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아래 놓인 종이봉투들
골목 끝에는 지붕이 낮은 집 한 채가 있다. 그 집 처마 아래에는 늘 대나무 바구니 몇 개와 가지런히 접은 작은 종이봉투들이 놓여 있다. 봉투마다 이름표도 글씨도 없고, 서로 다른 색의 점 하나만 찍혀 있다. 파란 점은 향채 씨앗, 노란 점은 콩류 씨앗, 갈색 점은 집주인이 아무도 조급하게 기다리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게 핀다고 말하곤 하는 꽃씨를 뜻한다.
그 봉투들의 주인은 남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여러 해 전부터 혼자 살고 있었지만, 집 안은 좀처럼 사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침이면 한 여자아이가 찾아와 발코니의 스티로폼 상자에 심을 공심채 씨앗을 조금 얻어 갔다. 오후에는 지나가던 자전거 수리공 아저씨가 이번 계절에는 어떤 콩을 심는 것이 좋은지 묻곤 했다. 어느 날에는 골목으로 막 이사 온 여자가 대문 앞에 한참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시들어 가는 바질 화분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남 할머니는 씨앗을 곧바로 건네는 법이 없었다. 먼저 차 한 잔을 따르고, 상대에게 어느 정도의 땅이 있는지, 언제 식물에 물을 줄 수 있는지, 집에 어린아이나 반려동물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 다음에야 알맞은 종이봉투를 골랐다. 부탁한 사람이 좁은 창턱밖에 없다면 겨자채 씨앗을 몇 알 건넸다. 햇볕이 잘 드는 마당이 있다면 껍질콩이나 수세미 씨앗을 주었다. 할머니는 씨앗도 약속과 같다고 말했다. 잘못된 곳에 건네면 그 약속은 살아가기 어렵다고.
상실에서 시작된 습관
남 할머니가 언제나 정원 일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젊었을 때 할머니는 씨앗을 골라내고, 말리고, 체로 거르는 느린 일은 시간이 너무 많은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타지에서 일하며 이른 버스를 타고, 온 가족이 불을 끈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들로 바쁘게 지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는 종종 호박 몇 개와 잘 여문 콩 몇 꼬투리, 향채 한 다발을 보내 주셨지만, 할머니는 먹을 부분만 쓰고 씨앗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할머니는 오래된 부엌에서 작은 씨앗 봉투가 가득 든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여러 계절 동안 씨앗을 정성껏 말리고 다시 싸서 그곳에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어떤 봉투는 색이 바래 있었고, 어떤 봉투에는 씨앗이 몇 알밖에 남지 않았지만, 모두 가느다란 실로 묶여 있었다. 몇몇 봉투 겉면에는 짧은 메모도 적혀 있었다. 가뭄을 잘 견딘 나무에서 받은 씨앗, 단 열매의 씨앗, 첫 장맛비가 내린 뒤에 뿌릴 씨앗.
할머니는 그 상자를 도시로 가져왔다. 처음에는 상자 위에 얌전히 놓인 채 얇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어느 날 부엌을 정리하다가 할머니는 상자를 열고 손바닥 위에 가만히 놓인 작은 씨앗들을 바라보았다. 씨앗들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눈부신 색도, 향긋한 냄새도 없었고, 그 안에 얼마나 키 큰 줄기가 자랄지, 어느 날 꽃을 피울지 알려 주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그것들이 간직될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할머니는 씨앗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잘 익은 토마토에서 씨앗을 받아 두고, 호박의 과육에서 씨앗을 골라내고, 콩 씨앗을 약한 햇볕에 말린 뒤 종이봉투에 넣었다. 모든 씨앗을 보관한 것은 아니었다. 튼튼하고, 적당히 마르고, 집 주변 환경에서 잘 자란 식물에서 얻은 씨앗만 남겨 두었다. 일을 마칠 때마다 할머니는 씨앗 봉투들을 처마 옆 선반에 올려놓았다. 아침 햇살이 들면서도 들이치는 비는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결과를 알지 못한 채 건네기
처음 몇 년 동안 골목 사람들은 남 할머니가 그저 시간을 때울 일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씨앗을 받아 가고는 심는 것을 잊는 사람도 있었다. 심기는 했지만 물을 너무 많이 줘 싹의 뿌리를 썩게 만든 사람도 있었다. 한동안 키우다가 생각만큼 자라지 않자 내버려 두는 사람도 있었다. 할머니는 한 번도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누군가 씨앗이 싹트지 않았다고 다시 찾아오면, 할머니는 먼저 화분을 어디에 두었는지, 흙의 배수가 잘되는지, 씨앗을 너무 오래 물에 담가 두지는 않았는지를 물었다. 상대가 다시 해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면, 할머니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봉투 하나를 건넸다. 할머니는 자신이 베푼 돌봄을 다른 사람이 결실로 갚아야 하는 빚으로 여기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어떤 씨앗은 한 번 실패해 봐야 흙 속에 가만히 누워 있는 법을 알게 된단다. 식물을 기르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단순하게 들리는 그 말은 골목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았다. 한때 직장을 잃은 청년이 향채 씨앗을 얻으러 온 적이 있었다. 그는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남 할머니는 그에게 작은 모종판 하나를 주고, 흙을 섞는 법을 알려 주며, 매일 물을 적당히 주라고 당부했다. 몇 주 뒤 그는 처음 수확한 바질 한 다발을 들고 왔다. 할머니는 받지 않았다. 그 다발을 골목 입구의 식당에 가져가 팔라고 했다. 그 채소 다발은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두 손으로 무언가를 해내기 시작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여자아이는 한때 꽃씨 한 봉지를 작은 화분 하나에 몽땅 뿌렸다. 식물들은 서로 빽빽하게 엉켜 약하게 자랐고, 몇 포기는 큰비가 내린 뒤 부러지기까지 했다. 여자아이는 자신이 모든 것을 망쳤다며 슬퍼했다. 남 할머니는 아이를 처마 아래로 데리고 나가 아직 튼튼한 어린 묘목 하나를 골라 더 넓은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그리고 돌본다는 것은 언제나 모든 것을 원래 자리에 그대로 두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때로는 한 새싹을 살리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뽑아 더 알맞은 곳에 옮겨 심는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골목을 바꾸어 놓은 식물의 계절들
