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반 마을로 들어가는 흙길 끝에는 낮은 기와지붕을 얹은 집 한 채가 있고, 앞마당에는 오래된 별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집은 크지도 않았고, 부엌의 높은 선반 위에 놓인 나무 상자 외에는 귀중한 물건도 없었다. 나무 상자는 세월에 따라 빛이 짙어졌고, 뚜껑은 약간 휘어 있었으며, 네 모서리는 수많은 손이 만져 반들반들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장마를 담은 상자’라고 불렀다.
그 이름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지금 그 상자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란 할머니라는 것만은 모두 알고 있었다. 예순이 넘은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살고 있었다. 해마다 농사가 끝나면 할머니는 가장 좋은 씨앗들을 정성껏 골라 그늘에서 말린 다음, 작은 종이봉투마다 나누어 담았다. 콩, 호박, 옥수수, 수박 씨앗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여러 채소의 씨앗까지도 할머니는 눈으로 기억했다. 글을 많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왜 그렇게까지 수고하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했다.
“씨앗은 그저 땅에 뿌리는 것만이 아니란다. 다음 계절의 약속도 간직하고 있지.”
일찍 찾아온 건기
그해에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 건기가 일찍 찾아왔다. 계절 끝 무렵의 비는 점점 뜸해지더니 마침내 완전히 그쳤다. 들판을 가로지르던 도랑에는 갈라진 진흙 자국만 남았다. 아침이면 어른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논밭에 나갔고, 아이들은 마을 우물 가까이에서 뛰놀지 못했다. 물의 수위가 너무 낮아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옥수수 농사는 실패했다. 잎이 막 돋아나자마자 오그라들었다. 대나무 울타리 너머의 콩밭도 푸른빛을 지켜 내지 못했다. 많은 가정이 쌀을 사기 위해 닭과 오리를 조금씩 팔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조급한 마음에 새 우물을 팠고, 어떤 사람은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나 읍내로 갔다. 마을 어귀 정자 앞 찻집은 날마다 한숨 소리로 가득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을 이장 뜨 응이엠은 집집마다 남은 식량을 조금씩 내놓아 형편이 어려운 정도에 따라 나누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그 뜻을 지지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툼이 생겼다. 식구가 많은 집은 자신들이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쌀을 많이 낸 집은 똑같이 나누는 것이 공평하지 않다고 여겼다. 평소라면 그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정도였던 말들이 마른 띠풀처럼 날카로워졌다.
란 할머니는 그 어떤 말다툼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매일 오후면 여전히 처마 곁에 앉아 작은 봉투들에서 씨앗을 하나씩 꺼내 골랐다. 땅은 말라붙고 물은 바닥난 때에 할머니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보지 못한 선물
어느 날 저녁, 이웃집 딸인 센이 란 할머니에게 물을 얻으러 찾아왔다. 아이는 이제 아홉 살이었지만, 굶주린 날들 때문에 얼굴은 이미 늙어 보였다. 란 할머니는 아이에게 물 반 그릇을 따라 준 뒤, 나무 상자 안에서 작은 노란 씨앗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걸 네게 주마.”
센은 씨앗 봉투를 바라보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엇에 쓰는 거예요? 지금 심어도 자라지 않을 텐데요.”
란 할머니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를 집 뒤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야자나무 잎 몇 장으로 덮어 둔 작은 땅 조각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곳에 얕은 고랑을 파고, 바닥에 묵은 짚을 깐 뒤 옹기에서 물을 조금 떠 와 남겨 두었다.
“씨앗을 심는다고 해서 언제나 바로 채소를 얻는 건 아니란다.” 할머니가 말했다. “때로는 우리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기 위해 심는 거야.”
두 할머니와 손녀는 저녁에 처음으로 콩씨를 심었다. 다음 날 아침 센이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후에도 아이는 또 왔다. 닷새째 되던 날, 작은 초록 싹 하나가 땅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세찬 바람 한 번이면 기울어질 만큼 가늘었지만, 메마른 땅 한가운데서 보기 드문 초록빛을 품은 채 여전히 서 있었다.
센은 그 일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다시 이웃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며칠 뒤에는 마을 아이들이 기와지붕 집 앞에 몰려와 콩싹을 구경했다. 어른들은 처음에는 대문 밖에 서 있기만 했지만, 이내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를 바라보듯 그 싹을 바라보았다.
열린 나무 상자
얼마 지나지 않아 란 할머니가 나무 상자 안에 씨앗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는 소문이 마을 전체에 퍼졌다. 몇몇 사람은 씨앗을 달라고 찾아왔다. 할머니는 거절하지 않았지만, 한꺼번에 모두 내주지도 않았다. 그녀는 각각의 땅에 알맞은 씨앗 봉투를 꺼내어 그늘진 곳에 심고, 땅 위에 짚을 덮으며,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에만 물을 주라고 당부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따랐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방법은 너무 느려서 당장 며칠 동안 가족을 구할 수 없다고 여겼다. 푹이라는 남자는 란 할머니가 자신이 중요한 사람인 척하려고 씨앗을 움켜쥐고 있다고 대놓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저 침묵했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는 집에 얼마 남지 않은 쌀의 일부를 푹 부부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들의 어린아이가 열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전날 그가 한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일은 어떤 꾸지람보다도 푹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조금씩 마을 사람들은 란 할머니가 알려 준 간단한 방법들을 따르기 시작했다. 항아리가 있는 집은 쌀을 씻은 물을 받아 식물에 주었다. 짚이 남은 집은 밭고랑에 가져다 덮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메마른 개울에서 낮은 지대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도랑을 파는 일을 도왔다. 누구도 들판 전체를 구할 능력은 없었지만, 모든 가정은 작은 땅 한 조각씩은 지켜 낼 수 있었다.
