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이야기

초여름 바람이 푸디엔 마을로 이어지는 붉은 흙길을 따라 부드럽게 불어왔다. 막 갈아엎은 밭의 흙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넓게 펼쳐진 밭들은 아침 햇살 아래 고요히 누워 사람의 손길이 자신들을 깨워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시사철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숲 옆, 마을 끝자락에는 유난히 이름난 밭이 하나 있었다. 길 어귀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도 그곳의 옥수수는 다른 밭보다 더 푸르고 가지런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한 포기 한 포기에 정성과 애정이 스며든 듯했다.

그 밭의 주인은 람 아저씨였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부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와지붕 집은 소박했고, 회벽은 세월에 바래 있었다. 마당에는 빗물을 받아두는 항아리 몇 개와 낡은 자전거 한 대, 그리고 길 위로 길게 뻗은 수세미 덩굴뿐이었다. 그래도 그의 이름이 나오면 마을 사람들은 늘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의 기색을 보였다. 그는 해마다 지역 농업 협동조합으로부터 가장 우수한 옥수수 종자를 가진 농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의 옥수수는 알이 통통하고 황금빛으로 빛났다. 햇볕에 말리면 경쾌하게 튀는 소리가 났다. 어떤 이삭이든 속이 꽉 차 있었고 병해도 적었다.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읍내 상인들까지 수확도 하기 전에 미리 찾아와 사가겠다고 약속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가 그 비결을 결코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씨를 뿌리는 계절이 되면 그는 종자를 작은 봉지에 나누어 말린 바나나 섬유로 묶은 뒤 이웃집들을 찾아다녔다. 마을 어귀에 사는 바이 아저씨, 운하 옆에 사는 과부 호아 아주머니, 막 독립한 청년 띤, 그는 누구에게나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값을 묻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좋은 씨앗은 여러 곳에 심겨야 기쁘지요.”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 씨앗을 받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시골에서는 소중한 비법을 혼자만 간직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너그러움 뒤에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지 의심하기도 했다.

어느 비가 막 그친 우기의 늦은 오후, 보랏빛 구름이 아직 지평선에 남아 있던 무렵, 한 낯선 사람이 그의 집을 찾아왔다. 성의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 민이라는 청년이었다. 소문난 종자 이야기와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취재하러 온 것이었다.

람 아저씨는 마당에서 막 딴 녹차로 그를 맞이했다. 따뜻한 김이 올라오며 은은한 향이 퍼졌다. 두 사람은 마당 망고나무 아래 놓인 대나무 평상에 앉았다.

민이 수첩을 펼치며 솔직하게 물었다.

“어르신, 왜 그렇게 좋은 씨앗을 이웃들에게 쉽게 나눠주시는 건가요? 다른 사람들이 어르신보다 더 잘 길러서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잖아요.”

람 아저씨는 비 온 뒤의 흙처럼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 근처 밭들 봤나?”

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잘 자라고 있더군요.”

람 아저씨는 푸르게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옥수수는 바람으로 수분을 해. 한 밭의 꽃가루가 다른 밭으로 날아가지. 주변 옥수수가 품질이 나쁘면 아무리 내 씨앗이 좋아도 나쁜 꽃가루가 날아와 점점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내 씨앗을 좋게 지키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도 좋은 씨앗을 갖게 하는 게 제일이야.”

민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 대답은 소박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람 아저씨는 차를 더 따르며 말했다.

“농사는 오래전부터 이걸 가르쳐줬지. 내 밭이 푸르길 바라면 들판 전체가 푸르길 바라는 게 맞아.”

그 말은 민이 돌아가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중에 그가 쓴 기사는 단순한 재배 기술 이야기가 아니라, 주고받음의 법칙을 한 농부의 삶을 통해 풀어낸 글이 되었다.

하지만 람 아저씨의 진짜 이야기는 상을 받기 시작한 때부터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 푸디엔 마을은 한 번 큰 흉작을 겪은 적이 있었다. 해충이 급속히 퍼지고, 철 아닌 장마가 길게 이어지면서 많은 옥수수밭이 제대로 여물기도 전에 누렇게 말라버렸다. 그때 그의 집도 가난했다. 아내는 첫아이를 갓 낳았고, 집에는 남은 식량이 거의 없었다.

