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앞 처마 밑의 등불

돌아오는 날이 없는 표

민은 10월의 어느 오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초가을의 첫비가 역 앞길을 충분히 적셔 물빛으로 반짝이게 만든 때였다. 역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오래된 유칼립투스 나무들 곁에 몸을 낮춘 채, 기와지붕은 짙은 색으로 변해 있었고 역 이름이 적힌 표지판은 햇빛과 바람에 빛이 바래 있었다. 다만 역 앞의 동네만 달라져 있었다. 땀 아줌마의 찻집은 사라졌고, 오토바이 수리점은 밝은 파란색으로 다시 칠해졌으며, 한때 포스터로 가득했던 벽은 이제 온통 이끼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처마 밑에 서서 여러 번 접은 낡은 기차표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 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거의 20년 동안 그의 책상 서랍 속에서 영수증과 서류, 가족사진 몇 장 사이에 놓여 있었다. 표면의 날짜는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번져 있었다. 민은 그것이 아버지와 다툰 뒤 어느 여름 아침에 탔던 기차표였다는 것만 기억했다.

그때 그는 스물두 살이었고, 온 세상이 낯선 도시에 있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민이 낡은 여행 가방을 들고 대문으로 나설 때, 아버지 럼 씨는 한마디만 물었다. “정말 잘 생각해 본 거냐?”

민은 그것을 의심하는 말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은 이미 다 컸고 누구도 자신을 대신해 결정할 필요가 없다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럼 씨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날씨가 더운데도 얇은 재킷을 들고 나왔다. 밤 기차 안은 대개 춥다고 했다.

민은 재킷을 받지 않았다. 그는 나무 대문 곁에 아버지를 남겨 둔 채 걸어갔다. 기차가 역을 떠날 때까지 그는 창문 너머로 럼 씨를 보았다. 빛바랜 셔츠를 입은 마른 남자가 한 손을 모자 테에 얹고, 다른 손은 옆으로 축 늘어뜨린 채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처마 밑에 매달린 등이 있었고, 희미한 노란빛이 바람 속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민은 아버지가 곧 전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지만, 아들이 멀리 떠날 때마다 도착하면 소식을 알리라고 당부하곤 했다. 그러나 그날 기차 안에서는 전화가 한 통도 오지 않았다. 민도 전화하지 않았다. 젊은 날의 자존심은 두 사람을 침묵하게 만들었고, 거리는 날이 갈수록 점점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역을 지키는 사람

이제 민이 돌아온 것은 집을 팔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는 몇 년 더 혼자 살다가 어느 겨울밤 세상을 떠났다. 그때 민은 해외에 있었고, 장기간 이어지는 프로젝트와 연이은 회의로 바빴다. 그는 장례를 치르러 돌아와 필요한 서류 몇 가지에 서명하고, 집을 돌볼 사람을 고용한 뒤 다시 떠났다. 그것이 그가 역 앞 처마 밑의 등불 앞에 서 본 마지막이었다.

옛 역무실에서는 하인 아주머니가 낡고 구겨진 장부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역에서 민의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사람이었다. 럼 씨가 퇴직한 뒤에도 그녀는 가끔 들러 대합실을 지키고 마당의 화분 몇 개를 돌보았다.

“집 정리하러 돌아온 거냐?” 그녀가 물었다.

“네. 아마 집을 팔 것 같아요.”

하인 아주머니는 놀란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민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 준 뒤 텅 빈 역 구내를 바라보았다. 막 지나간 저녁 기차가 공기 속에 긴 쇳소리의 울림을 남겨 두고 있었다.

“네 아버지는 예전에 밤이면 자주 이곳에 나오곤 했단다.” 그녀가 말했다.

민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는 역에서 일하셨으니 여기 나오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아주머니.”

“일하러 나온 게 아니었어.”

하인 아주머니는 아래쪽 수납장의 서랍을 열고 갈색 표지의 공책 한 권을 꺼냈다. 안쪽 종이에는 럼 씨의 글씨가 가득했다. 민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도 아버지의 글씨를 즉시 알아보았다.

“공구함에서 찾았단다. 네가 돌아오면 주려고 했지.”

