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수리공과 장마를 간직한 방

작은 거리 끝에는 간판을 한 번도 내건 적 없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그저 람 씨의 시계 가게라고 불렀다. 가게는 좁고 기와지붕은 낮았으며, 문 앞에는 사람들이 기다리며 오랜 세월 앉은 탓에 반들반들해진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안쪽에는 온갖 모양의 시계 수백 개가 벽과 유리 진열장, 비좁은 선반 위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시계는 규칙적으로 똑딱거렸고, 어떤 시계는 한 박자 빠르게 갔으며, 또 어떤 시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소리를 멈추었지만 람 씨는 여전히 그것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람 씨는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시계를 고쳤다. 그의 아버지는 고장 난 시계는 단지 시간을 알려 주는 능력만 잃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곤 했다. 때로는 주인이 아직 끝맺을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고. 그래서 람 씨는 낡은 시계를 절대로 서둘러 버리지 않았다. 그는 톱니 하나하나를 닦고, 태엽을 갈고, 휘어진 바늘을 바로잡으며, 시계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가장 작은 소리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들었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의 물건들 가운데에는 가게 뒤편에 있는 방 하나가 있었다. 그 방의 문은 늘 잠겨 있었지만, 여러 해 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자물쇠에는 녹슨 흔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 안에 귀한 시계들을 보관해 두었다고 수군거렸다. 몇몇 아이들은 람 씨가 그곳에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시계를 숨겨 두었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씨라는 손녀가 주말마다 그를 도와 가게를 정리하러 올 때를 제외하면, 그 방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은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것은 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람 씨가 아주 오랫동안 침묵하곤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어느 날 그는 드라이버를 내려놓고 문 쪽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일찍 열어 버리면, 어떻게 다시 닫아야 할지 모르는 것들도 있단다.”

떠나지 않으려는 비

그해, 마을에는 긴 가뭄이 찾아왔다. 시장 뒤편의 개울은 바닥의 하얀 돌들이 드러날 만큼 말라붙었다. 나무와 풀은 얇은 먼지로 뒤덮였고, 한낮이면 지붕은 뜨겁게 달아올랐으며,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야 했다. 모두가 비를 기다렸지만, 하늘은 날마다 냉정할 만큼 푸르렀다.

그러던 어느 오후, 구름이 갑자기 몰려왔다. 비는 세차게 쏟아졌고, 바람을 타고 비스듬히 내리며 기와지붕을 연달아 두드렸다. 마을 사람들은 처마 밑으로 뛰어나왔다. 어떤 이는 손을 내밀어 빗물을 받았고, 어떤 이는 안도감에 웃었다. 비는 밤새 내렸고, 다음 날 내내 이어졌다. 사흘째가 되자 거리는 흙탕물로 변했다. 이레째가 되자 물은 낮은 집 여러 채의 문턱을 넘어섰다.

람 씨는 시계를 고치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여전히 가게 문을 열었다. 그는 나무 책상 곁에 앉아 빗소리를 듣고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안은 하늘이 짙은 회색으로 뒤덮인 어느 아침 그를 찾아갔다. 그녀는 람 씨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괘종시계를 닦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시계를 고치려고요?” 안이 물었다.

“아니,” 그가 대답했다. “아직 움직이는 법을 기억하고 있는지 들어 보려는 거란다.”

그날 오후, 물이 가게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안과 람 씨는 상자들을 높은 곳으로 옮겨 놓았지만,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천둥소리에 유리창이 흔들리자 람 씨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에서 은빛 열쇠 하나를 꺼냈다.

“이제 때가 되었구나.” 그가 말했다.