그는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좋은 종자를 다음 해를 위해 혼자 간직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옆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두 아이를 혼자 키우던 호아 아주머니의 집이었다. 흉작으로 그녀의 집은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람 아저씨는 씨앗 바구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망설임 끝에 그는 씨앗을 반으로 나누어 그녀의 집으로 가져갔다.

호아 아주머니는 바구니를 받아 들고 눈물을 글썽였다.

“댁도 힘든데 이렇게 많이 주셔도 돼요?”

그는 그저 미소 지었다.

“아직 씨를 뿌릴 수 있으면 희망도 있는 거죠.”

다음 계절, 그녀의 밭은 좋은 씨앗 덕분에 풍작을 맞았다. 그녀는 씨앗 일부를 돌려주며 밭에서 캔 고구마도 함께 가져왔다. 그 뒤로 두 집은 늘 서로를 도우며 지냈다.

그해 람 아저씨는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펴서 내어줄 때 돌아오는 것은 씨앗만이 아니었다. 이웃의 따뜻함, 어려울 때 서로 기대 설 수 있는 관계였다.

점차 씨앗을 나누는 일은 그의 습관이 되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몇 집뿐이었지만, 점점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의심하며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척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 말을 들어도 웃기만 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묵묵히 이어갔다.

세월이 흐르자 그의 집 주변 밭들은 점점 비슷해졌다. 씨앗이 강해지면서 병해도 줄었고, 수확량은 지역 전체에서 늘어났다. 상인들도 더 많이 찾아왔고, 가격도 전보다 나아졌다. 잘살게 된 것은 람 아저씨 한 사람만이 아니라 푸디엔 마을 전체였다.

어느 아침, 대숲 너머로 해가 떠오를 무렵, 람 아저씨는 여덟 살 손자를 데리고 밭으로 나갔다.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왜 좋은 씨앗을 우리 집만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러면 우리가 마을에서 제일 부자가 될 수 있잖아요.”

람 아저씨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밭만 좋고 주변이 다 나쁘면 바람이 나쁜 것도 함께 가져오지. 그리고 우리만 잘살고 이웃이 다 힘들면 그게 정말 기쁠까?”

손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람 아저씨는 미소 지었다.

“사람도 밭과 같단다. 남을 잘 대해주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돌아와.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말이지.”

손자는 아직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초록 옥수수밭의 모습은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세월이 더 흘러 람 아저씨가 늙어 밭에 자주 나가지 못하게 된 뒤에도, 마을 사람들은 씨앗을 나누는 습관을 지켜나갔다. 씨 뿌리는 계절이면 마을 회관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여 좋은 씨앗을 가져와 서로 나누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또렷이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 덕분에 삶이 전보다 나아졌다는 사실만은 모두 알고 있었다.

늦가을 어느 오후, 람 아저씨는 집 앞에 앉아 새로 파종된 먼 밭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초록 물결을 만들어 지평선까지 출렁였다. 그의 마음은 구름처럼 가벼웠다.

굶주렸던 젊은 시절, 지킬 것인가 나눌 것인가 망설이던 순간들, 손해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믿어보려는 용기. 그때마다 그는 나누는 쪽을 택했고, 내어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돌아왔다.

그것은 돈이 아니었다.

고마움이 담긴 이웃의 눈빛, 함께 웃는 식탁, 아플 때 안부를 묻기 위해 찾아오는 발걸음.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저녁 바람이 대숲을 흔들며 익숙한 소리를 실어왔다. 람 아저씨는 조용히 눈을 감고 먼 밭에서 풍겨오는 어린 옥수수 향을 들이마셨다. 어딘가에서 작은 꽃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밭과 밭을 이어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소박한 친절로 서로 이어지는 모습과도 같았다.

결국 사람의 삶도 씨를 뿌리는 한 철과 닮아 있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모두 흙에 심는 씨앗이다. 어떤 것은 기쁨으로 자라고, 어떤 것은 슬픔으로 자란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으로 일군 땅은 결코 그 보답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넓은 들판에서, 완전히 홀로 떨어진 밭은 하나도 없다.

같은 장르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