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으로 이어지는 길 끝에는 오래된 별과일나무 그늘 아래에 파란 기와지붕을 인 집 한 채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집에는 어린 나가 엄마와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재빠르고, 눈이 반짝였으며, 상상력이 풍부한 여자아이였다. 식탁을 닦는 수건을 먼 왕국의 깃발로 만들기도 하고, 작은 의자를 언덕을 가로질러 달리는 말로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엄마와 외할아버지를 가끔 속상하게 하는 습관도 있었다. 늘 너무 빨리 말하고, 너무 서둘러 행동하며, 다른 사람이 말을 끝까지 하는 것을 좀처럼 기다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매일 아침이면 외할아버지는 햇살이 막 문턱에 닿을 무렵 나를 깨우곤 했다. 큰 소리로 부르지 않고, 커튼을 걷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단다.” 나는 보통 벌떡 일어나 가방을 찾으러 뛰어다니면서, 이를 닦는 동시에 엄마에게 내 계획을 이야기했다. 어떤 날에는 우유 잔을 엎질렀지만 엄마의 당부를 미처 듣기도 전에 마당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또 어떤 날에는 외할아버지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별과일나무 이야기를 하려 하면, 나는 새로 만든 연 이야기부터 끼어들어 했다. 나는 일부러 누구를 속상하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언제나 중요하고, 당장 말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주말 어느 날 오후, 작은 시장을 지나던 나는 인도아몬드나무 아래에서 반짝이는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청동 방울이었다. 용안 열매보다 조금 클 뿐이었다. 방울에는 낡아 해진 갈색 끈이 묶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주워 먼지를 닦은 뒤 귀 가까이 가져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방울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고장 났나 봐요.” 나가 말했다.
바로 그때, 옆에서 꽃을 팔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나뭇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처럼 부드러웠다.
“그 방울은 고장 난 게 아니란다. 방울을 든 사람이 진심을 말할 때만 울리지.”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진심이라는 게 뭐예요?”
“네가 정말로 생각하거나 정말로 느끼는 것이란다. 칭찬받기 위해서나 야단맞지 않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지.”
나는 방울을 들고 시험 삼아 말했다. “저는 녹두 과자를 정말 좋아해요.”
방울은 여전히 조용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엄마가 제 과자를 사 주지 않아서 조금 속상해요.”
딸랑.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나는 그 소리가 투명한 물방울 하나에 닿은 듯 맑다고 느꼈다. 꽃을 팔던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정말로 그것이 필요한 사람을 만날 때까지 방울을 간직해도 좋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를 당부했다. 그 방울은 다른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는 데 쓰는 물건이 아니었다. 방울은 오직 그것을 든 사람이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저녁 식사에서 처음 울린 소리
나는 방울을 집으로 가져와 주머니 속에 숨겼다. 저녁 식사 때 엄마가 내 접시에 생선 한 점을 올려 주었다. 나는 채소를 먹기 싫다고 말하려다가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주머니 속 방울을 손으로 만진 뒤 말했다.
“엄마, 저는 쓴 채소를 싫어해요. 그래도 엄마가 깨끗이 씻고 오래 요리하신 건 알아요. 조금 먹어 볼게요.”
딸랑.
엄마는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평소보다 착해졌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채소를 다 먹으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으며 작은 조각 하나를 더 집어 주었다.
방울 소리를 들은 외할아버지가 물었다. “네 주머니 속에 뭐가 들어 있니?”
나는 꽃을 팔던 할머니를 만난 일부터 전부 이야기했다. 외할아버지는 내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들어 주었다.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외할아버지는 방울을 살짝 만지며 물었다.
“그럼 오늘 네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진심은 무엇이었니?”
나는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방울이 좋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에는 다른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제가 가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외할아버지와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딸랑.
이번에는 방울 소리가 더 오래 울렸다. 엄마는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외할아버지는 습관을 고치는 일은 벽에 못을 박는 것과 같지 않다고 했다. 한 번만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길을 걷는 연습과 같았다. 기억해 내고 다시 시도할 때마다 나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게 될 터였다.
이야기를 기다리는 법을 배운 날
다음 날, 나는 여전히 방울을 주머니에 넣은 채 학교에 갔다. 쉬는 시간에 티가 울타리를 넘어 날아갈 수 있는 종이비행기를 자랑하러 달려왔다. 티가 말을 꺼내자마자 나는 이상한 방울 이야기를 당장 들려주려 했다. 하지만 친구의 얼굴에 가득한 기대를 보고 멈추었다.
“계속 이야기해 봐.” 내가 말했다. “네 비행기는 어떻게 날아?”