그는 가게 뒤편의 방을 열었다. 안이 뒤따라 들어가자 곧바로 바깥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방에는 창문이 없었지만, 천장에는 비 갠 뒤의 하늘빛 같은 희미한 빛줄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네 벽을 따라 커다란 유리병들이 놓여 있었고, 각각의 병에는 저마다 다른 색을 띤 엷은 안개가 담겨 있었다. 어떤 병에서는 이른 아침의 황금빛이 빛났고, 어떤 병은 늦가을 저녁처럼 옅은 푸른색을 띠었으며, 또 어떤 병은 첫 장맛비가 내린 뒤 흙마당의 빛깔처럼 적갈색을 띠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성인보다 키가 큰 시계가 서 있었다. 시계판에는 숫자가 없고, 텅 빈 원과 움직이지 않는 바늘 하나만 있었다.

“이게 뭐예요?” 안이 속삭였다.

“마을의 비 내리는 날들이란다.” 람 씨가 대답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잊을까 두려운 것들을 이곳으로 가져왔지. 가족이 돌아온 어느 오후, 불가에 앉아 보낸 어느 밤, 몇 달 동안 이어진 더위 뒤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준 한 차례의 비 같은 것들을 말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그것들을 간직해 왔단다.”

안은 놀라움과 혼란이 뒤섞인 눈으로 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밖의 비도 이 방과 관련이 있어요?”

람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가 너무 많이 간직했나 보다. 사람이 아름다운 모든 것을 붙잡아 두려고 하면, 그것들이 흘러갈 자리를 잃게 되지. 비도 마찬가지란다.”

멈춰 선 바늘

람 씨는 여러 해 전, 마을에 아주 짧은 장마가 찾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가 내리자마자 그쳐 버려 논밭은 갈라지고 우물물은 점점 말라 갔다. 그때 그는 서른 살이 갓 넘었고, 병을 앓던 남동생을 잃은 직후였다. 동생은 비를 무척 좋아했다. 자주 처마 앞에 앉아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다가, 빗방울 하나하나가 먼 곳에서 전해 오는 좋은 소식을 품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장례를 치른 뒤, 람 씨는 맑게 갠 날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두 형제가 함께 앉아 맞았던 마지막 비의 소리와 흙냄새, 하늘빛을 붙잡아 둘 방법을 찾았다. 시계를 고치는 장인이었던 그는 기억을 보관하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특별한 하루를 간직하고 싶어 하면, 그는 그 하루를 병 속에 담아 주었다. 그렇게 방은 점점 가득 차 갔다.

처음에는 간직하는 일이 모두를 기쁘게 했다. 사람들은 언제든 추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사람은 병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어머니는 옛날 어느 오후에 들었던 아이의 웃음소리만 계속 들으며, 자라고 있는 자신의 아이에게 안부를 묻는 일을 잊었다. 어떤 남자는 예전에 풍년이 들었던 때만 기억하며, 새 농사를 위한 씨앗을 뿌리려 하지 않았다. 한 소녀는 사랑받았던 날을 간직한 뒤, 현재가 과거만큼 아름답지 않을까 두려워 모든 만남을 거부했다.

람 씨는 그것을 깨달았지만 방의 문을 열 용기가 없었다. 비 내리는 날들을 흘려보내면 동생의 모습마저 영영 잃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방을 잠그고 계속 시계를 고치면서, 톱니바퀴만 세심하게 돌본다면 시간이 멈출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안은 커다란 시계 가까이 다가갔다. 유리판 위에는 중심에서 바깥 가장자리까지 이어지는 가느다란 금이 가 있었다. 바늘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병들을 열면 어떻게 돼요?” 그녀가 물었다.

“모든 기억이 제자리로 돌아가겠지.” 람 씨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아마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될 거예요.”

그 말에 람 씨는 오랫동안 안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서는 물이 마지막 문턱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빗소리 속에서 시계 가게가 가볍게 흔들렸다.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한 노인의 두려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돌려준 비 내리는 날들

두 사람은 가장 작은 병부터 시작했다. 람 씨가 유리 마개를 빼자 안은 병을 방 입구에 놓았다. 투명한 안개 한 줄기가 피어오르며 젖은 나뭇잎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실어 날랐다. 그러자 곧바로 거리에서 이웃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 안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는 갑자기 마을 끝에 사는 옛 친구가 떠올랐다. 한 아버지는 창가에 서 있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며칠 동안 이어진 비가 내린 뒤 처음으로 물었다. “춥지 않니?”

