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비탈의 소년
갈색 기와지붕과 높이 솟은 빈랑나무들이 있고, 구불구불한 흙길이 언덕 아래까지 이어지는 작은 마을 끝에 안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안은 마을에서 가장 건강한 아이도 아니었고, 또래 친구들처럼 빨리 달리거나 나무를 잘 타지도 못했다. 하지만 안에게는 아주 특별한 점이 하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는 소리를 언제나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은 이른 아침 이파리 위로 이슬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씨앗이 싹을 틔우려 할 때 흙이 살짝 갈라지는 소리, 바람이 잔잔한 오후에 노가 연못 수면에 닿는 소리를 들었다. 새로운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안은 가만히 앉아 고개를 기울이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안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 아이들은 안을 “풀과 나무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라고 불렀다. 어떤 어른들은 더 실용적인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은 그런 말들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자신이 바람에 휩쓸려 어디에 있어야 쓸모가 있는지도 모르는 작은 나뭇잎처럼 느껴졌다.
안은 숲 가장자리 가까이에 있는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아주 아름다운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었고, 안은 늘 어머니가 대나무를 쪼개고 마른 잎을 줍고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는 일을 도왔다. 늦여름 어느 날 저녁, 해가 언덕 너머로 기울 무렵 안은 북쪽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새소리도, 시냇물 소리도 아니었고,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도 달랐다. 그 소리는 가늘고 맑았으며, 마치 누군가 꿈속에서 살며시 부르는 듯했다.
“입구가 없는 정원을 찾아라.”
숲으로 이어지는 길
안은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집 처마 밑에 새로 짠 바구니들을 정리하고 있다가, 이야기를 듣고 잠시 말없이 있다가 아들에게 옥수수 과자 한 봉지를 건넸다.
“가고 싶다면 아직 날이 밝을 때 가거라.”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숲은 늘 관찰할 줄 아는 사람에게 가르쳐 줄 것이 있다는 걸 기억하렴.”
안은 허리에 과자 주머니를 매고 작은 물병을 챙긴 뒤 북쪽으로 향했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안은 억새밭을 지나 좁은 시냇물을 따라 걸었고, 빽빽한 초록 나무 덮개 아래를 걸었다. 가끔 안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개미가 작은 잎 조각을 끌고 가는 소리, 낮은 가지 위에서 참새들이 서로 부르는 소리, 바람 속에서 늙은 나무줄기가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안이 한참을 걸었을 때, 나무 밑동에서 낑낑거리는 갈색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다. 다람쥐 앞에는 두 뿌리 사이에 끼어 있는 커다란 솔방울 하나가 있었다.
“도와줄까?” 안이 물었다.
다람쥐는 안을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안은 솔방울을 잡아당겨 보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자세히 살펴보다가 솔방울 아래에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은 나뭇가지를 옆으로 치웠다. 솔방울이 굴러 나오자 다람쥐는 기뻐하며 그것을 껴안고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갔다.
잎사귀 사이로 사라지기 전에 다람쥐는 가느다란 덩굴 하나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걸 가져.” 안은 위에서 들려오는 다람쥐의 목소리를 들었다. “작은 것이 때로는 큰일을 도울 수 있단다.”
안은 고맙다고 말하고 계속 걸었다. 잠시 뒤, 그는 발이 엉킨 덩굴에 걸린 흰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안은 다람쥐가 준 덩굴로 나뭇가지들을 양옆으로 묶은 다음, 새의 발을 조심스럽게 풀어 주었다. 새는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고, 흰 깃털 하나를 땅에 떨어뜨렸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서둘러 버리지 마.” 안은 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귀 기울일 줄 아는 이에게 길을 알려 줄 수도 있단다.”
안은 그 깃털을 모자 테에 꽂았다. 숲속 동물들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지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무섭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들이 흔히 들려오는 더 깊은 곳에 부드럽게 나타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입구가 없는 정원
하늘은 점점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안은 밤이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모자에 꽂은 흰 깃털이 주변에 바람이 없는데도 살짝 흔들렸다. 깃털은 바위벽 가까이 자란 고사리 덤불 쪽으로 기울었다.
안은 고사리 잎을 걷어 내리다가 좁은 틈을 발견했다. 그는 바위틈을 지나 몇 걸음 더 걸었고, 곧 작은 골짜기 앞에 갑자기 서게 되었다. 그곳에는 넓은 정원이 있었지만, 문도 울타리도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도 전혀 없었다.
