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끝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

우리 집 골목 끝에는 노란 불빛 하나가 있다. 골목 전체를 환하게 밝힐 만큼 강한 빛도 아니고, 새것이거나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낮은 집 처마 아래에 달린 전구에서 나온 빛이 얼룩진 시멘트 바닥과 메말라 버린 부겐빌레아 한 그루를 비추고 있다. 그럼에도 날이 어스름해지기만 하면 그 등불은 켜진다. 비가 와도 켜진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켜진다. 정전이 된 날이면 그 집에 사는 여자는 석유등 하나를 문 앞에 내놓기까지 한다.

그 여자의 이름은 번이다. 그녀는 여러 해 동안 혼자 살았다. 은빛 머리카락은 대개 목덜미 뒤에 단정하게 틀어 올렸고, 목소리는 작지만 분명했다. 낮에는 화분 몇 개를 돌보고 좁은 마당을 쓸어 낸 뒤, 낡은 옷에 고른 땀질을 하며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문을 열고 한참 동안 골목을 내다보곤 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에게 먼 곳에서 일하는 자식이 하나 있어서 어쩌면 갑자기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젊었을 때부터 생긴 습관일 뿐이라고 말했다.

골목의 아이들은 그것을 ‘사람을 기다리는 등불’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마치 비밀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로 그렇게 말했다. 나중에는 그 이름이 골목 끝 집을 가리키는 방식이 되었다. “천천히 가. 사람을 기다리는 등불을 지나고 나서 뛰어도 돼.” “벌써 어두워졌으니까, 번 할머니 등불이 보이면 안으로 꺾어 들어와.” 작은 물건 하나가 점점 사람들이 방향을 찾는 표지가 되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왜 매일 밤 불을 켜야 하는지 진심으로 묻지는 않았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여자의 습관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번 할머니를 알고 지냈다. 그때 나는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골목에는 아직 가로등이 많지 않았고, 저녁에는 구름만 몰려와도 모든 것이 짙은 어둠에 잠겼다. 한 번은 슬리퍼를 떨어뜨려 덤불 옆에서 한참을 헤맨 적이 있다. 번 할머니는 소리를 듣자마자 문을 열고 손전등을 들고 나왔다. 왜 늦게 돌아왔느냐고 묻지 않고, 몸을 숙여 함께 찾은 뒤 천 조각으로 슬리퍼를 닦아 주었다.

“다음부터 어두우면 불빛이 있는 쪽으로 바짝 붙어서 가렴.” 할머니가 당부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누구 집이든 문 두드리는 걸 주저하지 말고.”

나는 그 당부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어른이 되어 골목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고 일하게 된 뒤에야, 내가 그 등불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불은 매일 저녁 그 자리에 있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외침 소리나 아침마다 이웃집 쇠대문이 열리는 소리처럼 말이다. 조용히 곁에 있는 것들은 여전히 곁에 있을 때 좀처럼 기억되지 않는다.

몇 년 뒤, 나는 연말의 어느 저녁에 돌아왔다. 골목은 꽤 많이 변해 있었다. 몇몇 집은 새로 고쳐졌고, 도로는 더 평평해졌으며, 전선은 더 가지런히 묶여 있었다. 예전의 아이들은 이제 훌쩍 자랐고, 누군가는 먼 곳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이미 가정을 꾸렸다. 번 할머니의 집은 여전히 골목 끝에 있었지만, 담장은 전보다 더 빛이 바래 있었다. 그리고 노란 등불은 여전히 처마 아래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안으로 들러 안부를 물었다. 할머니는 몇 초 뒤 나를 알아보고 다정하게 웃은 다음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 주었다. 탁자 위에는 바느질 도구 상자와 삶은 고구마 한 접시, 오래된 음악 프로그램을 틀어 놓은 작은 라디오가 있었다. 나는 아직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내뱉자마자 내가 조금 서투른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너무 오래 이어 오면, 바깥사람들은 그것이 반드시 구체적인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번 할머니는 잠시 말이 없다가 남동생이 한 명 있었다고 말했다. 젊었을 때 남동생은 옆 마을의 기계 공장에서 일했다. 어느 비 오는 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한적한 구간에서 오토바이가 고장 났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남동생은 계속 오토바이를 끌고 가려고 했다. 새벽이 가까워져서야 집에 도착했는데,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심하게 열이 나고 있었다. 그 일을 겪은 뒤 번 할머니는 비 오는 밤이면 문 앞에 등불 하나를 밝혀 두기 시작했다. 집 안에 아직 깨어 있는 사람이 있고, 앞으로 난 길에도 찾아갈 곳이 있다는 표시처럼 말이다.

남동생은 훗날 다른 곳으로 떠났다. 남매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각자의 삶은 서로 다른 길로 흘러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번 할머니는 옛집에 남았고, 남동생은 먼 남쪽 지방에서 터를 잡았다. 한 사람을 위해 켜던 등불은 점차 할머니의 습관이 되었다. 이제 할머니는 자신이 남동생을 기다리는지, 늦게 돌아오는 이웃을 기다리는지, 아니면 그저 골목 끝 어둠 속에 조금이라도 빛을 더하고 싶은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빛

“어떤 사람은 전기세가 아깝다고 하더구나.” 할머니가 처마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전구 하나 켠다고 얼마나 더 가난해지겠니. 그리고 누군가 그 불빛을 보면 덜 무서울 수도 있잖아.”

