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기슭에 자리한 작은 마을에 메이라는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메이의 집은 돌을 깔아 만든 길 끝에 있었고, 집 지붕을 품에 안듯 가지를 넓게 뻗은 오래된 무화과나무 곁에 자리하고 있었다. 메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매일 아침 해가 산맥 위로 떠오르기 전, 두 사람은 일어나 마당을 쓸고 텃밭에 물을 준 뒤 나무 문을 열어 풋풋한 풀 냄새를 맞이했다.
메이에게는 특별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바로 갈색 참새 나오였다. 나오는 새장 안에서 살지 않았다. 나오는 늘 울타리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메이를 따라 정원으로 날아가곤 했다. 메이는 왜 나우가 늘 자기 집을 찾아오는지 할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마 이 새는 어디에 다정한 목소리가 있는지 아는 모양이지.”
정말이지 마을에는 여러 가지 소리가 있었다. 테 아저씨 집 부엌에서 울려 퍼지는 절구 소리, 언덕 비탈에서 서로를 부르는 염소 소리, 매일 오후 지나가는 떡 장수 아주머니의 나막신 소리.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메이의 집 처마에 걸린 풍경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고들 했다. 그 풍경은 외할아버지가 작은 대나무 관들로 만든 것으로, 그곳에 아주 오래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풍경은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소리처럼 맑게 울렸다.
외할아버지는 메이에게 그 풍경이 바람이 불 때만 울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마을에서 아무도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 않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있을 때에도 풍경은 울린다고 했다. 메이는 그 말을 믿었다. 메이는 늘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풍경이 울리기를 기다렸다가, 오늘은 누가 누구를 도와주었을까 하고 짐작하곤 했다.
풍경 소리가 없는 아침
어느 날, 큰비가 내린 뒤 메이는 잠에서 깨어 평소와 달리 집 안이 무척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람 속에서 대나무 풍경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옅은 푸른빛이었고 나뭇잎에는 아직 물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풍경은 처마 앞에서 잠든 듯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메이는 풍경을 살펴보러 다가갔다. 대나무 관들은 여전히 온전했고 끈도 단단히 묶여 있었지만, 풍경 한가운데 있던 작은 잎 하나만 사라져 있었다. 그 잎은 대나무 관들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내게 하는 부분이었다. 할머니는 그 잎이 바람에 날려 언덕으로 올라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찾으면 바로 가져올게요.” 메이가 말했다.
나오는 지붕 주위를 빙빙 돌다가 함께 가고 싶다는 듯 몇 번 울었다. 메이는 작은 대나무 바구니를 메고 옥수수빵을 조금 챙긴 뒤, 언덕 비탈로 이어지는 젖은 나뭇잎 자국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비가 온 뒤의 길은 여느 때보다 미끄러웠다. 어떤 곳에서는 메이의 샌들 아래로 부드러운 흙이 푹 꺼졌고, 어떤 곳에서는 떨어진 나뭇가지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도 메이는 서두르지 않았다. 물웅덩이를 만날 때마다 메이는 평평한 돌을 찾아 옆에 놓아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쉽게 건널 수 있게 했다.
까마귀밥나무 덤불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메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작은 고슴도치 한 마리가 덩굴 사이에 다리를 끼고 있었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수록 덩굴은 더욱 단단히 감겨 들었다.
“무서워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메이가 부드럽게 말했다.
메이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고슴도치의 다리를 감고 있는 덩굴을 한 가닥씩 풀었다. 나오는 작은 부리로 마른 나뭇가지를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잠시 뒤 고슴도치는 자유로워졌다. 고슴도치는 메이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 덤불 속으로 달려갔다. 등에 반짝이는 황금빛 대나무 잎 하나가 걸려 있었지만, 풍경의 잎은 아니었다.
메이는 조금 실망했다. 나오는 그 잎을 주워 부리에 물고 바구니 안에 떨어뜨렸다. “장작불을 피울 때 가져가도 되겠다.” 메이가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길 한가운데 잎을 그냥 두면 안 되지.”
언덕 비탈의 작은 일들
두 친구는 계속 걸어갔다. 다음 굽이를 돌자 메이는 장작더미의 끈이 풀려 애를 먹고 있는 나무꾼 아저씨를 만났다. 장작은 비탈 아래로 굴러가고 있었고, 몇 개는 풀숲에 걸렸으며, 몇 개는 개울 가까이까지 떠내려가 있었다.
메이와 나오는 아저씨가 장작을 하나씩 다시 주워 모으는 일을 도왔다. 메이는 장작더미가 다시 풀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머리끈을 풀어 임시로 묶어 주기까지 했다. 나무꾼 아저씨가 고맙다고 했지만, 메이는 그저 말했다. “내일 아저씨가 머리끈을 돌려주셔도 괜찮아요.”
