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떠도는 바람
넓은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마을 끝에,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집 한 채가 있었고, 마당 앞에는 오래된 별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 집에는 안이라는 소녀가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안에게는 장난감이 많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는 것들을 늘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질 때마다 부엌 옆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는 얼룩고양이를 알아보았고, 물이 부족하면 시무룩해지는 채송화도 알아보았으며, 경첩에 기름칠이 마를 때마다 나무 대문이 내는 가느다란 신음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안에게는 또 특별한 친구가 있었다. 바로 매일 오후 마을을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뚜렷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숲 사이로 스며들어 대나무 잎을 바스락거리게 하기도 하고, 들판 위를 뛰어다니며 벼를 물결처럼 기울게 하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장난스럽게 안의 이마 앞머리를 흩뜨려 놓고는 바나나 나무 덤불 뒤로 재빨리 숨기도 했다.
“바람아, 오늘은 어디에 다녀왔니?” 안은 자주 물었다.
바람은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안의 뺨을 살며시 스치며 처마 밑에 매달린 흙방울을 딸랑딸랑 울렸다. 안은 그것이 인사라는 것을 알았다.
그해 겨울은 일찍 찾아왔다. 하늘은 더 잿빛이 되었고, 연못 표면은 고요했으며, 길가의 풀숲은 매일 아침 하얀 서리로 뒤덮였다. 마을 사람들은 옷을 더 껴입고 창문을 꼭 닫은 채 불가에 둘러앉았다. 바람만은 여전히 모든 곳을 다녀야 했다. 골목 사이를 빠져나가고, 들판 위를 스쳐 지나가며, 나무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다시 강둑으로 달려 내려갔다.
어느 날 오후, 안은 친구를 기다리며 대문 곁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지만 평소처럼 장난스럽지는 않았다. 그저 안의 손을 살짝 건드린 뒤 떨면서 날아가 버렸다. 안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른 나뭇잎들이 작은 원을 이루며 휘말리는 것을 보았다.
“너 춥니?” 안이 뒤따라 외쳤다.
바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나무 숲 사이로 스며들며 길고 슬픈 소리를 냈는데, 마치 한숨 같았다.
옷에 대한 생각
그날 밤, 안은 추위에 떨던 바람 이야기를 외할머니에게 들려주었다. 할머니는 등잔불 곁에 앉아 낡은 털실 목도리를 정성스럽게 꿰매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바람에게는 밥그릇을 들 손도 없고, 추위를 피할 집도 없지. 하지만 할머니 생각에는 바람도 어떤 방법으로든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안은 할머니 곁에 놓인 털실 뭉치와 천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제가 바람에게 옷을 만들어 줄래요.”
외할머니는 손을 멈추더니 다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에게 입힐 옷을 만드는 건 더 쉽단다. 바람은 모든 틈으로 지나가는데, 어떻게 옷을 입힐 수 있겠니?”
“제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옷이 바람을 붙잡아 두지는 못하더라도, 바람이 지나가는 곳에 따뜻함을 남길 수는 있을지도 몰라요.”
외할머니는 안을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무 궤짝에서 남은 천 조각들을 꺼내 주었다. 낡은 치마에서 나온 노란 천 조각 하나, 해져 버린 옷에서 나온 파란 천 조각 하나, 그리고 빨간색과 갈색 천 끈 몇 개였다. 할머니는 부드러운 털실 한 타래도 안에게 주었다.
안은 밤새 창가에 앉아 있었다. 천 조각들을 나뭇잎 모양으로 자른 뒤, 서로 이어 긴 띠를 만들었다. 노란 천은 햇살을, 파란색은 강물의 빛깔을, 빨간색은 아궁이의 불을, 갈색은 추수가 끝난 뒤의 논밭을 상징했다. 안은 바람에게 필요한 옷에 소매가 있어야 하는지 깃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나비 날개처럼 가볍고 아주 넓은 천을 만들었다.
바늘에 손가락을 찔리면 안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안의 손가락에 약을 발라 주며 말했다.
“좋은 일을 한다고 꼭 아주 대단할 필요는 없단다. 진심을 담아 하기만 하면, 작은 선물도 긴 하루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지.”
마을을 가로질러 날아간 옷
다음 날 아침, 안은 천을 들고 들판으로 나갔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추수한 벼의 줄기는 그루터기만 남아 있었고, 참새 떼는 땅 위를 뛰어다니며 낟알을 찾고 있었다. 안은 흙길 한가운데 서서 두 손으로 천을 높이 들어 올렸다.
“바람아, 네 옷을 만들었어!”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은 안의 손에서 축 늘어졌다. 그러다 대숲 쪽에서 가느다란 바람 한 줄기가 달려왔다. 바람은 안의 발 주위를 빙 돌고, 천을 스치더니, 천 조각 띠를 공중으로 높이 들어 올렸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갈색 천 조각들이 공중에서 하늘하늘 흔들렸다.
바람은 천을 들판을 따라 휘감아 갔다. 사람들이 옷을 입듯 바람이 그 옷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천은 바람과 함께 날아다니며 어떤 때는 덤불 위에 넓게 펼쳐졌고, 어떤 때는 대나무 가지에 살짝 걸렸으며, 또 어떤 때는 연못 표면을 스쳐 지나갔다. 천이 지나가는 곳마다 천 조각의 색깔이 작은 햇살 조각처럼 나타났다.