정원에는 온갖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물방울처럼 투명하고 둥근 열매를 맺는 나무도 있었고, 웃음소리를 들어야만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었으며, 누군가 다정한 말을 할 때마다 옅은 푸른빛을 내는 풀숲도 있었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물이 마른 돌우물이 있었고, 우물 가장자리에는 한쪽이 깨진 흙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안은 가까이 다가갔다. 정원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피곤한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러나 곧 이곳에 소리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잎사귀가 흔들리는 소리도, 곤충 소리도, 물 흐르는 소리도 없었다. 두꺼운 천이 모든 것을 덮은 듯 고요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정원이 슬퍼하고 있구나.”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이 돌아보았다. 낮은 나뭇가지 위에 작은 노파가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은 새하얗고, 이끼처럼 짙은 초록색 옷을 입고 있었다. 노파는 너무나 가만히 앉아 있어서 안은 그녀를 마른 나무줄기인 줄 알았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나는 이 정원을 돌보는 사람이지. 예전에는 이곳의 모든 것이 노래할 줄 알았단다. 그런데 어느 날 빗방울로 만든 풍경이 사라지고 말았어. 그 뒤로 정원은 소리를 내는 법을 잊어버렸지.”
“제가 그 풍경을 찾아도 될까요?” 안이 물었다.
노파는 한참 동안 안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많은 사람이 찾아왔단다. 꽃덤불 아래를 뒤지고, 돌을 하나씩 뒤집고, 우물 주변의 흙을 파헤쳤지. 모두 눈으로만 찾았을 뿐, 귀로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안은 마른 우물 곁에 앉았다. 그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만 들렸다. 그다음에는 나무줄기들이 아주 작게 숨 쉬는 소리, 땅 아래에서 마른 잎 하나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 우물 깊은 곳에서 아득하게 울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풍경 소리와는 달랐다. 아주 먼 곳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안은 눈을 뜨고 우물 가장자리에 놓인 흙항아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항아리를 들어 올렸다. 그 아래에는 둥글게 남은 먼지 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은 우물 벽에 손을 대 보았고,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리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가 바닥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우물 아래 가려진 것
우물은 안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었다. 안은 튼튼한 나무 밑동에 덩굴을 묶은 다음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노파는 이미 어두워졌으니 그만두라고 말리려 했지만, 안은 한 번만 더 확인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물 바닥에는 물이 없었다. 이끼가 덮인 둥근 돌들과 썩은 잎이 쌓인 층만 있었다. 안은 돌 하나하나에 손을 대고 그 울림을 들었다. 그중 하나가 다른 돌들보다 더 맑은 소리를 냈다. 안이 돌을 들어 올리자 흙에 반쯤 묻힌 작은 나무 상자가 보였다.
상자 안에는 투명한 구슬들로 엮은 아주 작은 풍경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풍경은 흔들리지 않았다. 안이 살짝 흔들어 보아도 여전히 조용했다.
안은 우물 밖으로 올라와 풍경을 노파 앞에 내놓았다.
“찾았어요.”
노파는 풍경을 받아 들었지만, 정원에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찾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단다.” 노파가 말했다. “풍경은 그것을 든 사람이 정원이 잊어버린 것을 기억해 낼 때만 울리지.”
안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투명한 열매들과 꽃잎을 닫은 꽃들, 빛을 내려고 애쓰는 푸른 풀숲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숲은 관찰할 줄 아는 사람에게 늘 가르쳐 줄 것이 있다는 말이었다.
“정원이 단지 바라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잊어버린 건가요?”
노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은 계속 말했다. “정원은 돌봄을 받아야 하지만, 귀 기울여 주기도 해야 해요. 식물은 꽃과 열매만 주는 게 아니에요. 자라는 방식으로, 떨어지는 잎으로, 심지어 가만히 있을 때에도 이야기를 들려줘요. 아마 정원이 슬픈 건 모두가 정원이 아름답기만을 바라고, 정원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말이 끝나자 풍경 속 구슬 하나가 살짝 흔들렸다. 연못 수면에 빗방울이 닿는 듯 맑은 소리가 작게 울렸다.
하지만 풍경은 아직 완전히 울리지 않았다.
진심 어린 말들의 소리
안은 정원의 구석구석으로 걸어갔다. 꽃을 꺾지도, 가지를 부러뜨리지도, 억지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투명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 밑동에서 안은 나무뿌리가 목말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노파에게 알렸고, 둘은 함께 가까운 시냇물에서 작은 물줄기를 끌어와 나무가 자라는 밭으로 흘려보냈다. 물줄기가 흙에 닿자 투명한 열매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를 들어야만 피는 꽃덤불에서 안은 꽃봉오리 하나가 한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솔방울을 껴안고 나무 사이를 달려간 다람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파는 숲에서 길을 잃었지만 새가 길을 안내해 주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둘은 함께 웃었다. 꽃봉오리가 살짝 벌어지며 은은한 향기를 퍼뜨렸다.
