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와 선택의 압박 속에서 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 익숙해진 듯합니다. 잘못된 결정, 놓친 기회, 선택하지 않은 길은 매번 “만약 그랬더라면”이라는 두 글자의 후회의 근원이 됩니다. 그때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이런 질문들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낡은 레코드판처럼 되풀이되며 현재를 무겁게 만듭니다.
하지만 단순하고도 냉혹한 진실은 인생에 ‘만약’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버전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평행 우주도, 이미 내려진 결정을 되돌릴 수 있는 되감기 버튼도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한 것은 지금 이 순간뿐입니다. 모든 선택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베트남의 옛 선조들은 일찍이 이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응우옌 짜이(Nguyen Trai)는 이렇게 썼습니다. “지나간 일은 흐르는 물과 같으니, 현명한 자는 오직 오늘 해야 할 일을 택할 뿐이다.” 표현은 옛것일지라도 그 정신은 시대를 관통합니다. 과거는 붙잡을 수 없지만, 현재는 깨어 있는 자(tỉnh thức)의 손안에 늘 머물러 있습니다.
‘평행한 삶’은 없다, 오직 실제의 선택만이 있을 뿐 실패나 막막함에 부딪힐 때 사람들은 상상 속으로 도피하곤 합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고, 옛날의 결정이 성공으로 이어지며, 현재보다 고난이 적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이 지적하는 바는, ‘만약’이라는 가정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이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무력감만 연장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길은 현실의 부딪힘을 겪지 않았기에 늘 밝은색으로 채색됩니다. 우리는 가상적인 결과만 볼 뿐, 그 길을 갔을 때 치러야 했을 대가나 실패, 상처는 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상상 속의 ‘다른 삶’은 지금 살고 있는 ‘실제 삶’보다 언제나 더 좋아 보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선조들은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지혜로움도 하늘을 이길 수 없고, 깊은 꾀도 이미 지나간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이 말은 부정적인 숙명론이 아니라, 바꿀 수 없는 일에 괴로워하기보다 현재의 상황에서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깨우침입니다. 사실 인생의 모든 선택은 그 당시의 지식, 감정, 조건의 결과물입니다. 오늘의 이해력으로 어제의 결정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공정함입니다.
가지 않은 길이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이 흔히 빠지는 심리적 함정 중 하나는 다른 길이 더 쉬웠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현재의 삶이 비틀거릴 때, 그때 다른 길로 꺾었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인생은 화려한 장면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모든 길에는 어두운 구간이 있고, 위험한 굽잇길이 있으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영광’만 볼 뿐, 그들이 침묵 속에서 쓰러졌던 세월은 보지 못합니다.
명사 까오 바 꾸앗(Cao Ba Quat)은 이렇게 썼습니다. “세 번의 북소리가 이 아비의 운명을 재촉하고, 한 자루 칼날이 인생을 단숨에 끊어놓는구나.” 이 시구는 격렬하게 들리지만, 인생이 누구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어떤 길이라도 땀과 눈물, 때로는 깊은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가상의 미래와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의 에너지를 고갈시킬 뿐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후회하며 멈춰 서게 됩니다. 배우는 대신 답 없는 질문으로 자신을 벌하게 됩니다.
후회를 삶의 동력으로 바꾸기 후회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영원히 머무를 때 위험해질 뿐입니다. 제대로 바라본다면 후회는 일종의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약점, 그리고 진정한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돕습니다. 여러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실수를 부인하거나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이 정신적 회복력이 더 높다고 합니다. 그들은 “만약 그랬더라면”이라고 묻는 대신 “이 일에서 무엇을 배웠는가”라고 묻습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성숙한 사람과 과거에 갇힌 사람을 가르는 차이입니다.
응우옌 두(Nguyen Du)는 절절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이미 업(業)을 짊어졌다면, 하늘이 멀다거나 가깝다며 원망하지 마라.” 이 시구는 체념하라는 뜻이 아니라, 이미 선택을 거쳐왔다면 해야 할 일은 원망이 아니라 책임지고 나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후회도 제자리를 찾으면 성숙의 밑거름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판결문처럼 꽉 쥐고 있다면, 인간은 스스로 만든 과거의 죄수가 되고 맙니다.
자신에게 다정해지는 법 배우기 현대 삶의 역설 중 하나는 타인에게는 점점 관대해지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점점 가혹해진다는 점입니다. 타인의 실수는 쉽게 용서하면서 자신에게는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한 번의 넘어짐이 곧 자책의 증거가 됩니다. 나는 무능하다, 실패했다,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성장 과정도 직선은 아닙니다. 선조들조차 인간의 서투름을 인정했습니다. 짱 찐 응우옌 빈 키엠(Nguyen Binh Khiem)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을 때가 있고, 어리석은 자도 지혜로울 때가 있다.” 인간은 완벽한 기계가 아니라 매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존재입니다. 과도한 자책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새로운 선택 앞에서 두렵게 만들 뿐입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은 계속 걸어갈 용기를 얻습니다.
인생에 ‘만약’은 없다, 오직 결과와 행동뿐이다 결국 인생은 가정이 아니라 우리가 해온 일과 하고 있는 일로 증명됩니다. ‘만약’에 대한 모든 생각은 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현재의 행동만이 미래의 결과를 만듭니다. 베트남 선조들은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게 결론지었습니다. “내일 일은 오늘 걱정하고,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마라.” 이 정신이야말로 ‘만약 그랬더라면’이라는 집착에 대한 해답입니다. 사람이 현재를 온전히 살아낼 때, 과거의 무게는 점차 줄어들 것입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완전히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미래를 휘두르게 두지 않는 것입니다. 짐이 가벼워지는 것은 삶에 고난이 적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 만든 무게를 더 이상 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결국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얼마나 생각했는지 묻지 않습니다. 인생은 그저 우리가 내딛고 있는 발걸음의 결과로 묵묵히 답할 뿐입니다.
오직 앞을 향한 길뿐 인생에 ‘만약’은 없습니다. 오직 앞을 향한 길과, 다시 발을 내딛기에 충분히 깨어 있는 한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후회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상상 속으로 도망치지 않으며, 곧게 걷는 것. 느리게 가도 괜찮습니다, 자신의 발로 걷고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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