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나 아가는 계단 아래에 떨어져 있는 파란 단추 하나를 발견했다. 둥글고 반들반들한 단추에는 가운데에 작은 구멍 네 개가 나 있었고, 햇빛이 비칠 때마다 반짝였다. 나는 단추를 주워 집 안의 자잘한 물건을 담아 두는 상자에 넣으려 했다. 그런데 손을 꼭 쥐는 순간, 아주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내 말을 들어 줄 수 있니?”
나는 손을 폈다. 단추는 여전히 손바닥 위에 가만히 놓여 있었고, 연한 푸른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실을 둘러보았다. 엄마는 부엌에 계셨고, 아빠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무늬 고양이 무엣은 창가 가까이 놓인 깔개 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방금 누가 말했지?” 내가 물었다.
“나야.” 목소리가 대답했다. “나는 귀 기울일 줄 아는 단추란다.”
집 처마 밑의 작은 물건
나는 원래 이상한 것을 아주 좋아했다. 떨어지는 나뭇잎은 나무 밑동으로 돌아가는 길을 기억할 수 있다고 믿었고, 빗방울은 구름의 웃음소리를 간직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집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하나씩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말을 하는 단추도 무섭지 않았다. 나는 단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의자를 끌어와 마주 앉은 뒤 두 손으로 턱을 괴었다.
“어느 옷에서 떨어졌니?” 내가 물었다.
“기억이 나지 않아.” 단추가 말했다. “다만 아주 많은 곳을 지나왔다는 것만 기억해. 목수 아저씨의 스웨터에 달려 있기도 했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외투에 달려 있기도 했지. 그러다 우편배달부 아저씨의 셔츠에 꿰매졌어. 그런데 세찬 바람이 마지막 옷에서 나를 떨어뜨렸단다. 그 뒤로 누군가 나를 주워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햇빛 아래에서 단추를 조심스럽게 돌려 보았다. “말할 수 있다면, 왜 더 크게 부르지 않았어?”
“작은 것들은 대개 소란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거든. 내 목소리를 들으려면 잠시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해.”
나는 조용해졌다. 문득 집 안의 아침은 언제나 소리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 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 아빠가 열쇠를 찾는 소리, 엄마가 우비를 챙기라고 일러 주는 소리. 어쩌면 그래서 나는 단추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단추는 자신이 말만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말로 꺼내지 못한 것들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고양이 무엣의 한숨 속에 담긴 슬픔도, 누군가의 발걸음에 깃든 걱정도, 아주 평범한 말 뒤에 숨은 기쁨까지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하루에 한 사람만 도울 수 있어.” 단추가 말했다. “오늘은 네가 나를 데리고 다녀 줬으면 해.”
나는 곧바로 승낙했다. 단추를 주머니에 넣었지만, 집을 나서기 전에 무엣을 돌아보았다. 고양이는 여전히 가만히 누워 있었고, 두 귀만 살짝살짝 움직이고 있었다.
“무엣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내가 물었다.
고양이는 한쪽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주머니 속의 단추가 속삭였다. “무엣은 화난 게 아니야. 어제 네가 만화를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털을 빗겨 주는 걸 잊은 게 조금 서운한 거야.”
나는 깜짝 놀랐다. 무엣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양이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미안해, 무엣아. 오늘 오후에는 네 털을 아주 오래 빗겨 줄게.”
무엣은 곧바로 몸을 돌려 내 손에 머리를 비볐다. 그때 나는 제때 건넨 사과 한마디가 방을 훨씬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교실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
학교에 가는 길에 나는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단추가 또 무엇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 듣고 싶었다. 작은 골목을 지나며 분식 장수 아주머니가 손님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고, 가로수 길을 지나며 새들이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가장 또렷한 소리는 내 곁을 걷는 사람들에게서 들려왔다.
단추는 학교 정문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가 전날 밤 잠을 잘 자지 못해 조금 피곤하다고 했다. 큰 소리로 웃고 있는 한 아이는 사실 숙제를 하지 못해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은 곧 있을 수업을 마음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애써 침착한 척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모든 사람의 모든 걱정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단추는 귀 기울인다는 것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단추가 말했다. “이미 큰 도움이 된단다.”
쉬는 시간에 나는 민이네 반 친구 민이가 플라타너스나무 아래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민이는 보통 반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아이였지만, 그날은 술래잡기에 끼지 않았다. 나는 민이 곁에 앉았지만 꼬치꼬치 묻지는 않았다. 그저 내 우유갑을 민이 옆에 놓고 말했다.
“말하고 싶으면 내가 들어 줄게.”
민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종이비행기를 동생이 찢어 버렸다고 말했다. 동생을 야단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비행기는 생일날 자신이 직접 접은 선물이라서 무척 속상하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다른 종이비행기를 접으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별일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민이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 주었다. 민이가 말을 마치자 얼굴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고마워.” 민이가 말했다. “이런 작은 일 때문에 슬퍼하는 내가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했어.”
“무슨 일 때문에 슬퍼하든 바보 같은 건 아니야.”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오늘 오후에 우리 새 비행기를 하나 접어 보자.”