변화는 너무 느리게 찾아와서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문 앞에 놓인 채소 화분 옆에 어느새 또 다른 화분이 놓였다. 비어 있던 벽에는 식물 바구니가 더해졌다. 한 가족은 낡은 나무 상자를 활용해 파를 심었다. 맞은편 집은 국수를 만들 때마다 향채를 사러 갈 필요가 없어졌다. 창턱에 싱싱한 깻잎 한 포기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골목 사람들은 서로 나누기 시작했다. 고추가 많은 사람은 민트 줄기 몇 개와 바꾸었다. 수세미를 키운 사람은 이웃집에 씨앗을 나누어 주었다. 남 할머니의 처마 아래 놓인 종이봉투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지만, 더 이상 씨앗을 보관하는 유일한 장소는 아니었다. 집집마다 지난 계절에 다음 계절을 위해 남겨 둔 것들을 보관할 작은 공간이 생겼다.
남 할머니는 골목 한가운데 서서 감사 인사를 받지 않았다. 그 생각이 자신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할머니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씨앗은 원래 어미 나무보다 더 멀리 가기 위해 태어난 거란다.” 할머니에게 씨앗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도 손댈 수 없을 만큼 잘 감춰 두는 일이 아니었다. 씨앗을 지킨다는 것은 씨앗이 다른 땅을 만날 기회를 주는 일이었다.
아마 그래서 할머니는 몇몇 식물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계절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고, 모든 땅이 비옥한 것도 아니며, 부탁을 받고도 곧바로 돌볼 힘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씨앗이 반드시 싹을 틔우는 데 있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흉작 같은 계절이 지나간 뒤에도 누군가 기꺼이 씨앗을 남겨 두는 데 있었다.
한 계절의 파종 뒤에 남는 것
어느 해 연말, 남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 예전처럼 오래 몸을 굽힐 수 없게 되었다. 골목 사람들은 차례로 찾아와 씨앗을 말리고, 흙을 갈아 주고, 화분을 햇볕이 드는 곳으로 옮기는 일을 도왔다. 예전에 꽃을 부러뜨렸던 여자아이는 이제 자라서, 종이봉투 하나하나에 조심스럽게 색깔 표시를 했다. 한때 전화만 기다리며 앉아 있던 청년은 모종판을 놓을 나무 선반 하나를 더 만들어 주었다.
할머니는 처마 아래 낮은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앞으로 누가 그 씨앗들을 지킬 것이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잠시 말이 없다가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다. 모두가 조금씩 남겨 둔다면 씨앗은 하나의 처마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선의 역시 한 사람의 손안에만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 대답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들은 그제야 할머니가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건넨 것이 단지 채소 씨앗이나 꽃씨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는 시작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건넸다. 작은 일이 당장 삶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내일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내심 어린 조언 하나가 누군가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사람이 여전히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다고 믿게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씨앗 봉투 하나가 풍성한 수확을 보장하지는 않더라도, 전에는 없던 기회를 열어 줄 수 있다.
오후가 되어 햇살이 처마를 비스듬히 가로지를 때, 남 할머니는 여자아이에게 갈색 점이 찍힌 종이봉투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지난 계절에 할머니가 남겨 둔 연한 노란색 작은 꽃들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아이가 꽃은 언제 피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몇 달 뒤일 수도 있고, 다음 계절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오늘 씨앗을 뿌리고 꾸준히 돌본다면, 어느 순간 아이는 시작한 날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될 거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자아이는 두 손으로 씨앗 봉투를 꼭 안았다. 골목은 낡은 벽과 낮은 지붕, 큰길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와 함께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다만 그날 이후 아이는 흙 위로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것을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초록빛 새싹 하나 뒤에는 언제나 끈기 있게 기다린 사람, 지나가 버린 한 계절,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을 만큼 오래 지켜 온 믿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삶에도 가뭄의 계절이 있고, 갑작스러운 비가 내리는 날이 있으며, 파종이 뜻대로 되지 않는 때가 있다. 씨앗이 어떤 날씨를 만날지는 우리가 정할 수 없고, 우리가 건넨 것이 정확히 어디에서 싹틀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것의 일부를 남겨 두고, 인내심으로 돌보며, 알맞은 땅을 만났을 때 그것을 건네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오늘의 아주 작은 선행 하나가, 우리가 그것을 심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어느 날 다른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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