안은 웃으며 달려갔다. 며칠 동안 추위에 시달린 바람이 새 옷을 걸치고 더 즐거워졌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들판 끝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천은 울타리를 훌쩍 넘어 마을 쪽으로 날아갔다. 안은 뒤쫓았지만 두 다리는 바람만큼 빠를 수 없었다. 천은 지붕을 지나고, 마을 회관 마당을 지나더니,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안은 슬픈 마음으로 돌아왔다. 천이 찢어졌거나 나뭇가지 어딘가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목수 아저씨의 집 앞을 지나갈 때, 안은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아저씨의 집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한 남자아이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방금 유일한 이불을 빨았지만, 이불은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당 앞 울타리에는 여러 색깔의 천이 바람 속에 넓게 펼쳐져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그 옷을 그곳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아저씨, 제가 천을 잠깐 빌려도 될까요?” 안이 물었다.
목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은 천을 아이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천 조각들은 온몸을 따뜻하게 하기에는 충분히 두껍지 않았지만, 아이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아이의 어머니는 안에게 따뜻한 삶은 감자 한 그릇을 건넸고, 목수 아저씨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조금 막아 주려고 작은 나무판 하나를 덧대었다.
오후가 되자 천은 다시 날아갔다. 안은 천을 붙잡지 않고, 바람이 그 옷을 어디로 가져가는지 지켜보기 위해 조용히 뒤따라갔다.
필요한 이들을 위한 선물
천은 시장 입구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의 오두막을 지나갔다. 할머니는 추운 날씨 속에서 한참 동안 앉아 있었고, 채소를 묶고 작은 동전 하나하나를 세느라 두 손이 벌겋게 얼어 있었다. 천이 할머니의 어깨에 내려앉자 할머니는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할머니는 천을 끌어당겨 두 손 위에 덮고, 알록달록한 천 조각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다음 바람은 천을 대추나무 덤불 낮은 곳에 있는 새 둥지로 가져갔다. 아기 새 세 마리가 서로 몸을 꼭 붙이고 있었다. 천은 나뭇가지에 걸려 부드러운 지붕이 되어 불어오는 찬 바람을 조금 막아 주었다. 어미 새는 마른 풀 한 줄기를 물고 날아와, 고맙다고 말하는 듯 재잘거렸다.
바람은 계속 나아갔다. 천을 마을 우물로 가져갔고, 그곳에는 소를 몰고 간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천을 어깨에 둘렀다. 천은 마을 회관 마당의 돌의자로 날아가 잠들어 있던 늙은 개의 등에 덮였다. 또 국화 덤불에 걸려 꽃잎들이 바람에 맞아 떨어지지 않도록 도왔다.
안은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그 옷은 바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바람은 그저 선물을 여기저기로 나르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진정한 따뜻함은 서로의 편안함을 조금씩 양보할 줄 알고, 누군가 추워하거나 지쳐 있거나 외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멈춰 설 줄 아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다음 날, 안은 모든 일을 외할머니에게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다 듣고 천천히 말했다.
“어떤 선물은 나누어 줄수록 더욱 커진단다. 천 한 장은 한 사람의 어깨만 가릴 수 있지만,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계속 전해진다면 마을 전체가 서로를 따뜻하게 하는 법을 알게 될 거야.”
결코 낡지 않는 옷
여러 색깔의 천은 겨울 내내 마을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 필요로 하면 사용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깨끗이 빨아 말린 뒤, 다른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마을 회관 마당의 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사람들은 천 조각과 털실 뭉치, 낡은 담요를 더 보태기 시작했다. 목수 아저씨는 지붕이 있는 나무 선반을 만들었다. 채소를 팔던 할머니는 그 옆에 따뜻한 삶은 감자 바구니를 놓았다. 전에 천을 덮었던 아이의 어머니는 작은 빵을 가져오곤 했다.
누가 처음 이런 일을 생각해 냈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때부터 마을 회관 마당 끝에는 ‘따뜻한 옷 나눔터’라고 불리는 한 구석이 생겼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물건을 놓고 갔다. 필요한 사람은 가져다 썼다. 사용한 뒤에는 깨끗이 빨아 돌려놓거나, 다른 물건을 대신 보탰다.
겨울바람은 여전히 마을을 지나갔다. 들판 위를 달리고, 대숲 사이를 빠져나가며, 안의 집 처마 밑에 매달린 흙방울을 흔들었다. 하지만 따뜻한 옷 나눔터가 생긴 뒤로 바람은 더 이상 예전처럼 슬픈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을 회관 마당을 지날 때마다 나무 선반 위의 천 조각들을 하늘하늘 흔들었는데, 마치 수백 벌의 작은 옷을 몸에 걸친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안은 오래된 별나무 아래에 서서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며시 스치는 것을 느꼈다.
“이 옷 마음에 들어?” 안이 물었다.
바람은 나무 주위를 빙 돌며 별나무 꽃 몇 송이를 안의 어깨 위로 떨어뜨렸다. 흙방울이 맑게 울렸다.
안은 미소를 지었다. 바람이 말로 고맙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람은 이 집의 따뜻함을 저 집으로 나르고, 나눌 준비가 된 손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그때부터 추운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안은 새로운 천을 더 만들었다. 더는 바람에게 꼭 맞는 옷 한 벌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을 위한 옷, 아기 새를 위한 옷, 늙은 개를 위한 옷, 그리고 조금의 따뜻함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줄 옷을 만들었다. 바람은 여전히 자신의 일을 했다. 선물들을 아주 멀리까지 나르며, 선행이 한 집 안에 가만히 머무르지 않고 마을 전체를 가로질러 날아갈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창가에서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어쩌면 바람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작은 것을 내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작은 것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전해지면서, 모두를 위한 따뜻한 계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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