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 뒤 나루터와 약속을 지킨 사람

반 바이 마을 끝자락에는 그리 넓지 않은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우기만 되면 강물은 탁하게 불어나 나뭇가지와 볏짚, 심지어 강가에 있는 집들의 널빤지 조각까지 휩쓸어 갔다. 강 건너편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마을 아이들은 여전히 그곳에 소를 몰고 갔으며, 어른들은 모내기를 하거나 읍내 장에 가기 위해 강을 건넜다. 콘크리트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 대나무 숲 뒤 나루터는 거의 유일하게 양쪽 강변을 이어 주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배를 젓는 사람의 이름은 뜨 란 아저씨였다. 그는 마르고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가졌으며, 머리카락은 강바람 때문에 언제나 헝클어져 있었다. 그의 나룻배는 새것이 아니었다. 나무 선체는 여러 번 기워져 있었지만 언제나 깨끗했다. 매일 아침 첫 배를 강 건너로 보내기 전에 그는 야자 껍질 바가지로 배 밑에 고인 물을 퍼내고, 노를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았다.

뜨 란 아저씨는 승객에게 돈이 있는지 없는지 절대 묻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돈이 있는 사람은 요금을 냈고,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노 아래에 놓인 작은 수첩에 외상으로 적었다. 어떤 사람은 하루 뒤에 갚았고, 어떤 사람은 한 철 농사를 지은 뒤에 갚았으며, 어떤 사람은 계속 배를 타고 다니다가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는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누군가 미안해하면 그는 늘 웃으며 말했다. “강물이 흐르는 동안에는 사람도 다시 만나게 되는 법이야. 배 한 번 탔다고 서로 마음 상하게 하지 말게.”

강가의 책가방

그해 마이는 열두 살이었고, 마을 어귀의 낡은 기와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온갖 허드렛일을 했지만 딸에게 새 신발 한 켤레를 사 줄 돈조차 충분하지 않았다. 마이는 공부를 잘했으며 특히 문학을 좋아했다. 수업 시간에 글을 읽을 때마다 목소리가 맑고 또렷해서 선생님은 훗날 책을 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고 자주 말했다.

마이는 그렇게 먼 훗날까지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일자리를 구해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 드리고 싶을 뿐이었다. 그날 아침, 마이는 지각할까 봐 책가방을 끌어안고 나루터로 달려갔다. 막 비가 그친 뒤라 흙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나무 계단을 내려서던 순간 마이는 발을 헛디뎠다. 손에서 책가방이 튕겨 나가 물가로 퐁당 떨어졌다.

뜨 란 아저씨는 배를 말뚝에 묶고 있었다. 비명 소리를 듣자 그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의 물은 가슴 높이밖에 오지 않았지만 물살이 세서, 그는 부평초 무더기를 돌아 헤엄친 뒤에야 책가방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가 배 위로 올라왔을 때 옷은 흠뻑 젖어 있었고, 손바닥은 유리 조각에 베여 찢어져 있었다.

마이는 책가방을 끌어안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가방 안에는 밤새도록 글을 써서 완성한 문학 공책이 들어 있었다. 잉크는 거의 모두 번져 버렸지만 마지막 몇 장은 아직 멀쩡했다.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물어 드릴 돈이 없어요.” 마이가 말했다.

뜨 란 아저씨는 낡은 수건으로 마이의 얼굴에 묻은 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공책 하나 젖은 건 다시 말리면 돼. 사람이 강에 빠지는 게 정말 걱정할 일이란다. 어서 배를 타거라. 수업에 늦겠다.”

그날 마이는 학교에 늦게 도착해 선생님에게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선생님은 벌을 주지 않고 마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마이에게 새 공책 한 권을 건넸다. 마이는 공책을 받아 들고 기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슬펐다. 뜨 란 아저씨에게 감사하고 싶었지만, 집에는 어머니가 아껴 둔 고구마 몇 개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밤 마이는 고구마 두 개를 바나나 잎 조각에 싸 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 나루터로 가져갔다. 뜨 란 아저씨는 그것을 받아 들고 일부러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게 뱃삯이냐?”

“네, 아저씨께 드리는 거예요.”

“그럼 받으마. 하지만 이제부터 재미있는 글을 쓰면 한 토막 읽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날부터 마이는 강을 건널 때마다 자신이 읽은 이야기들을 뜨 란 아저씨에게 들려주곤 했다. 길가에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야기일 때도 있었고, 가족을 다시 찾은 아이의 이야기일 때도 있었다. 뜨 란 아저씨는 많은 부분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귀 기울여 들었다. 그가 좋아한 것은 마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었다. 마이의 목소리를 거치면 모든 이야기가 방금 나룻배에서 내린 손님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나무 숲 아래의 약속

마이가 읍내 고등학교에 합격했을 때, 가족은 그녀가 하숙할 돈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마이는 학업을 그만두고 봉제 공장에 취직하려 했다. 이 소식을 안 뜨 란 아저씨는 마이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이의 어머니에게 쌀 한 자루를 내밀며, 몇 년 전부터 마이네 가족에게 갚지 못한 뱃삯이라고 말했다. 사실 마이의 어머니는 그에게 외상을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이의 어머니가 거절했지만, 뜨 란 아저씨는 쌀자루를 처마 밑에 내려놓고 돌아갔다. 사흘 뒤 그는 다시 낡은 스탠드 하나를 가져왔다.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있고 전선은 테이프로 감겨 있었지만 불은 여전히 켜졌다. 그는 먼 곳에 사는 친척이 보내 준 것인데 자기 집에서는 쓰지 않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마이는 그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나루터로 달려가 대나무 숲 아래에서 그를 찾았다.

