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관계에서 다툼은 모든 것이 금이 가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지곤 한다. 사람들은 말의 목소리 크기, 화가 난 순간 내뱉은 말들, 세게 닫힌 문이나 그 후에 길게 이어진 침묵을 기억한다. 그러나 다툼 그 자체가 언제나 가장 위험한 것은 아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각자가 그 다툼 뒤에 남은 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어떤 사람들은 즉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상대가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바라며 침묵을 선택한다. 어떤 사람은 대화를 끝내기 위해 서둘러 사과하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억울함을 간직한다. 또 어떤 사람은 다시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증거물처럼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서 들춰낸다. 이러한 반응들은 잠시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는 있지만, 상처 입은 것을 반드시 치유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다툼은 대개 수면 위로 드러난 일부일 뿐이다
많은 논쟁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답장하지 않은 문자 메시지, 잊어버린 약속, 끝내지 않은 집안일, 변경된 약속 시간 또는 무관심하게 들리는 한마디 같은 것들이다. 직접적인 원인만 바라보면, 당사자들은 상대가 문제를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분노 뒤에는 흔히 아직 보이지 않은 욕구가 있다.
답장하지 않은 문자 때문에 화가 난 사람은 단지 답장 한마디를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필요로 한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 때문에 속상한 사람은 단지 끝나지 않은 일 때문에 불쾌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말이 무게를 지닌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평범해 보이는 한마디에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피로감, 불안감 또는 늘 가볍게 여겨진다는 감정을 안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처에서 비롯된 모든 거친 말이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어떤 반응을 설명해 줄 수 있지만, 그 반응을 자동으로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더 깊은 원인을 알아차리는 것은 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다음 단계는 각자가 긴장된 상황에 자신이 기여한 부분을 볼 수 있을 만큼 솔직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상태를 바로잡기 전에 이야기를 바로잡으려 하지 말 것
다툼 후에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모든 일을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은 노력한 사람이고, 상대는 먼저 시비를 걸었거나, 경청하지 않았거나, 분별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일시적으로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 주지만, 화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마음이 여전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찾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진정으로 들을 준비가 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은 때로 상대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상태이다. 지나치게 화가 난 사람은 실제로 일어난 일과 자신이 추측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설명을 변명으로 듣고, 질문을 추궁으로 받아들이며, 침묵을 경멸하는 태도로 여길 수 있다. 쉬고, 걷고, 물을 마시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다시 적어 보거나, 목소리가 평소대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회피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대화가 여전히 이전의 분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잠시 멈추는 시간은 사람을 선의로 돌아오게 할 때만 의미가 있다. 침묵을 벌주기 위해,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 또는 그들이 먼저 굴복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그 멈춤은 압박의 한 형태로 변한다. 차이는 목적에 있다. 한쪽은 더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잠시 물러나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상대가 고통받게 만들기 위해 물러나는 것이다.
사과는 자신에게 내리는 판결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과가 곧 자신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과를 꺼린다. 실제로 성숙한 사과는 우리가 자신의 모든 감정을 부정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시당해서 여전히 슬플 수 있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 때문에 여전히 실망할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이 보인 반응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가치 있는 사과는 대개 “당신이 속상했다면 미안해”라고 막연하게 말하는 대신 구체적인 행동을 짚는다. 그런 표현은 상처받은 사람의 감정에 초점을 옮겨, 마치 그들이 지나치게 예민한 것처럼 만들 수 있다. 더 분명한 사과는 일어난 일을 인정한다.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과거의 일을 꺼내 공격했다, 당신이 말하려고 할 때 자리를 떠났다, 또는 내가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행동을 정확히 이름 붙여 말해야 듣는 사람은 자신의 아픔이 인식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사과가 문제를 너무 빨리 덮어 버리는 의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과 뒤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그 말은 점점 무게를 잃는다. 여러 번 경청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계속 말을 끊는 사람은 새로운 사과 한마디에만 의지할 수 없다. 바로잡는 일은 다음 상황들에서, 과거의 습관이 다시 나타날 기회를 얻었을 때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반박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듣기
어려운 대화에서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침묵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상대가 말을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모순을 지적하고, 상대의 잘못을 다시 들추거나, 왜 자신이 더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인지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경청 방식은 논쟁에서 이기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관계가 치유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모든 평가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가 어떤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그 사람의 이야기에 머무르는 능력이다. 침착하게 다시 물어볼 수 있다. 그 일에서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었는지, 내가 어떤 점을 다르게 하기를 바라는지, 또는 내가 대답하기 전에 끝까지 들어 주기를 바라는지 물을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의사소통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 자신을 지키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경청하는 동안에는 욕구와 요구를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존중받기를 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하는 요구는 상대가 언제나 자신에게 동의해야 한다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안정감을 필요로 하지만, 상대에게 하루 동안의 모든 활동을 보고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욕구는 관심을 받을 만하지만, 그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은 통제로 변하지 않도록 양쪽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
작은 합의로 다툼을 바로잡기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는 두 사람이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할지 이야기해야 한다. 이 부분은 흔히 간과된다. 모두가 더 사랑하기만 하면 문제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피로와 이미 형성된 습관에 쉽게 휩쓸린다.
