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일 줄 아는 풍경 종

작은 마을 끝자락, 푸르른 대숲이 펼쳐진 곳에 맑고 투명한 시냇가를 따라 기와지붕을 얹은 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에는 안이라는 소녀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안은 재빠르고 마음씨가 고왔으며, 눈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났다. 아이는 풀밭을 뛰어다니고, 모양이 희한한 나뭇잎을 주워 낡은 공책에 눌러 말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안에게는 할머니가 자주 일러 주는 습관이 하나 있었다. 안은 말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만, 아직 다른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는 법은 알지 못했다.

친구들이 이야기를 할 때면 안은 곧바로 결말을 짐작하곤 했다. 할머니가 당부 말씀을 하실 때면 듣는 척하면서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에는 고양이 무옵이 낮은 나뭇가지에 털실 고리가 걸려 나무 밑에서 계속 울고 있었지만, 안은 노란 나비를 쫓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참 뒤에 돌아와 보니 무옵은 스스로 털실 고리를 풀고 처마 밑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있었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 무척 쓸쓸해 보였다.

할머니는 안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아주 좋은 귀를 가졌단다. 하지만 들을 줄 아는 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멈춰 설 줄 아는 마음도 필요하단다.”

안은 그 말을 듣고도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은 마을의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의 닭 울음소리, 방아를 찧는 소리, 둥근 돌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 대나무 꼭대기에서 서로를 부르는 새들의 소리까지 모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귀가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느티나무 아래의 선물

비가 내린 어느 오후, 안은 흙길을 따라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로 갔다. 그곳에는 한 늙은 장인이 앉아 풍경들을 고치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세어 있었고, 두 손은 솜씨가 좋았다. 그 앞에 펼쳐 놓은 천 위에는 작은 대나무 관이며 소라 껍데기, 나무 구슬, 알록달록한 끈들이 놓여 있었다.

안은 그의 곁에 앉아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는 바람 소리를 들으려고 풍경을 만드세요?”

늙은 장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하지만 좋은 풍경은 소리만 내는 게 아니야. 전에는 미처 주의하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차리게 도와주기도 하지.”

안은 특별해 보이는 풍경 하나를 발견했다. 연한 황금빛 대나무 관 다섯 개를 작은 나무 고리에 매달아 만든 것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관들이 서로 부딪히며 연꽃잎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 맑은 소리를 냈다.

“이 풍경 정말 예뻐요!” 안이 감탄했다.

“네가 원한다면 네게 주마.” 장인이 말했다. “하지만 이 풍경은 매단 사람이 귀 기울여 들을 줄 알 때에만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낸단다.”

안은 기뻐서 풍경을 품에 안았다. 장인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집으로 달려가 처마 밑에 매달았다. 저녁 내내 안은 문가에 앉아 바람을 기다렸다. 첫 바람이 지나가자 풍경이 딸랑딸랑 울렸다. 그 소리는 너무나 맑아서, 안은 작은 새 떼가 지붕 주위를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죠? 나도 잘 들을 줄 안다니까요.” 안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면 이 풍경이 무엇을 가르치려는지 알게 될 거란다.”

잊혀진 소리들

다음 날 아침, 안이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 풍경이 아주 조용히 흔들렸다. 어젯밤처럼 즐거운 소리가 아니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였고, 높아졌다가 낮아지기를 반복했다. 안은 처마로 나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대나무 관들을 흔들 만큼 세찬 바람은 불지 않았다.

안은 아주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풍경 소리 뒤에서 울타리 옆 부겐빌레아 덤불 쪽으로부터 가냘픈 소리가 들려왔다. 안이 몸을 숙여 살펴보니 어린 새 한 마리가 마른 줄기에 발이 걸려 있었다. 새는 지쳐서인지 큰 소리로 울지 못하고 있었다. 안은 조심스럽게 줄기를 풀어 새를 낮은 가지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뒤 어미 새가 날아와 짹짹거리며 새끼를 불렀다.

풍경이 다시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안은 놀랐다. 너무나 작은 소리들은 서두르는 마음으로 듣기만 한다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점심때, 안이 친구들과 구슬 쌓기 놀이를 하고 있을 때 멀리서 풍경이 다시 흔들렸다. 이번에는 컵 가장자리를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안은 손을 멈추었다. 티가 무언가 말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른 친구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겠다며 다투는 바람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안은 다가가 물었다. “티야,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티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머니의 허리가 아파서 집에 남아 콩을 말리는 일을 도와야 했다고 말했다. 놀러 오려고 서두르다가 어머니가 선물해 주신 손수건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속상했지만 친구들이 놀릴까 봐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안은 티와 함께 지나온 길로 돌아가 손수건을 찾았다. 두 아이는 풀숲 아래와 도랑가, 빈랑나무 밑을 샅샅이 살폈다. 마침내 울타리에 걸린 손수건을 발견했다. 티는 너무 기뻐서 안을 와락 껴안았다.

