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언덕을 넘어 물을 나르는 사람

옛날, 일 년 내내 바람이 세차게 부는 산맥 너머에 바트 낭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마을은 민둥산 두 개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고, 땅은 쩍쩍 갈라져 있었으며, 유일한 개울은 여름이 지나기도 전에 자주 말라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물 한 바가지도 아껴 쓰는 일에 익숙했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 질그릇 항아리 하나씩을 두었지만, 항아리 안에는 손바닥을 적실 만큼의 얇은 물막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돌우물이 있었다. 우물물은 완전히 마르는 법이 없었지만, 물줄기가 너무 가늘어서 집집마다 날이 밝기도 전부터 줄을 서야 했다. 가뭄이 든 날이면 우물가에서는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잦았다. 힘센 사람은 앞자리를 차지했고, 약한 사람은 말없이 뒤에서 기다렸다. 누구나 자신이 물 한 바가지를 양보하면 내일은 바로 자신이 목마르게 될까 두려워했다.

마을에는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람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람은 다른 젊은이들처럼 건강하지 못했다. 한쪽 다리가 어릴 때부터 불편해서 걷는 것도 느렸고, 힘든 일도 하기 어려웠다. 대신 람은 눈썰미가 좋았고, 다른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는 일에 늘 마음을 기울였다. 그는 어느 집에 환자가 있는지, 어느 집에 어린아이가 있는지, 어느 집에 물을 끓일 땔감이 떨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매일 아침 람은 할머니보다 일찍 일어나 작은 양동이를 들고 우물로 갔다가, 해가 동쪽 언덕 위로 떠오르기 전에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여러 날 동안 비가 내리지 않자 이장이 우물의 물줄기가 크게 약해졌다고 알렸다. 다음 날부터 집집마다 작은 항아리 하나 분량의 물만 길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자녀가 많은 집은 한 모금씩 나누어 마셔야 했다. 람의 외할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몫은 지켜야 한다, 얘야. 누구도 모든 사람을 돌볼 수는 없단다.”

람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에는 마을 끝에 사는 넷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초가지붕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고, 눈은 이미 흐려졌으며, 두 손은 너무 떨려서 스스로 두레박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며칠 동안 할머니는 사람이 없는 시간에만 우물에 나오려 했지만, 막상 도착하면 물이 이미 모두 나뉘어 버린 뒤인 경우가 많았다.

다음 날 아침, 람은 낡은 나무 양동이 두 개를 가져와 멜대에 묶고 걷는 연습을 했다. 무거운 멜대 때문에 어깨가 욱신거렸고, 불편한 다리는 자갈 깔린 땅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조금 걷다가 람은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아야 했다. 할머니가 그것을 보고 서둘러 달려나와 손자를 부축했다.

“너는 지금 무슨 일을 하려는 게냐?”

“넷 할머니에게 물을 길어다 드리고 싶어요.”

“우리 집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단다.”

“조금만 덜 길어 오면 돼요. 매일 할머니께 한 양동이만 있으면 목을 축이지 않고 참지는 않으실 거예요.”

외할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침내 할머니는 머리에 두르고 있던 갈색 수건을 풀어 람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멜대가 살에 쓸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허락한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그를 말리지도 않았다. 다만 천천히 걷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언덕을 가로지르는 길

마을 우물에서 넷 할머니의 집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니었지만, 바람 언덕을 넘어야 했다. 그곳에는 큰 나무가 없고, 땅에 붙어 자라는 낮은 풀숲만 있었다. 바람은 일 년 내내 불었다. 때로는 한숨 소리처럼 가볍게 불었고, 때로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을 쓰러뜨릴 만큼 거세게 몰아쳤다.

첫날 람은 물을 거의 다 쏟고 말았다. 언덕 비탈을 내려가던 중 갑자기 옆에서 불어온 바람이 오른쪽 양동이를 세차게 기울였기 때문이다. 물은 땅으로 쏟아져 갈라진 틈 사이로 스며들더니 사라졌다. 람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눈앞의 작은 물웅덩이를 바라보았다. 목구멍이 따갑고 바싹 말라 왔다.

