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담는 상자

옛 나룻터로 내려가는 흙길 끝에는 갈색 기와를 얹은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집 앞에는 일 년 내내 낮은 나무 의자 하나와 가장자리가 몇 군데 깨진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람 씨의 집이라고 불렀다. 람 씨는 도저히 살릴 방법이 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고치는 목수였다.

람 씨는 일흔이 넘었다. 그의 손에는 힘줄이 도드라져 있었고, 나무 가시와 가구용 기름 냄새 때문에 손끝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흔들리는 의자 하나를 보기만 해도 어디가 망가졌는지 곧바로 알아냈다. 삐걱거리는 문도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 소리를 듣기만 하면 경첩이 어긋난 것인지, 나뭇결에 습기가 밴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람 씨의 집에는 그가 한 번도 고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찬장 위에 놓인 나무 상자였다.

상자는 크지 않아 두 손으로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 상자 표면은 검게 변한 잭프루트 나무로 만들어졌고, 네 모서리는 단단하게 짜 맞춰져 있었다. 뚜껑에는 초승달 곁을 흘러가는 구름 한 무리가 새겨져 있었다. 상자에는 자물쇠도, 걸쇠도 없었다. 그런데도 람 씨는 매일 아침 마당을 쓸고 나면 의자를 받쳐 올라가 부드러운 천 조각으로 상자 뚜껑의 먼지를 닦았다.

사람들은 상자 안에 금이 들어 있다고 수군거렸다. 어떤 이는 람 씨가 한때 사랑했던 여인의 편지가 들어 있다고도 했다. 동네 아이들은 그가 밤이면 빛나는 돌 하나를 숨겨 두었다고 믿었다. 람 씨는 그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그저 웃기만 했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상자가 찬장 위에 놓인 날

람 씨가 스물여덟 살이던 해, 그 고장은 아주 긴 장마를 겪었다. 산에서 흘러내린 개울물이 불어나 논을 가로질렀고, 마른 장작과 볏짚, 그리고 두 마을을 잇던 나무다리 한 구간까지 휩쓸어 갔다. 많은 가족이 높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 회관으로 대피해야 했다. 그때 람 씨는 아직 견습공에 불과했고, 아버지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지붕을 고치러 다니곤 했다.

어느 오후,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중에 람 씨는 벌판 끝 집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와 아버지는 대나무 배 한 척을 저어 그곳으로 갔고, 어린 아들과 함께 갇힌 젊은 여자를 발견했다. 물은 이미 창문 가까이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집에 없었고, 어머니는 너무 놀란 나머지 배에 내려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람 씨는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자신의 몸에 밧줄을 묶은 뒤 모자를 번갈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배가 막 집을 떠나려는 순간, 뒤쪽 벽의 한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여자는 아들을 꼭 끌어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계속 울었다.

그날 밤, 마을 회관에서 여자는 옷을 말리고 있던 람 씨 부자를 찾아왔다. 그녀에게는 감사의 뜻으로 건넬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 조각 하나를 꺼냈다. 물에 휩쓸려 사라진 바느질 도구 상자 뚜껑의 일부였다. 그 나무 조각에는 구름과 초승달 무늬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람 씨가 새 상자를 만들게 된다면 그 무늬를 그대로 간직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몇 년 전 홍수 때 세상을 떠난 남편이 아들을 위해 만들어 준 물건이었다. 그녀는 물살을 피해 달아날 때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을 간직해 둘 곳을 갖고 싶었다.

몇 달 뒤, 람 씨는 상자를 완성했다. 오래된 잭프루트 나무를 사용해 표면 하나하나를 매끈하게 다듬고, 뚜껑에는 구름 무늬를 다시 새겼다. 그는 상자를 여자에게 가져다주었지만, 여자는 받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이미 높은 지대로 이사했으니 상자는 람 씨 곁에 남아야 한다고 했다. 그 장마 속에서 자신과 아들을 살아남게 한 사람은 바로 람 씨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상자는 람 씨의 집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금은보화나 연애편지가 들어 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해마다 자신이 잊을까 두려운 누군가와 관련된 작은 물건 하나씩을 그 안에 넣었다.

팔 수 없는 것들

첫 번째 물건은 자개로 만든 단추 하나였다. 아버지의 것이었다. 아버지는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며 아들에게 낡은 연장과 함께 이런 당부를 남겼다. 무슨 일을 하든 괜찮지만, 다른 사람의 믿음을 망가뜨리지는 말거라.

두 번째 물건은 닳아 해진 삼줄 한 토막이었다. 람 씨는 그것을 그해 홍수 때부터 간직했다. 그 줄을 볼 때마다 그는 물에 잠긴 집에서 자신이 구해 낸 소년을 떠올렸다. 여러 해가 지나 소년은 뱃사공이 되었다. 밤에 강을 건너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대개 돈을 받지 않았다.

세 번째 물건은 네 번 접힌 종이 한 장이었다. 그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몇 줄만 적혀 있었다. 그것은 한때 람 씨 밑에서 일하던 젊은 목수가 보낸 편지였다. 그는 손님의 귀한 문짝 세트를 망가뜨린 뒤 떠나 버렸고, 람 씨는 배상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팔아야 했다. 떠나기 전, 그는 자신이 부끄러워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썼다.

람 씨는 여러 해 동안 그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고향에서 백 킬로미터도 넘게 떨어진 목공소에서 그가 품팔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람 씨는 그곳으로 찾아가 꾸짖지 않고, 아직도 목공을 배우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돌아와 람 씨와 함께 십 년을 더 일했고, 그 뒤에는 자신의 작은 작업장을 열 수 있었다.