“나중에 제가 아저씨께 꼭 갚을게요.” 마이가 말했다.

뜨 란 아저씨는 웃으며 노를 배 바닥에 짚었다. “기억하고 있다면 나한테 갚지 마라. 훗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네가 도울 수 있다면, 그냥 손을 내밀어라. 그걸로 충분하다.”

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이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자신을 따라다니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마이는 작은 출판사에서 일했다. 비좁은 방을 빌려 살며 매일 버스를 타고 다녔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 바쁜 생활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어머니에게 전화할 때마다 마이는 나루터 이야기를 물었지만, 어머니는 그때마다 뜨 란 아저씨가 여전히 건강하고 예전처럼 배를 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우기에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새 다리가 완공되었다고 알렸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나룻배를 탈 필요가 없었다. 뜨 란 아저씨는 지붕을 걷어 내고 배를 정원 뒤 작은 창고에 넣어 두었다. 마이는 주말에 그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마침 출장을 가야 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는 일이 또 다른 일을 이어 갔다. 약속은 계속 미뤄졌고, 그러던 어느 날 마이는 뜨 란 아저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오는 길

마이는 늦가을 어느 오후 마을로 돌아왔다. 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은 풀로 뒤덮여 있었다. 예전에는 듬성듬성하던 대나무 숲이 이제는 빽빽하게 우거져, 잎사귀가 서로 부딪히며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대화처럼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새 다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여 있었고, 넓고 튼튼했으며 차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하지만 옛 나루터에는 썩어 가는 나무 계단 몇 개와 물가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배 매는 말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뜨 란 아저씨의 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이웃 사람이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마이에게 건네며, 그녀가 돌아오면 전해 주라고 그가 부탁했다고 말했다.

상자 안에는 뱃삯을 기록한 수첩이 들어 있었다. 처음 몇 장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름 옆에 아주 적은 금액을 적어 두었고, 어떤 줄에는 그저 줄표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수첩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이는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이름 아래에는 숫자가 하나도 없고, 떨리는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야기로 이미 갚았다.”

마이는 집 처마 아래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안개 속에 서 있던 뜨 란 아저씨의 아침 모습, 낡은 수건, 젖은 나무 냄새, 물을 가르는 노 소리가 떠올랐다. 대나무 숲 아래에서 나눈 약속도 기억났다. 그동안 마이는 몇몇 동료를 도왔고, 하숙집에 사는 한 아이에게 책을 사 준 적도 있었으며, 친구의 자녀를 위해 말없이 학비를 내 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뜨 란 아저씨에게 진 빚을 갚는 방법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음 날 마이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다. 새 다리가 큰길 바깥에 놓여 있어서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빛이 부족한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형제자매가 쓰던 낡은 책과 공책을 물려받아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남이라는 이름의 한 소년은 마이에게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남은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표지가 떨어져 나간 동화책 몇 권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이는 도시로 돌아가 출판사 친구들에게 나루터와 수첩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거창한 일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 아이들이 읽기에 알맞은 책 한 권을 보탤 수 있는지 물었다. 한 달 뒤, 마이는 몇몇 사람과 함께 책 상자 여러 개와 스탠드 몇 개, 학용품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왔다. 마이의 어머니는 마을 회관 옆 빈방을 독서 공간으로 써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마을 사람들은 청소를 하고 선반을 만들고 창문을 고치는 데 힘을 보탰다.

마이는 그 방의 이름을 ‘나루터 한구석’이라고 지었다. 큰 간판을 걸지도 않았고, 설립자의 이름을 적지도 않았다. 벽에는 낡은 노 하나만 깨끗이 닦아 걸었다. 이웃 사람이 뜨 란 아저씨의 집 창고에서 찾아온 것이었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그 후 몇 년 동안 마이는 여름마다 마을로 돌아와 아이들을 위한 독서 시간을 마련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제때 선행을 베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처음부터 뜨 란 아저씨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선 kindness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아주 거창한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남이 물었다. “선생님, 나중에 제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그 사람이 꼭 갚아야 해요?”

마이는 강을 바라보았다. 저녁 햇살이 수면 위에 아른거리는 빛의 줄무늬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전 뜨 란 아저씨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강물이 흐르는 동안에는 사람도 다시 만나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 마이가 대답했다. “하지만 네가 도움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기억하렴.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야.”

남은 고개를 끄덕인 뒤 눈앞의 책을 펼쳤다. 저 멀리 새 다리는 여전히 양쪽 강변 사이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옛 나루터에서는 더 이상 노 젓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나룻배를 몰던 사람의 이야기는 여전히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마이에게서, 한 번도 그를 만나 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로.

어떤 약속은 종이에 쓰이지도 않고, 누군가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그런 약속은 작은 행동 하나에 남아 세월과 함께 조용히 자라난다. 그러다 어느 날, 사랑과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게 된다. 그때 은혜의 빚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물줄기가 되어 앞으로 계속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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