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과 그녀의 어머니가 죽은 뒤, 왕국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 보였습니다. 떰은 왕비의 자리를 되찾았고, 조정의 신하들과 백성들은 모든 원한과 갈등이 마침내 끝났다고 믿었습니다. 선한 사람은 보상을 받고 악한 사람은 마땅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죽음만으로 사라지지 않는 증오도 존재합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깊은 원한과 집착을 품은 채 죽은 영혼은 편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깜은 극심한 분노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떰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존재였습니다. 궁중에서의 지위도, 왕의 사랑도, 결국에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말입니다. 한편 강물에 몸을 던진 계모의 마음속에는 딸을 잃은 슬픔과 오랫동안 괴롭혀 왔던 의붓딸에 대한 증오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강렬한 원한은 두 영혼을 이승에 붙잡아 두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궁궐 안에서는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왕비로 복귀한 첫날 밤, 떰이 왕 곁에서 잠들어 있을 때 어디선가 젊은 여인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때로는 귓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고,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복도 저편에서 울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떰은 놀라 눈을 떴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울음소리는 새벽이 가까워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밤에도, 그다음 날 밤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흐느낌은 점점 떰의 삶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밤, 창백한 달빛이 길게 뻗은 복도를 비추고 있을 때 떰은 흰옷을 입은 여인이 복도 끝에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천천히 고개를 들자 떰은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차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깜이었습니다.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 끝없이 울어 붉게 충혈된 눈.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가 정적을 가르며 울려 퍼졌습니다.
“언니… 내 목숨을 돌려줘…”
슬픔과 원망으로 가득 찬 그 목소리에 떰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 깜의 망령은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떤 날은 창문 밖에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고, 어떤 날은 청동 거울 앞에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때로는 어둠 속을 스쳐 지나가는 흰 그림자로만 나타났지만, 언제나 같은 말이 뒤따랐습니다.
“언니… 내 목숨을 돌려줘…”
처음에 왕은 이것이 떰의 피로와 불안이 만들어 낸 환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왕 역시 궁궐의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밤중에 촛불이 저절로 꺼지고, 굳게 닫아 둔 창문이 갑자기 열리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한여름에도 왕비의 궁전만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기운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왕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고, 떰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갔습니다.
깜의 혼령이 눈물과 원한을 가져왔다면, 계모의 영혼은 또 다른 공포를 안겨 주었습니다.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기 때문인지 그녀의 혼은 언제나 물과 함께 있었습니다. 기이한 일들이 시작된 이후 떰 주변에서는 물과 관련된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연못 수면이 거세게 출렁였고, 어느 날은 정원 안 돌다리를 건너다가 갑자기 미끄러져 물속으로 빠지기도 했습니다. 시녀들이 재빨리 구하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물통이 갑자기 뒤집히기도 했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침상과 이불이 물에 흠뻑 젖어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떰은 물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연못이나 호수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고, 밤에 물을 바라보는 것조차 피했습니다. 흐르는 물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거세게 뛰었습니다. 어의들은 여러 차례 진찰했지만 특별한 병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체력은 계속 쇠약해졌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생명력을 조금씩 빼앗아 가는 것 같았습니다.
떰을 가장 괴롭힌 것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후궁에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았습니다. 희망이 생길 때마다 무서운 악몽이 찾아왔습니다. 꿈속에서 깜은 침상 곁에 서서 증오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뒤에는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계모가 서 있었고, 차가운 돌바닥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 악몽은 떰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고, 희망은 번번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머지않아 후궁 전체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왕비가 원혼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하늘이 직접 심판을 내리고 있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처음에 왕은 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고승과 도사, 무당과 영능력자들을 불러들여 수많은 의식과 기도를 올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울음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악몽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혼들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왕의 인내심도 조금씩 사라져 갔습니다. 왕비의 궁전을 둘러싼 무겁고 음산한 분위기에 지쳐 버린 것입니다. 한때 왕을 사로잡았던 떰의 미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어느새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겨났습니다.
왕은 예전처럼 자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국정을 돌보거나 사냥에 나서는 시간이 늘어났고, 밤에는 다른 궁에서 머무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왕비의 궁전에 가득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떰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왕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때 후궁에서 가장 총애받던 여인이었던 떰은 화려한 궁궐 속에서 점점 외로운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두려움과 슬픔은 날마다 그녀의 마음을 갉아먹었고, 건강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한때 빛나던 얼굴은 창백해졌고, 잠 못 이루는 밤들로 인해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습니다.
한편 대신들은 왕에게 왕국의 후계를 위해 새로운 후궁을 들일 것을 끊임없이 권했습니다. 조정과 왕실의 압박은 해마다 커졌고, 결국 왕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전국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궁으로 들어왔습니다. 궁전에는 다시 음악과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새로운 총희들과 새로운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 속에 떰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궁전 창가에 서서 새로운 후궁들이 사는 밝은 전각을 조용히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곳에는 노래가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젊음과 미래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머무는 곳에는 침묵과 어둠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 궁궐 전체가 잠들면, 복도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어서 깜의 흐느낌이 들리고, 차가운 돌바닥 위로 떨어지는 계모의 물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과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떰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싸움은 과거 후궁에서 벌어졌던 권력 다툼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싸움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지금 그녀가 맞서야 할 상대는 증오를 놓지 못한 채 세상을 떠돌고 있는 원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 원한을 끊어 내지 못한다면, 힘겹게 되찾은 모든 것을 다시 잃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계속)


같은 카테고리의 기사
떰과 깜 : 궁중 암투와 원전의 결말 – 파트 1
씨앗을 뿌리는 이야기
침묵의 힘
미덕을 사다
어머니의 손에 감사하다
밀기울
같은 장르의 기사
떰과 깜 : 궁중 암투와 원전의 결말 – 파트 1
밀기울
코코넛 두개골
세인트 지옹
흰 국화의 전설
베텔과 아레카 열매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