“내 말을 들어 줘서 고마워.” 티가 말했다.

안은 문득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멈춰 설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안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풍경이 침묵한 날

며칠 뒤, 마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늘 맑고 투명하던 시냇물이 갑자기 약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대나무 물통으로 흐르는 물도 전보다 줄어들었다. 어른들은 상류에 큰 나뭇가지나 흙과 돌이 막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모두 일이 바빠 아직 찾아가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안은 티와 친구들에게 대숲으로 가서 살펴보자고 했다. 안은 풍경을 챙겨 옆구리에 맨 바구니에 조심스럽게 묶었다. 친구들은 마른 잎이 가득한 길을 지나며 새소리와 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날 풍경은 완전히 침묵해 있었다.

안이 바구니를 흔들었다. 대나무 관들이 서로 부딪혔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풍경이 고장 난 걸까?”

티가 대답했다. “아니면 이제 우리를 도와주고 싶지 않은 걸까?”

안은 바위 위에 앉아 슬픈 얼굴로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땅속에서 아주 작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은 시냇가에 귀를 바짝 대었다. 그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고, 마치 문 뒤에 갇힌 물이 흘러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은 시냇물을 따라가다가 물길을 가로막은 쓰러진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진흙과 썩은 잎까지 끌어모으고 있었다. 물은 위쪽에 큰 웅덩이를 이루며 고여 있었고, 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시냇물은 가느다란 물줄기만 남아 있었다.

친구들은 함께 어른들을 불렀다. 잠시 뒤 마을 이장과 힘센 어른 몇 명이 도착해 나뭇가지를 자르고 쓰러진 나무를 옆으로 끌어냈다. 장애물이 치워지자 물이 바위 틈으로 콸콸 흘러들었다. 물은 다시 맑고 시원해졌고, 시냇물은 마을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안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풍경은 여전히 울리지 않았다.

그때 늙은 장인이 대나무 덤불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아이들 곁으로 다가왔다.

“왜 풍경이 울리지 않아요?” 안이 물었다.

장인은 즐겁게 노래하듯 흐르는 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풍경이 대신 말해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다. 너는 이제 네 귀와 마음으로 직접 귀 기울여 들었으니까.”

처마 밑에서 배운 교훈

그날부터 안은 조금씩 변해 갔다. 친구가 이야기를 할 때면 서둘러 끼어들지 않았다. 할머니가 당부하실 때면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고양이 무옵이 처마에서 울면 안은 걸음을 멈추고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았다. 어느 날은 무옵이 그저 쓰다듬어 달라는 뜻으로 울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화분 하나가 곧 넘어질 것이라고 알려 주기도 했다. 무옵 덕분에 안은 화분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얼른 받칠 수 있었다.

풍경은 여전히 처마 밑에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여전히 울렸지만, 그 소리는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듯했다. 어떤 때는 아침 인사처럼 경쾌하게 울렸다. 어떤 때는 누군가 안부를 물어 주길 바라는 것처럼 아주 조용히 울려 안에게 주의를 기울이라고 일러 주었다. 또 어떤 때는 완전히 침묵하여, 안이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게 했다.

어느 날 밤, 안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나요?”

할머니는 안을 난롯불 곁으로 가까이 앉힌 뒤 말했다. “아무도 모든 것을 들을 수는 없단다. 하지만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너무 작게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것을 지나치지 않지. 미소 뒤에 숨은 슬픔도, 짧은 말 뒤에 감춰진 걱정도, 눈빛에 담긴 고마움도 알아차리게 된단다. 귀 기울여 듣는다고 해서 네 목소리를 잃는 것은 아니야. 언제 말해야 하는지,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 언제 손을 내밀어 도와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것이지.”

안은 할머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처마 밖에서는 바람이 대숲 사이로 불어왔다. 풍경은 맑은 소리를 하나씩 울려 부드럽고 시원한 밤공기 속으로 퍼뜨렸다.

다음 날, 늙은 장인은 마을을 떠났다.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했고, 어느 길로 떠났는지도 본 사람이 없었다. 그는 풍경 아래에 작은 종이 한 장만 남겨 두었다. 종이에는 글자가 없고, 귀 한 쌍과 심장 하나, 그리고 펼쳐진 손 하나가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안은 그 종이를 나뭇잎을 눌러 말리던 공책 속에 간직했다. 할머니의 당부를 잊을 때마다 세 그림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일러 주었다. 아주 주의 깊게 듣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며, 할 수 있을 때 기꺼이 도와주자.

그 후로 시냇가의 집에는 언제나 풍경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마을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 것은 대나무 관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이의 부르는 소리부터 이웃의 한숨, 물길을 터 주길 기다리는 시냇물 소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기 위해 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안은 깨달았다. 늙은 장인이 자신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은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능력이었다. 한 번의 귀 기울임만으로도 사람은 다른 이에게 기쁨과 도움, 그리고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