민은 공책을 받았지만 바로 펼치지는 않았다. 표지에는 이름이 없고, 푸른 잉크로 그린 활 모양의 얼룩 하나만 있었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가 그 펜으로 기차 시간을 적고, 대합실에 붙이는 안내문을 고치고, 민의 방학 날짜를 표시하곤 했던 일을 기억했다.

“아버지가 여기에 뭘 적으셨어요?”

“난 읽지 않았단다. 고인이 된 분의 물건은 가족이 먼저 열어 볼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날 오후 민은 옛집으로 돌아왔다. 눅눅한 나무 냄새와 좀약 냄새, 부엌의 연기 냄새가 여전히 방마다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몇 년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어머니가 짠 털목도리는 여전히 의자 등받이에 가지런히 접혀 있었다. 부엌에는 입구가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다 비어 버린 깨소금 통 옆에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이 방금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마치 아버지가 안방에서 걸어 나와 밥은 먹었느냐고 물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등불이 켜져 있던 밤들

민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을 때 공책을 펼쳤다. 처음 몇 장은 기차 도착 시간과 출발 시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승객들의 이름, 역에서 발생한 소액 지출에 관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공책 중간부터 글의 내용이 달라졌다. 아버지는 밤이면 처마 밑에 자주 나타나는 사람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3월 12일. 열 살쯤 된 남자아이가 긴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 가족에게 연락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국수 한 그릇을 먹였고, 다음 날 아침 아이를 데리러 왔다.”

“6월 27일. 한 여성이 기차를 놓쳤고, 비가 내렸다. 회색 우비를 빌려주었다. 돌려보내겠다고 했지만 그럴 필요 없다.”

“11월 8일. 한 노인이 첫 기차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아직 멀었느냐고 세 번 물었다. 차를 끓여 주었다.”

민은 한 장씩 넘겼다. 그것은 일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업무 장부라고만 하기도 어려웠다. 아버지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기록했다. 누군가는 기차를 놓쳤고, 누군가는 표를 살 돈이 부족했으며, 누군가는 그저 비를 피할 자리가 필요했다. 럼 씨는 그들이 이후 어디로 갔는지는 쓰지 않았다. 자신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는지만 적었다.

공책 끝부분 가까이에서 민은 자신이 고향을 떠난 주와 정확히 같은 날짜가 적힌 한 페이지를 발견했다.

“7월 16일. 민이 6시 40분 기차를 탔다. 재킷을 받지 않았다. 아들이 눈치채지 못할 때 여행 가방에 넣어 두었다.”

민은 멈췄다. 자신이 재킷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잘 기억했다. 그날 여행 가방에는 옷 몇 벌과 신발 한 켤레, 낡은 책 한 권만 들어 있었다는 것도 기억했다. 가방 안에 재킷이 있었던 것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읽었다.

“7월 17일.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아마 도착했을 것이다.”

“7월 19일. 아직 소식이 없다. 아마 일이 바쁜 모양이다.”

“7월 25일. 민이 전화하지 않았다. 괜찮다. 젊은 사람에게는 시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뒤의 기록은 점점 드물어졌다. 원망하는 말도, 왜 그러느냐는 질문도 없었다. 그저 짧고 규칙적인 메모뿐이었다. 아버지가 매일 기차 시간을 기록하던 방식과 같았다.

“1월 3일. 민이 돈을 보내왔다. 아들에게 아직 집을 기억하고 있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8월 14일. 민이 직장을 옮겼다. 엄마가 우리 아들은 훌륭하다고 했다.”

“2월 2일. 민이 설에 오지 않았다. 길이 머니 원망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자 글씨가 더 떨려 있었다.

“10월 9일. 처마 밖의 등이 깜빡인다. 새 전구로 갈았다. 민이 돌아오면 기술자를 불러 지붕을 다시 고치라고 말해야 한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샌다.”

그 아래에는 종이 가장자리에 거의 닿을 듯 아주 작게 적힌 한 줄이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기차도 있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여전히 등불을 밝게 켜 둘 수 있다.”

아무도 제때 말하지 못한 것

민은 아주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그는 처마에서 흘러내린 물이 플라스틱 대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시계바늘 소리처럼 규칙적이었다.