뜨 응이엠 이장도 식량을 나누는 방식을 바꾸었다. 단순히 사람 수에 따라 쌀을 나누는 대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노인과 어린아이, 환자가 있는 가정을 적어 먼저 지원하기로 했다. 아직 일할 힘이 있는 가정에는 꼭 필요한 만큼만 나누어 주고, 동시에 도랑을 고치고 채소밭을 돌보며 물을 나르는 일에 참여하게 했다. 새로운 분배 방식이 누구를 완전히 만족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공동의 일이 생기자 다툼은 한층 누그러졌다.
그늘에서 자라난 것
한 달이 넘게 지나자 작은 텃밭들에 초록빛이 돌기 시작했다. 채소는 많지 않았고, 열매도 아직 한 철 수확이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히 크지 않았다. 그래도 몇 줌의 공심채와 어린 호박 몇 개, 그리고 콩밭은 가정마다 먹을 것을 조금 더 마련해 주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력하게 앉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센은 란 할머니 집 뒤의 땅을 ‘비를 기다리는 정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매일 오후 아이들은 번갈아 가며 마른 잎을 줍고, 채소밭에서 닭을 쫓아내고, 작은 물바가지로 물을 날라 주었다. 아이들은 어떤 싹이 햇빛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싹이 가려 주어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런 일들은 아이들을 바쁘게 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분주한 것과는 달랐다. 아이들은 다음 계절에 대해, 호박이 얼마나 크게 자랄지에 대해, 울타리 옆에 꽃을 더 심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오, 산맥 너머에 먹구름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엷은 회색 줄 하나뿐이었지만, 곧 짙어지고 넓게 퍼져 태양을 가렸다.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란 할머니 집의 기와지붕 위로 첫 물방울이 떨어졌을 때,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서서 빗소리가 조금씩 지붕과 길, 갈라진 논밭을 온통 뒤덮는 소리를 들었다.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다음 날 아침, 도랑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발밑에서 땅이 부드러워졌다. 작은 밭고랑의 식물들은 이리저리 기울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사람들은 새 농사를 다시 시작할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한 사람만이 결정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씨앗이 있는 사람은 씨앗을 내놓았다. 소가 있는 사람은 쟁기질을 도왔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물을 보존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풀을 뽑고 처음 돋아난 싹들을 돌보는 일이 맡겨졌다.
씨앗들이 간직한 약속
몇 달 뒤, 목반 마을은 아주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가정도 굶주림 때문에 떠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수확을 거두었다. 나무 상자 속 씨앗은 거의 모두 나누어졌다. 란 할머니는 센이 처음 심었던 노란 콩씨만 작은 봉투 하나에 담아 남겨 두었다.
뜨 응이엠 이장은 마을 전체가 함께 사용할 씨앗 보관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각 가정은 수확을 마친 뒤 가장 좋은 씨앗의 일부를 남겨 그 출처를 기억해 두고,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건네기로 했다. 사람들은 란 할머니에게 그 보관함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할머니는 그것이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 되는 것은 거절했다.
“이 상자는 내 것이 아니란다.” 할머니가 말했다. “잠시 내 손을 거쳐 갔을 뿐이지. 씨앗은 여러 사람이 함께 지켜야 해. 장맛비는 한 집 지붕에만 내리는 것이 아니니까.”
그때부터 씨앗 보관함은 정자 곁 공동 회관에 놓였다. 해마다 사람들은 그곳에 새로운 씨앗 봉투를 보탰다. 농사가 잘되는 해에는 보관함이 가득 찼다. 병충해나 날씨 때문에 수확을 망치는 해에는 씨앗을 꺼내 사용한 뒤 다음 계절에 다시 채울 방법을 찾았다. 누구도 그것을 비상 재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위해 남겨 두는 기억의 일부라고 불렀다.
나무 상자에 관한 이야기는 그저 희망만 품으면 모든 어려움이 저절로 사라진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건기는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땅은 때로 사람의 기대를 저버린다. 작은 선물 하나만으로는 노동과 조직, 공정한 결정을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고난 속에서 가장 쉽게 잃는 것이 언제나 식량이나 식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앞으로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또한 잃기 쉽다.
손바닥 안에 가만히 놓인 씨앗 하나는 거의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당장 허기를 달래 주지도 않고, 그늘을 만들어 주지도 않으며, 반드시 싹을 틔우리라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알맞은 때에 건네지면, 그 씨앗은 오늘이 아직 마지막 날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 사람에게 기억하게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씨를 뿌리고 돌보고 나누면, 메마른 땅 한 조각도 서서히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곳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로 공동체에 가장 필요한 사람은 모든 이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작은 상자를 열어 그 안에 아직 하나의 약속이 남아 있음을 모두가 볼 수 있게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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