몇 사람이 곁을 지나갔다. 한 젊은이가 웃으며 말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물을 나르겠다고 나서다니. 자기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누구를 돌보겠다는 거냐?”

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양동이를 주워 들고 우물로 돌아가 물을 더 길었다. 넷 할머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 양동이에는 물이 절반 조금 넘게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두 손을 들어 물을 받아 들고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람은 할머니가 한 모금씩 물을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방금 지나온 길이 처음만큼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후 며칠 동안에도 람은 계속 물을 날랐다. 그는 끈을 더 단단히 묶는 법을 익혔고, 양동이 바닥에 천을 한 겹 깔았으며, 덜 미끄러운 돌을 골라 발을 디뎠다. 또한 바람 언덕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침마다 바람은 대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방향이 바뀌고 더 거세졌다. 그래서 람은 땅이 아직 서늘하고 바람이 일어나기 전인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그 일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넷 할머니가 머지않아 가뭄을 견디지 못할 테니 람이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그저 칭찬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람은 그런 말을 들었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좋은 일을 시작하려면 모두가 이해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면, 아마 세상에는 좋은 일이 하나도 시작되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무화과나무 아래의 항아리

일주일 뒤, 람은 넷 할머니에게 부족한 것이 식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머니의 집에는 물을 저장할 큰 항아리가 없어서, 람이 물을 가져올 때마다 작은 그릇에 조금씩 떠 놓아야 했다. 날씨가 더우면 물은 다음 날이 되기도 전에 금세 바닥났다.

람은 마을의 유일한 도공을 찾아가 입구가 깨진 항아리 하나를 달라고 부탁했다. 도공은 돈 있는 집들의 멀쩡한 항아리를 고치느라 바빴기 때문에 손을 내저었다.

“깨진 항아리가 물을 얼마나 담겠느냐? 가져가 봐야 집만 좁아질 뿐이다.”

람은 그래도 그 항아리를 달라고 다시 부탁했다. 그는 점토에 부엌 재를 섞어 깨진 곳을 메운 뒤 며칠 동안 햇볕에 말렸다. 항아리는 더 이상 예쁘지 않았지만, 시험해 보니 물 대부분을 담아 둘 수 있었다. 람은 항아리를 넷 할머니의 집 앞 무화과나무 아래에 놓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늘이 드리워지는 곳이었다.

그날부터 람은 매일 물을 나를 필요가 없었다. 한 번에 조금 더 많이 가져와 할머니가 두고두고 쓰게 할 수 있었다. 그 일로 람의 어깨는 아팠지만, 외할머니는 말없이 자신의 물을 덜어 손자에게 남겨 주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람은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 물을 덜 드시면 안 돼요. 할머니가 약해지시면 제가 더는 걸을 수 없어요.”

외할머니는 손자를 바라보며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착한 마음도 돌봄이 필요하단다. 어린 나무와 같지. 그저 주기만 하고 자신의 힘을 지킬 줄 모르면, 다른 사람을 돕기도 전에 네가 먼저 쓰러지고 말 거야.”

할머니의 말은 람을 오랫동안 생각하게 했다. 그날부터 람은 더 이상 혼자 애쓰지 않았다. 그는 마을 아이들에게 미끄러운 길에 깔 돌멩이를 주워 달라고 부탁했다. 몇몇 힘센 사람들에게는 바람에 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양동이를 묶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또 어머니들에게는 낡은 항아리를 모아 고친 뒤 그늘진 곳에 놓아 두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거절할 이유가 있었다. 바쁜 사람도 있었고, 자기 집 물 몫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그런 일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냐이라는 이름의 어린 소녀가 야자나무 잎으로 꼰 끈 하나를 가져왔다. 한 농부 아저씨는 돌이 팬 도랑 위에 놓을 작은 다리를 만들 판자 몇 장을 보탰다. 며칠 전의 도공도 말없이 멀쩡한 항아리 하나를 가져와서는, 자신이 여분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아무도 람이 이 모든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함께, 조금씩 일을 해 나갔다.