마지막으로 안은 정원 한구석에 서 있는 늙은 나무 곁으로 갔다. 그는 계속 귀를 기울였지만 나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지는 앙상했고, 껍질은 거칠었으며, 긴 균열 하나가 나 있었다.
“나무가 아파하고 있어요.” 안이 말했다.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오래전에 죽은 줄 알고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단다.”
안은 나무줄기에 손을 얹었다. 균열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나무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어요.” 안이 나무에게 말했다. “하지만 제가 여기 잠시 앉아 있을게요. 아픔을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되도록요.”
노파의 손에 들린 풍경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소리가 더 멀리 퍼졌다. 풍경 속 빗방울들이 서로 부딪혀 맑은 선율을 만들었고, 그 선율은 밭고랑 하나하나를 지나갔다. 늙은 나무줄기가 살짝 흔들렸다. 균열 사이로 싱그러운 연둣빛 새싹 하나가 돋아났다.
정원이 깨어났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고, 풀이 빛나고, 꽃이 살랑거리며, 투명한 열매들이 즐거운 딸랑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어떤 소리도 너무 크지 않았지만, 모든 소리가 작은 것들로 만들어진 음악처럼 서로 어우러졌다.
정원의 선물
노파는 안에게 풍경을 건넸다.
“네가 정원이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도록 도와주었구나. 이것을 마을로 가져가거라. 하지만 기억하렴. 이 풍경은 가장 시끄러운 사람들을 부르기 위해 울리는 것이 아니란다. 다른 이의 슬픔 앞에서 걸음을 멈출 줄 아는 사람을 위해 울리는 것이지.”
안은 노파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돌아가는 길을 물었다. 노파는 안의 모자에 꽂힌 흰 깃털을 가리켰다. 깃털은 방향을 바꾸어 안을 바위틈 밖으로 이끌었다. 떠나기 전에 안은 뒤돌아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곳이 모든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임을 알았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에 귀 기울일 만큼 참을성 있는 사람에게만 정원이 길을 열어 주는지도 몰랐다.
안이 집에 도착했을 때, 마을에는 막 불이 켜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안을 꼭 안아 준 뒤 아들의 손에 들린 작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찾아온 거니?” 어머니가 물었다.
안은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아주 진지하게 들었고, 웃지도 않았으며, 그런 이야기는 허황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안이 풍경을 들고 마당에 나왔을 때 한 이웃이 길을 잃은 고양이를 찾는 데 도와 달라며 찾아왔다. 안은 서둘러 사방으로 뛰어다니지 않았다. 그는 대나무 덤불 주변에 앉아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쓰지 않는 창고에서 희미하게 야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뒤, 마을의 한 아이가 어머니가 아끼는 그릇을 깨뜨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차례로 아이에게 울음을 그치라고 타일렀지만, 안은 곁에 앉아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아이가 슬픔을 모두 털어놓자, 스스로 눈물을 닦고 어머니와 함께 깨진 조각들을 치웠다.
점차 마을 사람들은 안이 자신들이 예전에 생각했던 방식으로 이상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안에게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능력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천천히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능력, 바로 판단하기 전에 귀 기울이고, 결론을 내리기 전에 관찰하며, 아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을 때에도 다른 사람 곁에 있어 주는 능력이었다.
아이를 위한 작은 교훈
정원의 풍경은 안을 유명하게 만들어 주는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심 어린 관심이 흔히 한 번의 침묵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안에게 일깨워 주었다. 귀 기울이면 친구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어도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잎이 아직 시들지 않았어도 나무가 목말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계속 강한 척하고 있어도 사실은 내가 지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귀 기울일 줄 안다는 것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말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귀 기울인다는 것은 상대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관심과 존중을 건네는 것이다. 때로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조언이 아니라 다정한 곁에 있어 주는 일이다.
그날부터 매일 밤 잠들기 전, 안은 창가에 풍경을 놓아두었다. 밤이 고요하면 나뭇잎 소리를 들었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긴 밤, 마을의 누군가가 곁에 앉아 줄 사람을 필요로 할 때면 풍경은 아주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이 넓은 세상에서 어떤 슬픔도 침묵 속에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에게 일깨워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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