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이 고향으로 돌아오던 밤, 기차는 평소보다 거의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빗줄기는 유리창을 비스듬히 세차게 때렸고, 젖은 흙냄새와 선로의 차가운 쇠 냄새를 함께 실어 왔다. 기차가 멈추자 작은 승강장에는 서둘러 여행 가방을 끌고 기다리던 차를 향해 달려가는 몇 사람만 남았다. 민은 물에 번져 흐릿해진 창밖을 바라보며 한동안 객차 안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곳을 떠난 지 십이 년이었지만, 승강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모든 것이 여전히 기억 한구석에 고스란히 놓여 있는 듯했다.
역 대합실 처마 밑에는 노란 등불 하나가 켜져 있었다. 빛바랜 금속 갓이 달린 낡은 등으로, 멀리까지 비추기에는 빛이 부족했지만 타일 바닥의 한 구역을 따뜻하게 밝히기에는 충분했다. 민은 어릴 때 이 등을 아주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 시절 그는 어머니의 퇴근을 기다리며 전등 기둥 가까이에 놓인 나무 의자에 자주 앉아 있곤 했다. 어머니는 매표소에서 일했는데, 장부를 확인하고 뒤편의 작은 방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퇴근하곤 했다.
빗속의 약속
민은 그 등이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달라진 것은 등을 켜는 사람뿐이었다. 갈색 우비를 입은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나무 의자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할머니는 민이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어느 기차를 기다리니?” 할머니가 물었다.
민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기차에서 내렸어요. 집에 가는 길이에요.”
할머니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미소 지었다. “집에 가는 거라면 잘됐구나. 이 역에서 저 등을 그렇게 오래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은 참 오랜만이야.”
민은 할머니가 누구인지 묻고 싶었지만, 질문을 미처 입 밖에 내기도 전에 멀리서 기차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의자를 벽 쪽으로 바짝 밀어 넣고 전구를 다시 확인한 뒤 천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내일 시간 있니?”
“아마 있을 거예요.”
“시간이 있으면 와서 전구를 갈아 주렴. 며칠째 깜빡거리는구나.”
말을 마친 할머니는 처마 밖으로 걸어 나갔다. 민은 빗속에서 점점 멀어지는 작은 체구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왜 고개를 끄덕였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등불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희미한 빛 속에서 아주 오래전의 어느 저녁을 막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민이 열네 살이던 해, 어머니는 심한 열이 났지만 여전히 일을 나가야 했다. 그날도 비가 내렸고, 막차가 늦어져 역에는 민과 어머니만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두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민은 걱정스럽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왜 쉬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기차는 왜 늘 늦느냐고, 자신들의 작은 집은 왜 항상 온갖 것이 부족하냐고 원망했다.
두 모자가 기다리고 있을 때, 나이 든 남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민의 손에 낡은 파란 우산을 쥐여 주었다. 그는 그냥 가지고 쓰라며, 다음 날 다시 만나면 돌려 달라고 했다. 민은 우산을 받았지만 너무 지치고 당황한 나머지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버스가 왔을 때 그는 이미 떠난 뒤였다.
버스에 오르기 전, 어머니는 민의 손을 잡고 말했다. “기억하렴. 세상에는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단다. 나중에 네가 할 수 있다면, 너도 똑같이 하렴.”
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공부와 일, 도시에서의 생활이 그를 휩쓸어 갔다. 그 약속은 급하게 나눈 통화와 차일피일 미뤄진 귀향, 그리고 어머니가 더 자주 집에 돌아오라고 말할 때마다 느꼈던 짜증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빛을 지키는 사람
다음 날 아침, 민은 역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낮은 의자 위에 올라서서 손을 뻗어 전등 갓을 떼어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민은 서둘러 의자를 붙잡고 자신이 하겠다며 나섰다. 두 사람은 근처 가게에서 새 전구를 사 와 거의 반 시간 동안 씨름한 끝에 전구를 갈아 끼웠다.
스위치를 켜자 노란빛이 다시 타일 바닥으로 퍼졌다. 할머니는 기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이 등은 오래됐어요?” 민이 물었다.
“내 딸이 여기서 일하던 때부터 있었단다.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난 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
민은 말없이 있었다. 할머니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딸이 민의 어머니처럼 이 역에서 매표원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딸은 한 차례 병을 앓은 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로 할머니는 해가 질 때마다 걸레 하나를 챙겨 이곳에 와서 등을 켰다.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거센 날도, 가족들이 집에서 쉬라고 말하는 날도 있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왔다.