땅속의 물줄기

가뭄이 끝나 갈 무렵, 마을 우물은 거의 말라 버렸다. 그날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섰는데도 많은 집이 물을 충분히 길어 가지 못했다. 이장은 다른 우물을 팔 장소를 찾으러 사람들을 보냈지만, 마을 주변의 땅은 모두 단단하게 말라 있었다. 어른들은 논쟁을 벌였고, 아이들은 목이 말라 울었으며, 언덕 위에서는 바람이 먼지를 자욱하게 날려 보냈다.

람은 바람 언덕을 지날 때마다 보았던 징후들을 떠올렸다. 언덕 북쪽에는 주변이 누렇게 말라 있는데도 옅은 초록빛을 띠는 풀밭이 있었다. 큰 바위 아래의 땅은 언제나 다른 곳보다 축축했다. 람은 여러 번 사람들에게 말하려 했지만, 자신의 추측이 틀릴까 봐 망설였다.

마침내 람은 이장을 그곳으로 데려갔다. 사람들은 시험 삼아 땅을 파 보았다. 처음에는 마른 흙과 자갈만 나왔다. 더 깊이 파 내려가자 삽 끝이 부드러운 흙층에 닿았다. 해 질 무렵, 땅속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배어 나왔다. 개울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부족했지만, 물은 끊임없이, 천천히, 맑게 흘러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기뻐했다. 그들은 차례로 흙구덩이를 넓게 파고, 물줄기 주변에 돌을 쌓았으며, 낮은 지대로 물을 이끌 작은 수로를 만들었다. 일은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다. 물줄기가 충분히 커지자 사람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려 나누지 않았고, 먼저 온 사람이라고 더 많이 갖게 하지도 않았다. 이장은 규칙을 세웠다. 마실 물을 먼저 확보하고, 그다음에 가축과 작물에 쓸 물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한 사람씩 번갈아 물줄기를 지켜 아무도 자신의 몫보다 많이 가져가지 않게 했다.

새 물줄기에서 처음으로 물을 뜬 사람은 넷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물그릇을 받쳐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람에게 건넸다. 람은 고개를 저으며 할머니께 계속 드시라고 했다.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이 물은 할머니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다. 너도 마셔야지.”

람은 그릇을 받아 들었다. 차가운 물이 흙과 돌의 맛을 머금은 채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람은 깨달았다. 물줄기는 한 사람이 찾아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물줄기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다. 다만 모두가 함께 찾고 함께 지킬 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마을 전체의 생명줄이 된 것이었다.

가뭄 뒤에 남은 교훈

여러 해가 지나자 바람 언덕은 예전처럼 헐벗은 모습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언덕 비탈을 따라 낮은 나무들을 줄지어 심었고,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돌담을 세웠으며, 집 처마 밑에는 빗물을 받을 항아리를 놓았다. 가뭄은 여전히 찾아왔지만, 더 이상 누구도 하나뿐인 우물가에 빽빽하게 몰려 서야 하지는 않았다.

람은 자라서 마을의 물줄기를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다 느리게 걸었지만, 더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변화를 시작하는 사람이 반드시 가장 강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때로 중요한 것은 곁에 있는 사람의 어려움을 알아보고, 첫걸음을 내딛는 일뿐이었다.

바람 언덕을 넘어 물을 날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해마다 건기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선행이 언제나 곧바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곤 했다. 어떤 날에는 물이 땅에 쏟아질 수도 있고, 어떤 비난의 말은 우리를 낙담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어떤 일은 너무 작아 아무런 차이도 만들지 못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인내심을 가지고 그 불씨를 지킨 뒤 다른 사람에게 건네면, 친절은 땅속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물줄기처럼 퍼져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 물줄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에도 우리 자신이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맑고 깨끗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관심과 끈기와 믿음으로 땅을 파 내려가기 시작하기만 한다면, 이미 모두 말라 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때로는 다시 생명을 향해 흐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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