조금 더 가자 메이는 토끼 형제가 개울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나무다리가 빗물에 널빤지 하나를 잃어버려서, 토끼들은 어머니를 찾으러 건너편으로 갈 수 없었다. 메이는 튼튼한 나뭇가지를 찾아 빈 곳에 가로로 놓고 발로 살짝 눌러 보았다. 나뭇가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토끼를 한 마리씩 안아 다리를 건너게 했다. 나오는 먼저 날아가 길을 안내했고, 메이는 토끼 두 마리에게 천천히 가고 서로 밀치지 말라고 일렀다.
정오가 되었을 때, 메이는 언덕 비탈을 거의 다 돌아다녔지만 풍경의 잎은 아직 찾지 못했다. 메이는 큰 바위 아래에 앉아 옥수수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었다. 한 조각은 자신이 먹고, 한 조각은 나우에게 주고, 나머지 한 조각은 배고픈 친구가 있으면 주려고 곁에 놓아두었다. 나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이를 바라보다가 높은 나뭇가지 위로 날아갔다.
갑자기 참새가 연이어 울기 시작했다. 나무 꼭대기, 푸른 잎사귀 사이에 연한 갈색의 작은 물체 하나가 마른 가지에 걸려 있었다. 메이가 일어섰지만 나뭇가지는 너무 높았다. 메이는 근처에 떨어져 있던 대나무 줄기를 찾아 그것으로 나뭇가지를 끌어내렸다. 작은 잎이 메이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찾았다!” 메이가 환호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잎은 한쪽 모서리가 찢어져 있었다. 풍경에 묶을 수는 있었지만 전처럼 오래 견디지는 못할 터였다. 메이는 조심스럽게 잎을 바구니에 넣고 나우와 함께 마을로 돌아갔다.
다시 울리는 소리
돌아오는 길은 왠지 더 짧게 느껴졌다. 길에서 메이는 아침에 자신이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만났다. 나무꾼 아저씨는 새 끈으로 장작더미를 단단히 묶어 두었다. 토끼 두 마리는 개울가에 서 있었고, 어미 토끼는 새끼 토끼들의 코를 하나씩 비비고 있었다. 작은 고슴도치는 까마귀밥나무 덤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는데, 입에는 빨간 산딸기 하나를 물고 있었다.
메이는 모두에게 인사를 한 뒤 계속 걸었다. 집에 도착하자 메이는 잎을 할머니에게 건넸다. 할머니는 부드러운 실로 찢어진 모서리를 꿰맨 다음, 잎을 대나무 관들 사이에 묶었다. 메이는 처마 아래에 서서 풍경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바람을 겪은 뒤라 바람도 지친 모양이었다. 메이가 조금 슬퍼하자 할머니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언덕에서 불어 내려온 산들바람이 가볍게 스쳤다. 잎이 흔들리며 대나무 관들에 부딪혔다.
땡.
첫 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곧 더 높은 음의, 더 맑은 소리가 하나 더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풍경 전체가 집 처마 앞에서 노래하듯 울리기 시작했다. 풍경 소리는 울타리를 넘어 지붕 위를 스치고, 개울가로 이어지는 길까지 날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나무꾼 아저씨는 장작더미에 새로 묶은 끈을 바라보았다. 토끼 형제는 어미 토끼 주위를 뛰어다녔다. 작은 고슴도치는 메이의 집 문턱 앞에 산딸기를 놓고 달아났다. 아무도 풍경이 무엇 때문에 울리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모두 그날 오후가 한층 더 다정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메이는 나우를 바라보았다. 참새는 햇살 속에서 깃털을 부풀린 채 풍경 위에 앉아 있었다. 메이는 문득 외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했다. 어쩌면 풍경이 정말로 좋은 일을 세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풍경의 소리는 바람과 대나무 관들, 그리고 작은 잎이 만들어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풍경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무리 작은 친절이라도 오늘을 더욱 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날 밤, 메이는 오늘의 여행을 할머니에게 들려주었다. 할머니는 메이의 머리카락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름다운 일은 바람과 같단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변의 것들을 흔들어 놓을 때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지.”
밤이 깊어졌다. 달이 무화과나무 꼭대기에 걸렸다. 풍경은 여전히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시끄럽게 굴지도, 누구에게 관심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메이는 이불 속에 누워 귀뚜라미 소리와 나뭇잎 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풍경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미소 지으며 내일을 생각했다. 어딘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보호가 필요한 동물이 있을지도 모르며, 누군가가 더 쉽게 건널 수 있도록 평평한 돌 하나가 필요한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일도 풍경이 다시 울린다면, 메이는 귀 기울여 아주 잘 들을 것이다. 맑고 투명한 그 소리 하나하나가 방금 누군가가 조용히 뿌린 친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땅속에 묻힌 씨앗처럼 말없이 있지만, 언젠가는 아주 많은 사람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로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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