그동안 그는 아버지가 화가 나서 전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설명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에 전화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그 두 생각은 서로를 뒷받침하며 침묵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공책 안에는 벽이 없었다. 그저 한 남자가 계속 기록하고, 계속 불을 켜고, 떠난 사람이 약속한 때에 돌아오기를 요구하지 않은 채 계속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민은 잠들지 못했다. 그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낡은 서랍을 열고 먼지가 내려앉은 물건들을 만져 보았다. 침대 밑 나무 궤짝에서 그는 예전의 얇은 재킷을 발견했다. 재킷은 깨끗이 세탁되어 가지런히 접힌 채, 봉해지지 않은 봉투 하나와 함께 궤짝 밑바닥에 놓여 있었다.

봉투 안에는 종이 한 장만 들어 있었다.

“민아, 네가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아마 아빠는 더 이상 지붕을 고칠 만큼 건강하지 않을 거다. 네가 떠나던 날의 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사람은 자기 인생을 시작하려면 기차를 한 번은 타야 한단다. 네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돌아오면 처마 밖에 등불 하나가 켜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만을 바란다.”

서명은 없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남기는 쪽지에 이름을 서명할 필요를 한 번도 느끼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민은 부동산 중개인에게 전화해 집을 팔려던 일을 취소했다. 그는 분명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집은 크지 않았고, 지붕은 이미 새고 있었으며, 울타리는 기울어져 있고 정원은 잡초로 가득했다. 그 집을 남겨 두는 것은 분명 금전적으로 이익이 되는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주 오랜만에 민은 모든 것을 이익으로 저울질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을 더 머물렀다. 지붕을 고치고, 대문을 다시 칠하고, 부엌을 깨끗이 치우고, 처마 밖의 전구를 갈았다. 하인 아주머니는 기술자를 찾는 일을 도와주러 왔고, 민이 떠난 뒤에도 아버지가 도시에서 돌아오는 손님들을 통해 아들의 소식을 자주 물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외롭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저 아이는 자기 삶을 세우느라 바쁜 거야.”

고향을 떠나기 전 마지막 오후, 민은 역으로 갔다. 낡은 등불은 여전히 처마 밑에 매달려 있었고, 노란빛이 젖은 벽돌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오래전 아버지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지평선을 향해 길게 뻗은 철로를 바라보았다.

한 기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불이 켜진 창문들 안에는 졸고 있는 승객도 있었고, 유리창에 얼굴을 붙인 아이들도 있었으며, 옆에 앉은 아이의 목도리를 다시 매어 주는 여자도 있었다. 민은 문득 기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갈 곳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은 집일 수도 있고, 세를 내어 사는 방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자신을 기다리며 누군가가 불을 켜 주었던 기억뿐일 수도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처를 열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으며, 오래된 전화번호 중에는 더 이상 받는 사람이 없는 것도 많았다. 민은 딸의 이름에서 멈췄다. 딸은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야. 저녁은 먹었니?”

수화기 너머가 1초 동안 조용해졌다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빠,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예요?”

민은 머리 위에서 빛나는 등불을 바라보았다. “응. 그리고 이번 주말에 시간 되면 집에 오렴.”

“무슨 일 있어요, 아빠?”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아빠가 불을 켜고 너를 기다리고 싶어서.”

통화를 마친 뒤 민은 대합실의 나무 벤치에 앉았다. 역에는 이미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바람이 처마 밑으로 스며들어 전구를 살짝 흔들었지만,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어쩌면 아버지의 사랑은 한 번도 다정한 말의 모습을 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말없이 여행 가방 안에 넣어 둔 재킷 속에, 다시 언급되지 않은 전화 속에, 원망하지 않는 글 속에, 장마가 오기 전에 갈아 둔 전구와 등불 속에 있었다. 우리를 붙잡아 둘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올 길 하나가 계속 밝게 빛나도록 말없이 지켜 준다.

민은 밤이 깊어진 뒤 집으로 돌아왔다. 길에서 바라보니 처마 곁의 노란 불빛이 작은 마당으로 비쳐 나오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는 그것을 자신을 기다리며 누군가가 서 있는 빛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아버지가 자신에게 건네준 사랑의 일부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계속 밝혀 나가야 할 빛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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