합의는 단순한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진정할 시간이 필요할 때는 아무 설명 없이 사라지는 대신 잠시 멈추고 싶다는 뜻과 대화를 다시 이어 갈 시간을 분명히 말한다.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는 새로운 논쟁에 관련 없는 과거의 잘못을 끌어오지 않기로 두 사람이 합의한다.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면 약속한 사람은 들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미리 알린다. 한 사람이 말을 끊겼다고 느끼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서로에게 상기시킬 수 있도록 미리 정한 신호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합의가 관계를 기계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긴장된 순간에 서로의 마음을 추측할 필요가 없도록 감정에 충분히 안전한 구조를 마련해 준다. 중요한 것은 합의가 현실적이고 양쪽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규칙을 정한 뒤 상대에게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대개 공동의 해결책이 아니다.
언제 용서하고, 언제 거리를 두어야 할까?
용서는 흔히 아름다운 덕목으로 언급되지만, 용서가 상처를 부정하거나 계속해서 자신을 해로운 상황에 놓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용서하면서도 예전과 같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다. 또한 한 번의 다툼은 일시적인 실수였다고 인정하면서도, 모욕하거나 위협하거나 조종하는 행동이 반복되는 것은 더 गंभीर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건강한 관계에서는 의견 충돌 후 각자가 책임을 받아들이고, 경계를 존중하며, 변화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반대로 한 사람이 계속해서 상처를 준 뒤 상대에게 빨리 잊어버리라고 요구한다면, 문제는 더 이상 그 사람이 사과하는 방법을 몰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럴 때 거리를 두는 것은 냉정함의 표시가 아니라 필요한 자기 보호의 행동일 수 있다.
용서는 무엇보다 과거의 일이 현재 전체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신뢰를 회복하려면 시간과 일관된 행동에서 나오는 증거가 필요하다. 상대가 사과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도 즉시 신뢰를 돌려줄 의무는 없다. 신뢰는 사소한 일에서도 약속을 지키고, 더 이상 다투고 있지 않을 때에도 친절하게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다시 쌓인다.
다툼 후에 지켜야 할 것
다툼은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줄 수 있지만, 이전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 줄 수도 있다. 솔직함을 가지고 다룬다면 의견 충돌이 반드시 감정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상대의 한계, 두려움, 바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사랑받고 싶은지를 더 분명히 이해할 기회를 열어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다툼을 커다란 교훈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사람은 그저 피곤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압박을 받고 있거나, 너무 오래 참아 와서 서툴게 반응할 뿐이다. 우리는 모든 말을 최종 판결문처럼 분석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몫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의 잘못을 과장하지 않으며, 한 번의 나쁜 순간으로 눈앞의 사람 전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은 이야기 속에서 누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가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이다. 두 사람 모두 이기고 싶어 하기만 한다면 논쟁은 여러 다른 형태로 계속될 것이다. 적어도 한 사람이 충분히 침착하게 멈추고, 분노 뒤에 있는 아픔을 바라보며, 선의로 말을 건넬 수 있다면 비로소 바로잡는 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속 가능한 관계란 결코 의견 충돌이 없는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솔직함과 책임감, 존중을 가지고 의견 충돌 후 다시 돌아올 줄 아는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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