그 말을 듣자 나는 내 인생에서 지나온 수많은 밤을 떠올렸다. 때로 우리는 거창한 조언도, 누군가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어딘가에 두드릴 수 있는 문이 하나 있고, 기꺼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으며, 다음 발걸음을 볼 수 있을 만큼의 작은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된다. 도움은 때때로 특별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남겨 둔 밥 한 그릇일 수도 있고, 집에 도착했느냐고 묻는 전화 한 통일 수도 있으며, 평소보다 조금 일찍 켜진 전구 하나일 수도 있다.

번 할머니는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하고 꾸준한 일 하나를 했을 뿐이며, 거의 아무에게도 감사 인사를 받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 빛은 감정에 이끌려 행한 많은 행동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칭찬을 받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고, 누가 정확히 그 빛을 보게 될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길 한 구간이라도 덜 어둡게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날 이후 나는 삶이 굴러가도록 조용히 애쓰는 사람들을 더 주의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주 이른 시간부터 문을 여는 경비원, 거리가 붐비기 전에 인도를 깨끗이 쓸어 두는 환경미화원, 한낮에 배달원에게 물 한 병을 남겨 두는 상인. 그들은 큰 이야기 속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이 없다면 평범한 하루는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다. 어떤 기여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저 모든 일이 여전히 괜찮다는 느낌을 남길 뿐이다.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옷을 챙기라고 말해 주는 어머니, 문고리를 고쳐 다는 아버지, 말없이 청구서 하나를 대신 내는 형제, 익숙한 차 소리가 들릴 때까지 문을 지키며 기다리는 할머니. 이런 일들은 흔히 의무라고 불린다. 그래서 받는 사람은 평온함 뒤에 누군가 시간과 힘과 관심을 들였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누군가 그 일을 멈추고 나서야, 자연스러워 보였던 것이 사실은 한 번도 저절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기다림이 돌아옴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번 할머니에게 그 습관을 계속 지키는 일이 힘들 때는 없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웃으며, 허리가 너무 아픈 날에는 이웃에게 부탁해 불을 켜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어떤 날은 잠이 들어 버리기도 하는데, 다음 날 아침이면 아무도 탓하지 않았는데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사실 나는 누구를 기다릴 필요가 없단다.” 할머니가 말했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불빛을 보면, 여기가 잠시 멈춰도 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지. 그걸로 충분해.”

그때 나는 처음으로 모든 기다림이 돌아옴을 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어떤 사람은 기억을 지키기 위해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다린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기다린다. 번 할머니의 기다림은 가족만의 이야기를 넘어섰다. 그것은 소박하지만 널리 퍼지는 삶의 방식이 되었다.

속도와 결과로 가치를 판단하는 세상에서, 그런 느린 일들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거리에 이미 전등이 있는데 불을 켜서 무엇 하느냐고, 모두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데 서로를 기다리며 문을 지켜서 무엇 하느냐고, 오래전부터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왜 기억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편의시설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이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은 신호들로도 살아간다. 특별한 정보가 담기지 않은 문자 메시지 하나, 미리 널어 둔 수건 하나,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저녁 식사 한 끼. 이런 것들은 삶이 해야 할 일의 목록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몇 달 뒤, 번 할머니는 마당에서 넘어져 여러 날 누워 쉬어야 했다. 그 소식은 동네에 빠르게 퍼졌다. 누군가는 죽을 가져오고, 누군가는 약을 사 오고, 누군가는 마당을 쓸고, 누군가는 낡은 전구를 갈아 끼웠다. 저녁이 되자 골목 입구에 사는 한 소년이 스스로 할머니 집 처마 앞의 불을 켰다. 소년은 엄마에게 ‘사람을 기다리는 등불’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언젠가 자신이 그 불빛을 지키는 사람이 될 줄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번 할머니는 조금씩 회복했다. 처마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된 날, 할머니는 등불이 길을 비추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소년은 스위치 옆에 서서, 마치 중요한 임무를 막 끝낸 사람처럼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할머니는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날 밤, 등불은 평소보다 일찍 켜졌다.

자신을 위해 등불 하나를 지키기

우리 모두는 거창한 일을 하지 않고도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 누군가 마음이 복잡할 때 귀 기울여 주는 것, 사소한 일에서 한 약속을 지키는 것,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것, 또는 지친 날들을 보낸 가족이 돌아올 안전한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이 얼마나 강한지가 아니라, 얼마나 꾸준히 지켜지는가이다.

동시에 우리는 빛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야 한다. 언제나 강한 척하고,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며, 모든 도움의 손길을 거절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나를 걱정하고 돌보도록 허락하는 것 역시 그들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문은 누군가 감히 두드릴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등불은 누군가 그것을 보았을 때 비로소 제 역할을 다한다.

이제 우리 골목에는 새 전등이 더 많이 생겼다. 현대적인 전구에서 나오는 하얀 빛이 도로를 내려비추며 예전보다 더 분명하고 넓게 밝혀 준다. 그럼에도 골목 끝 집을 지날 때면 나는 여전히 처마 아래의 익숙한 노란빛을 알아본다. 그 빛은 다른 등불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존재한다. 드넓은 세상 속에서 때로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어딘가에 여전히 나를 마음 쓰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우듯이.

번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특정한 한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 빛을 보아야 하는 누구든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마음이 가라앉는 밤이면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등불 하나가 필요할 것이다. 꼭 골목 끝에 있을 필요는 없다. 전화 한 통일 수도 있고, 부엌일 수도 있으며, 친구 한 명일 수도 있고, 우리가 마음속에서 지키는 법을 배운 바로 그 다정함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