주머니 속의 단추가 환하게 빛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단추가 미소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시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
오후에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들렀다. 시장은 사람들로 붐볐고, 상인들의 외치는 소리가 이어졌으며, 손수레가 타일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종이봉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단추의 말을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여기는 너무 시끄러워.” 내가 투덜거렸다.
“귀 기울인다고 해서 언제나 모든 소리를 똑똑히 들어야 하는 건 아니야.” 단추가 대답했다. “좀 더 자세히 보렴.”
나는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채소를 파는 아저씨는 단골손님에게 늘 파 몇 줄기를 더 얹어 주었다. 한 할머니는 생선 가게 앞에 서서 낡은 지갑을 손에 든 채 조용히 돈을 세고 있었다. 한 소년은 엄마를 도와 오렌지를 가지런히 줄지어 놓고 있었다. 빵 가게 옆에서는 젊은 여자가 계속 시장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추가 속삭였다. “저 사람은 여동생을 기다리고 있어. 여동생이 길을 잃을까 봐 무서워한대.”
바로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아이는 눈이 벌게진 채 천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젊은 여자는 급히 달려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두 자매는 서로를 꼭 안았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장을 빠져나온 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른들도 괜찮은지 물어봐 주길 필요로 해?”
엄마는 조금 놀란 듯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른들도 지치는 날이 있단다. 다만 가끔은 그것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있을 뿐이야.”
나는 엄마가 저녁마다 요리를 하면서 해야 할 일 목록을 확인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가 창가에 아주 오래 앉아 있곤 했던 것도 생각났다. 전에는 그저 엄마 아빠가 바쁘다고만 생각했다. 이제는 그 바쁨 뒤에 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날 밤, 저녁을 먹은 뒤 나는 곧장 방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엄마 곁에 앉아 옷을 개고, 아빠는 책장을 고쳐 놓았다.
“오늘 엄마 아빠 피곤했어?” 내가 물었다.
엄마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도 손을 멈추었다.
“조금.” 아빠가 말했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물어봐 주니 덜 피곤해진 것 같구나.”
엄마는 오늘 외할머니가 선물해 주신 사기 그릇 하나를 떨어뜨렸다고 했다. 그릇을 보면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속상하다고 했다. 아빠는 직장에서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 걱정된다고 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물을 따라 드렸다. 깨진 그릇을 고칠 방법도 없었고, 아빠의 일을 해결해 줄 수도 없었지만, 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자리로 돌아간 단추
밤이 되자 나는 단추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제의 푸른빛은 한층 옅어져 있었다.
“이제 사라지는 거야?” 내가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야. 나를 떨어뜨린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뿐이란다.”
나는 문득 시장에서 본 젊은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는 파란 외투를 입고 있었고, 단추들이 가지런하지 않게 달려 있었다. 옷깃 가까이에 있던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손에 든 단추를 바라보다가 엄마가 의자 등받이에 걸어 둔 옷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의 옷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단추를 들고 시장으로 갔다.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파란 단추를 떨어뜨린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어떤 사람은 고개를 저었고, 어떤 사람은 미소를 지었으며, 몇몇 사람은 몸을 숙여 내가 탁자 아래를 살펴보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마침내 나는 전날 보았던 젊은 여자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빵을 사러 가는 중이었다. 단추를 본 여자는 작은 탄성을 질렀다.
“정말 내 외투 단추가 맞아. 엄마가 아주 오래전에 이 외투에 달아 주신 거야.”
여자는 그 외투가 자신이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엄마가 선물해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 단추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지만, 찾을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단추를 건네주었다. 여자는 고맙다고 말한 뒤 조심스럽게 손바닥에 단추를 올려놓았다.
그 순간, 단추가 눈부시게 빛났다. 나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줘서 고마워.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네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는 거야.”
그리고 단추는 가만히 놓여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아가 배운 작은 교훈
나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귀 기울인다는 것은 기계적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귀 기울인다는 것은 마주 앉은 사람을 바라보고, 그 사람이 말을 끝까지 하도록 기다리며,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곧바로 충고하지 않는 것이다. 귀 기울인다는 것은 슬픈 눈빛, 느린 발걸음, 진심으로 기쁘지 않은 미소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날부터 나는 작은 습관 몇 가지를 바꾸었다. 엄마가 이야기를 하실 때면 장난감을 내려놓았다. 무엣이 문가에서 울면 대충 대답하지 않았다. 친구가 말없이 있을 때면 당장 기분을 풀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옆에 같이 앉아 있어 줄까?”라고 묻고, 대답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나는 여전히 다른 단추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세상에는 그렇게 특별한 단추가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았다. 이제는 마법이 없어도 귀로, 눈으로, 그리고 누군가를 걱정할 줄 아는 마음으로 귀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슬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긴 교훈이나 큰 선물, 아주 멋진 말이 아니다. 그저 곁에 있어 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진심 어린 관심은 단추처럼 작을 수 있지만, 그것은 옷 한 벌과 한 가족, 그리고 우정 전체에 따스함을 간직하게 할 만큼 큰 힘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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