밝혀야 하는지 알겠니?”
안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누군가 빛을 필요로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 모르더라도요.”
할머니가 미소 지었습니다. “그래. 어떤 선행은 곧바로 보답을 가져다주지 않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 일은 다른 사람의 길을 조금 덜 어둡게 해 주지.”
이어지는 불꽃
다음 날 아침, 비 오는 밤의 이야기는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람 아저씨가 제때 돌아올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안 모녀가 아저씨를 대신해 등불을 지켰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등불을 밝히는 일은 다음 날로 미뤄도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탓했습니다.
그날 오후, 마을 사람들은 반얀나무 곁에 모였습니다. 이장이 새로운 당번표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매일 밤 두 사람이 함께 등불을 밝히도록 해서, 한 사람이 바쁘면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더 큰 아이들에게는 유리문을 닦는 법을 가르쳤고, 마을의 노인들은 기름과 심지를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이웃 마을의 띠도 자주 놀러 왔습니다. 띠는 비에 망가진 바구니를 대신할 새 대나무 바구니를 안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안은 비 오는 밤에 띠의 몸을 말려 주는 데 썼던 낡은 스카프 대신, 새 파란 스카프 하나를 띠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때부터 비탈길 끝의 돌등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밝혀졌습니다. 맑은 밤에는 등불의 빛이 텅 빈 길만 비추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날에도 불꽃은 낡은 기와지붕 아래에서 조용히 타올랐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밤들이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빛은 누군가 보고 있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빛은 또한 이곳에는 언제나 돌아갈 길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몇 년 뒤, 안은 자라 먼 곳으로 공부하러 마을을 떠났습니다. 안은 돌아올 때마다 가장 먼저 비탈길 끝으로 가서 등불을 살폈습니다. 낡은 등불은 수리되었고, 돌 받침대에는 푸른 이끼가 덮였으며, 청동 문은 전보다 반짝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의 불꽃은 어느 비 오는 밤처럼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안이 어린아이들에게 등불을 돌보는 법을 가르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안은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밤하늘 전체를 몰아낼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곳을 볼 수 있도록 돕기에는 충분하다고요.
그리고 정말로, 비탈길 끝의 등불에서 많은 좋은 일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길을 보고는 멈춰 서서 다른 사람을 도왔습니다. 한 아이는 불꽃을 위해 바람을 막아 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한 가족은 공동의 일이 그 누구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빛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베풀어진 친절한 말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밤마다 누군가 비탈길을 지나가면, 계곡 한가운데에서 돌등이 부드러운 황금빛을 내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귀 기울여 들으면,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길을 찾는 사람을 위해 불꽃 하나를 지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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