그들은 두 번째 병을 열고, 이어 세 번째 병을 열었다. 기억 하나가 돌아올 때마다 거리의 물은 조금씩 빠졌다. 아주 즐거운 비 내리는 날들도 있었고, 슬픔을 동반한 날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발소리를 다시 듣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떤 이는 처마 곁에 아주 오래 앉아 자신이 사과의 말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슬픔이 지나갈 때마다 마을은 한결 편하게 숨을 쉬는 듯했다.

마지막 병에 이르자 람 씨는 더 이상 직접 마개를 열 수 없었다. 그 안에는 은빛 안개가 담겨 있었고, 그것은 부엌의 연기처럼 조용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동생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오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처마 밑에 앉아 따뜻한 고구마 하나를 나눠 먹으며 첫 장맛비를 들었다. 동생은 이듬해에는 형과 함께 지붕을 고쳐서 더는 새는 물을 피하지 않아도 되게 하자고 말했다.

“그건 간직해도 돼요.” 안이 말했다.

람 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더는 들을 수 없을 테니까.”

그는 병의 마개를 열었다. 은빛 안개가 피어올라 방 안을 스쳐 지나간 뒤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커다란 시계에서 마른 작은 소리가 났다. 멈춰 있던 바늘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에서는 비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세차게 쏟아지던 소리가 기와지붕 위에 드문드문 떨어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비가 그쳤을 때, 마을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시장 뒤편의 개울에는 물이 가득했고, 나뭇잎을 뒤덮었던 먼지는 씻겨 내려갔으며, 길바닥에는 엷은 오후의 빛이 비쳤다. 가게 뒤편의 방에는 더 이상 희미한 안개가 가득 찬 병들이 없었다. 그곳에는 깨끗하고 투명한 빈 유리병들만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

그날 이후 람 씨는 누구를 위해서도 비 내리는 날을 간직하지 않았다. 누군가 중요한 순간에 멈춰 버린 시계를 가져오면 그는 여전히 그것을 고쳐 주었지만, 언제나 같은 말을 덧붙여 돌려주었다. 시계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을 뿐, 그 시간 동안 우리를 대신해 살아 줄 수는 없다고.

비밀의 방은 모두에게 개방되었다. 람 씨는 그곳을 작은 독서 공간으로 바꾸었다. 마을 사람들은 찾아와 추억을 이야기하거나, 감사의 말을 적거나, 그저 가만히 앉아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구도 더 이상 기억을 병 속에 가둘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서로에게 건네며, 그 기억이 현재의 일부가 되게 했다.

안은 계속해서 람 씨가 시계를 고치는 일을 도왔다. 그녀는 걸려 버린 태엽 소리와 어긋난 톱니바퀴, 지나치게 빠르게 움직이는 바늘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녀가 얻은 가장 중요한 배움은 책상 위의 도구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일이 오늘만큼 좋지 않을까 두려워 아름다운 날들을 붙잡아 두려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로 계속 돌아가기만 한다면, 또 하나의 아름다운 날을 만들어 낼 기회를 놓치게 된다.

람 씨는 그 뒤로도 여러 해를 더 살았다. 비가 내릴 듯한 날이면 그는 나무 의자를 가게 앞에 내놓고 차 두 잔을 따라 안과 함께 앉았다. 두 사람은 비가 얼마나 오래 내릴지 애써 짐작하지 않았다. 빗소리를 하나하나 병 속에 붙잡아 두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귀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빗물이 흘러가야 할 곳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시간은 사람이 지나가 버린 순간들을 하나씩 주워 오기 위해 되돌아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이미 지나간 것들을 조용히 뒤로 데려가는 물줄기인 동시에, 우리 눈앞에 새로운 빈자리를 열어 주는 흐름이다. 그 빈자리는 우리를 두렵게 할 수도 있지만, 바로 그곳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날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자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