“내가 왜 등을 켜는지 궁금하지?” 할머니는 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듯 말했다. “예전에 그 아이가 그러더구나. 밤늦게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중에는 길을 잘 모르는 이가 많으니, 등불만 보아도 역에 아직 사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아이가 떠난 뒤에는, 이 등이 계속 밝아 있으면 그 아이가 한 말도 여기에 계속 남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단다.”
민은 등불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 빛이 그저 처마 밑에 놓인 낡은 물건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야 그는 그것이 한 어머니가 딸의 존재를 지켜 내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소란스럽지도 않고 누가 지켜봐 주기를 바라지도 않은 채, 할머니는 하나의 습관을 일종의 일깨움으로 바꾸어 놓았다. 가장 쓸쓸해 보이는 곳에서도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할 곳을 남겨 줄 수 있다는 일깨움이었다.
역을 떠나기 전, 민은 할머니에게 예전에 자신에게 우산을 주었던 남자에 대해 물었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역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럼 아저씨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오래전에 일을 그만두고 다른 마을로 이사 갔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가 아직 살아 있는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민은 선의로 진 빚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그대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날 아침, 할머니가 천천히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어떤 것들은 보통의 방식으로 되돌려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산 하나가 반드시 그것을 건넨 사람의 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또 다른 비 속에서, 보호가 필요한 또 다른 사람을 위해 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잊히지 않는 작은 일들
민은 예정대로 바로 도시로 돌아가는 대신 고향에 일주일 더 머물렀다. 어머니를 위해 처마를 고치고,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린 뒤, 할머니와 함께 낡은 대합실을 청소했다. 민과 어머니가 함께 일하는 아침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말없이 그에게 걸레를 건네며 오른쪽 창문을 닦으라고 했다.
낡은 서류장을 정리하던 중, 민은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빛이 바랜 기차표 몇 장과 머리핀이 하나, 그리고 역 직원들이 승강장 앞에 서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뒷줄에 서 있는 한 남자를 가리켰다.
“이분이 럼 아저씨야. 그때는 승객들의 짐을 옮기는 일을 자주 도와주셨어. 한 번은 내가 넘어졌을 때 집까지 데려다주시기도 했단다.”
민은 사진 속 흐릿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우산을 건넨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은 더 이상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삶에서 럼 아저씨가 한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도 어쩌면 바로 그가 작은 일을 하나 해 주었을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할머니가 여전히 낯선 사람들을 위해 그 등을 켜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민은 역 대합실 처마 주변의 낡은 전선을 모두 교체하자고 제안했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더 필요했다. 이야기를 들은 동네 청년 몇 명도 와서 도왔다. 누군가는 사다리를 가져오고, 누군가는 공구를 가져왔으며, 누군가는 타일 바닥을 쓸었다. 할머니는 곁에 서서 계속 모두에게 쉬면서 물을 마시라고 했다.
누구도 누가 품삯을 낼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 일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그 등불이 그곳에서 너무 오랫동안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그와 비슷한 빛을 필요로 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일했다.
전해지는 빛
민이 고향을 떠날 날, 하늘은 맑았다. 그는 아침 일찍 역에 와서 새로 산 파란 우산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우산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누구에게 남겨 주려고?”
“모르겠어요. 누군가 필요로 할지도 모르죠.”
할머니는 우산을 받아 대합실 한쪽 구석에 세워 두었다. 민은 할머니에게 오래전의 약속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이 어머니가 해 주었던 말 대부분을 거의 잊고 있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 말들은 이제 굳이 꺼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말들은 벽 한쪽 구석에 놓인 우산과 새로 연결한 전선, 그리고 매일 저녁 켜지는 등불 속에서 구체적인 행동이 되어 있었다.
기차에 오르기 전, 민은 다시 승강장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처마 아래에 서서 스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등불은 나무 의자 위로 노란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곁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민은 십이 년이라는 시간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무겁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돌아온다는 것은 단지 오래된 문을 지나 익숙한 방에 다시 앉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돌아온다는 것은 자신에게 건네졌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계속 건네고 싶은지 알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등불은 점점 작아졌지만 꺼지지는 않았다. 민은 자신의 삶에 몇 분, 며칠, 혹은 한 번의 장마철 동안만 나타났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한마디 말을 남겼고, 어떤 사람은 우산 하나를 남겼으며, 어떤 사람은 역 대합실 처마 밑에 빛만 남겼다. 그런 것들은 아주 작아 보이지만, 때로는 한 사람이 긴 여정을 모두 지나가도록 이끌 만큼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날 이후, 민은 누군가 빗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아도 그 사람이 도와 달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대개 먼저 다가가 자신의 우산을 펼치고, 한동안 그 사람의 곁을 조용히 걸었다.
민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의는 간직해 두어야 하는 선물이 아니다. 선의는 누군가에게 보이고, 그 낯선 사람이 자신이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고 믿게 해 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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