상자 속 종이는 그가 떠난 뒤 보낸 편지였다. 람 씨가 그것을 간직한 것은 그의 실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단지 한 번의 기회를 더 받는 것만으로도 다른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상자 안에는 파란 유리구슬 하나, 부러진 머리핀 하나, 서툴게 수놓은 천 조각 하나, 그리고 더는 쓸 수 없는 열쇠 하나도 있었다. 물건마다 이야기가 하나씩 딸려 있었다. 기쁜 이야기도 있고, 슬픈 이야기도 있고, 당사자들은 더는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래된 이야기도 있었지만, 람 씨만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돌아온 손녀

람 씨에게는 안이라는 손녀가 있었다. 안은 도시에 살며 특별한 날에만 고향에 내려왔다. 그녀는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고, 불이 환하게 켜진 방과 빽빽한 약속, 휴대전화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음에 익숙했다. 안은 할아버지를 사랑했지만, 할아버지가 왜 이웃의 낡은 의자를 몇 시간씩 고쳐 주면서도 돈을 받지 않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안은 람 씨가 나무 상자를 닦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길래 그렇게 조심스럽게 간직하세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란다.”

안은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가 농담한다고 생각했다. 안에게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서류, 돈, 가족사진, 혹은 컴퓨터에 백업해 둔 데이터였다. 낡은 단추나 삼줄 한 토막은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몇 달 뒤, 람 씨는 처마를 고치다가 넘어졌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며칠 동안 누워 쉬어야 했다. 안은 휴가를 내고 돌아와 할아버지를 돌보았다. 그동안 그녀는 할아버지의 집에 거의 늘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채소 한 다발을 가져오는 사람, 약을 가져오는 사람, 전구를 갈아 주러 오는 사람, 그저 차 한 잔을 마시며 할아버지의 통증이 좀 나아졌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오후, 옛날의 뱃사공이 찾아왔다. 그는 이미 늙어 머리가 거의 하얗게 세었지만, 그 장마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 람 씨가 물살을 거슬러 헤엄칠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자라서야 그날 자신을 구한 사람도 누구와 마찬가지로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다만 람 씨는 두려움이 자신을 대신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이다.

안은 곁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으로 그녀는 찬장 위의 상자를 낡은 물건으로 보지 않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보이지 않는 끈들을 담은 곳으로 바라보았다.

람 씨가 남기고 싶은 것

안이 도시로 돌아가기 전날 밤, 람 씨는 그녀를 찬장 곁으로 불렀다. 그는 상자를 내려 식탁 위에 놓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 든 물건은 안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지 않았다. 아마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버렸거나, 관계된 사람들에게 돌려주었을 것이다.

안은 단추와 삼줄, 파란 구슬과 네 번 접힌 종이를 알아보았다. 상자 바닥에는 구름과 초승달 무늬가 있는 작은 나무 조각이 놓여 있었다. 람 씨는 그것이 홍수 때의 낡은 상자에 남아 있던 조각이며, 옛날 그 여자가 자신에게 건네준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왜 이런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간직하고 계세요?” 안이 물었다.

람 씨는 야자나무 줄기 사이로 비스듬히 내리는 비가 보이는 마당을 바라보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걸 알기 위해서란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삶이 너무 비좁게 느껴질 때, 내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지.”

안은 상자를 잃어버릴까 봐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람 씨는 고개를 저었다. 상자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라고 했다. 언젠가 상자가 벌레에게 모두 갉아먹힌다 해도, 그 안의 것들은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 속에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안은 휴대전화를 꺼내 물건 하나하나를 찍으려 했다. 그러나 이내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도 있었고, 처음 듣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할아버지가 연도와 시기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대목도 있었지만, 한때 자신의 집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의 눈빛만큼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안은 도시로 돌아갔다. 차에 오르기 전, 그녀는 다음 주말에 다시 와서 집의 간판을 고쳐 주겠다고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람 씨는 낡은 간판도 아직 쓸 만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안은 간판이 망가져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가는 길에 안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대충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답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날 안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거의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었다. 성급하게 조언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어 주었다. 람 씨 집 처마 앞의 낮은 의자에 앉아 있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자에 담기지 않는 장마

몇 년 뒤, 람 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길 끝의 집은 안이 지켜 갔다. 나무 상자는 여전히 찬장 위에 놓여 있었다. 안은 상자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고, 그 안에 값비싼 물건을 넣지도 않았다. 누군가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친절을 베풀 때마다, 그녀는 작은 종이에 날짜와 이야기를 적어 상자 안에 넣었다.

어떤 종이에는 한 소년이 친구에게 비옷을 양보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어떤 종이에는 가게 주인이 떨어진 지갑을 돌려준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또 어떤 종이에는 아픈 가족이 있는 집을 위해 이웃이 말없이 죽을 끓여 주었다는 몇 글자만 적혀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세상 전체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덜 쓸쓸하고 덜 차갑게 만들었다.

상자는 점점 가득 차 갔다. 안은 람 씨가 그것을 장마를 담는 상자라고 부른 이유가 축축한 날들을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장마철에는 다른 사람이 허우적거릴 때 기꺼이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누구도 인생의 비를 피할 수는 없다. 어떤 때 우리는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어떤 때 우리는 마음이 약해진 사람 곁에 설 힘이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도울 수 있는 순간에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작다고 생각해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때맞춰 건네진 비옷 한 벌, 판단하지 않고 들어 주는 말 한마디, 혹은 한 번 더 주어진 기회는 모두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귀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여러 해 뒤, 갑자기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바로 그런 소박한 것들이 우리에게 알려 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때 세상으로부터 친절하게 대접받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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