티는 종이비행기가 더 오래 활공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기까지 여러 번 접고 또 접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 왜 그 종이를 골랐는지, 날개 부분은 어떻게 접었는지, 어디에서 시험해 보았는지 물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친구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느꼈다. 티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주머니 속 방울이 살며시 울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곁을 지나가던 선생님은 내가 그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 또한 진실한 마음을 보여 주는 때가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마음속 진심이 언제나 말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집중해서 바라보는 눈빛 속에, 다른 사람이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는 행동 속에, 또는 알맞은 순간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속에 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티는 단지 비행기를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들인 노력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 린이 쉬는 시간에 자주 조용히 있는 것은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멀리 일하러 간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별과일나무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것은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처음 피어난 꽃봉오리를 보며 누군가와 함께 기뻐하고 싶어서라는 것도 깨달았다.
잊고 있던 사과와 방울
며칠 뒤, 나와 티는 학교 뒤뜰의 도랑에 띄울 종이배를 함께 만들었다. 나는 색종이를 가져왔고, 티는 돛대를 만들 대나무 막대기를 준비했다. 배가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 나는 실수로 물감 상자를 떨어뜨렸다. 파란색 자국 하나가 티의 돛에 길게 번졌다. 티가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망가뜨렸잖아.”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티가 물감 상자를 책상 가장자리에 바짝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말이 미처 튀어나오기도 전에 주머니 속 방울이 살짝 떨렸다. 나 역시 책상 곁을 서둘러 지나간 잘못이 있다는 걸 알았다.
“미안해. 내가 잘 살펴보지 않았어. 네가 괜찮다면 돛을 같이 다시 만들게.”
딸랑.
티는 여전히 속상해했지만 돌아서 가 버리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다른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번에는 내가 물감 상자를 책상 가장자리에서 멀리 두고, 더 천천히 작업했다. 종이배가 완성되었을 때 새 돛에 생긴 파란 자국은 배를 작은 구름처럼 보이게 했다. 티는 한참 바라보다가 그 파란색을 그대로 남겨 두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배는 다른 배들과 같지 않았지만, 자기들만의 표시를 갖게 된 셈이었다.
나는 사과란 모든 일이 당장 사라지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과는 두 사람이 함께 일어난 일을 바로잡을 방법을 찾기 위해 여는 첫 번째 문일 뿐이었다. 그 뒤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사과는 나뭇잎처럼 가벼워서 바람에 쉽게 날아가 버릴 터였다.
내가 방울에게 하고 싶은 말
토요일 오후, 나는 꽃을 팔던 할머니를 찾으러 시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인도아몬드나무가 있던 모퉁이에는 더 이상 꽃가게가 없었다. 나는 근처 상인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할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슬프게 돌계단에 앉았다. 주머니 속 방울은 조용했다.
나는 방울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언젠가 제가 다시 듣는 법을 잊을까 봐 무서워요. 예전처럼 계속 성급하게 굴어서 가족들을 속상하게 할까 봐 무서워요. 그래도 바로 잘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노력하고 싶어요.”
딸랑.
소리가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나는 문득 할머니가 모든 일을 쉽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물건을 건네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할머니는 그저 잠시 멈추는 방법을 건네준 것이었다. 방울이 울릴 때마다 나는 한 말 뒤에는 언제나 감정이 있고, 잘못 뒤에는 언제나 바로잡을 기회가 있으며, 다른 사람의 침묵 뒤에는 어쩌면 누군가가 들어 주기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집에 돌아오니 외할아버지가 별과일나무 아래 앉아 조심스럽게 해먹을 다시 묶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새로 핀 꽃봉오리 이야기를 막 하려는 순간, 나는 곁에 앉았다.
“이야기해 주세요. 처음부터 듣고 싶어요.”
외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별과일나무 이야기와 지난해 장마철 이야기, 처음으로 작은 화분에 별과일나무를 심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왜 그토록 별과일나무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천천히 자라기 때문이지.” 외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어떤 일은 결과를 보여 주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 나무가 가르쳐 주거든.”
나의 주머니 속에서 작은 방울이 맑은 소리를 한 번 울렸다. 집 처마 아래 서 있던 엄마도 그 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방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딸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가끔 너무 빨리 말했고, 때로는 듣는 것을 잊거나 무심코 서둘러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 위에 손을 얹고 아주 천천히 숨을 한 번 쉰 뒤, 상대방에게 물었다. “더 이야기하고 싶어?”
방울은 처음 며칠처럼 자주 울리지 않았다. 아마 나는 방울이 없어도 중요한 소리들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긴 하루를 보낸 뒤 엄마가 내쉬는 한숨 소리, 종이배가 올바른 방향으로 떠갈 때 티가 내는 웃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별과일나무 잎사귀 소리, 그리고 내가 옳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들려오는 내 마음의 소리까지.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진심을 말할 줄 아는 사람도 소중하지만, 다른 사람의 진심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모두가 서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또 하나의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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