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골목 끝에 갈색 기와지붕을 얹은 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안이라는 여자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집 처마 앞에는 꽃밭 하나를 만들기에도 충분히 넓지 않은 좁은 땅이 있었지만, 할머니는 매년 봄이면 정성스럽게 땅을 일구었습니다. 할머니는 땅도 사람의 마음과 같아서, 다정함으로 보살피면 언젠가 아름다운 것이 싹튼다고 말했습니다.
안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만, 그 말을 정말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안은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씨앗은 땅속에 가만히 누워 있고, 말할 수도 없고, 뛰어다닐 수도 없으며, 스스로 마실 물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안의 눈에 감탄할 만한 것은 키가 큰 나무나 커다란 꽃, 또는 아주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새들이었습니다.
초여름이 시작된 어느 아침, 할머니는 안에게 작고 둥근 연갈색 씨앗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이건 초롱꽃 씨앗이란다.”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자라면 종 모양의 꽃이 핀단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안은 손바닥에 씨앗을 올려놓았습니다. 씨앗은 바람 한 줄기에도 날아갈 만큼 가벼웠습니다.
“정말 나무가 될 수 있어요, 할머니?” 안이 물었습니다.
“네가 땅에 심고, 물을 주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씨앗은 자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란다.”
안은 처마 가장자리에 작은 구멍을 파고 씨앗을 넣은 뒤 흙을 덮었습니다. 할머니는 안에게 낡은 초록색 물뿌리개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물뿌리개에는 긴 주둥이가 달려 있었고 옆면에는 작은 찌그러진 자국이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사용해서 더는 반짝반짝하지 않았지만, 안이 물뿌리개를 집어 들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물을 적당히만 줘. 씨앗은 보살핌을 좋아하지, 물에 잠기는 건 좋아하지 않는단다.”
안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처마 앞에는 나뭇잎을 줍고 있는 할머니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안은 물뿌리개 쪽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방금 네가 말했니?”
“나는 늘 이야기를 한단다.” 물뿌리개가 대답했습니다. “다만 누구나 귀 기울여 듣는 건 아니지.”
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날부터 안은 물뿌리개를 티혼이라고 불렀습니다. 매일 아침 안은 티혼을 들고 처마로 나가 물을 조금 떠 와서 씨앗을 심은 곳에 뿌렸습니다. 물을 한꺼번에 쏟아붓지 않고 물뿌리개를 아주 천천히 기울여, 물방울이 안개비처럼 떨어지게 했습니다.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셋째 날이 되자 안은 씨앗이 움직였는지 확인하려고 막대기로 흙을 살짝 헤집었습니다. 티혼이 서둘러 말했습니다.
“파내지 마. 어떤 일들은 빛 속에서 보이기 전에 먼저 어둠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단다.”
안은 조금 화가 났습니다. 구슬을 언덕 아래로 굴리면 곧바로 굴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안은 결과를 즉시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안은 티혼의 말을 듣고 물만 준 뒤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닷새째 되는 날, 큰비가 쏟아졌습니다. 물이 처마를 세차게 타고 흘러 좁은 땅으로 넘쳐 들어왔습니다. 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달려 나가 두 손으로 흙을 다시 모았습니다. 계단 옆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티혼이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씨앗에 물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너무 많으면 숨쉬기 힘들어진단다.”
안은 씨앗을 심은 곳 주위에 벽돌 몇 개를 둥글게 쌓아 물막이를 만들었습니다. 할머니는 그것을 보고 미소 지었습니다.
“너는 이제 보살피는 법을 배우고 있구나. 보살핌은 무조건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알맞은지 아는 것이란다.”
며칠 뒤, 날씨가 갑자기 무척 뜨거워졌습니다. 골목 밖의 나뭇잎들이 축 늘어졌습니다. 할머니의 꽃밭 흙은 작은 금이 간 선들처럼 갈라졌습니다. 안은 우물에서 물을 여러 번 길어 와야 했고, 두 어깨는 몹시 뻐근했습니다. 어떤 날은 반도 오기 전에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티혼, 정말 매일 물을 줘야 해?” 안이 물었습니다. “씨앗은 아직도 자라지 않았어.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물뿌리개는 잠시 말이 없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단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식물의 뿌리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첫걸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단다.”
안은 계단에 앉았습니다. 흙투성이가 된 자신의 발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대개 말없이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어쩌면 씨앗은 애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뿐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안은 더 이상 초록 싹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식물에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목마를 씨앗을 생각하며 물을 주었습니다. 날씨가 더우면 마른 나뭇잎을 한 겹 덮어 흙을 가려 주었고, 뿌리가 비집고 지나갈 자리가 생기도록 자갈을 옆으로 치웠습니다. 일을 마칠 때마다 안은 처마 옆에 앉아 씨앗에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쫓아다닌 이야기, 할머니가 감자빵을 만든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이제 이불을 가지런히 개는 법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첫 햇살이 계단에 막 닿았을 때 안은 아주 작은 초록 싹 하나가 흙 위로 솟아오른 것을 보았습니다. 싹은 낚싯바늘처럼 살짝 휘어 있었고, 꼭대기에는 씨앗 껍질 조각이 붙어 있었습니다.
안이 소리쳤습니다.
“할머니, 싹이 났어요!”
할머니가 나와 손을 손녀의 어깨에 올렸습니다. 티혼도 옆에서 박수를 치는 것처럼 살짝 흔들렸습니다.
“이제 알겠지?”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싹은 지난 며칠 동안 말없이 계속 일하고 있었단다.”
안은 식물의 싹 가까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초록 싹은 아주 작았고,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았습니다. 하지만 안의 마음속에서 싹은 할머니가 들려준 어떤 이야기 속 큰 고목보다도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안녕.” 안이 속삭였습니다. “내가 너를 아주 잘 보살펴 줄게.”
싹은 조금씩 자랐습니다. 처음 두 장의 잎이 나왔고, 이어서 새 잎들이 더 생겼습니다. 안은 어린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옆에 대나무 막대기를 세워 주었습니다. 매일 오후 안은 흙을 살펴보고, 벌레를 잡고, 잡초를 뽑았습니다. 티혼은 안이 전보다 키가 자랐지만 물뿌리개는 여전히 무거웠기 때문에 양손으로 물뿌리개를 잡아야 한다고 자주 일러 주었습니다.
어느 날, 골목의 아이들이 안에게 강가에 놀러 가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종이 바람개비를 가지고 왔습니다. 안도 무척 가고 싶었지만, 막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초롱꽃나무가 부러질까 걱정된 안은 집에 남아 대나무 막대기 주위의 끈을 다시 묶었습니다.
민이라는 친구가 대문 밖에서 불렀습니다.
“안아, 그냥 나무 하나일 뿐이잖아. 내일 돌봐도 돼!”
안은 바람 속에서 몸을 기울이고 있는 어린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자신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씨앗이 땅속에 누워 자신을 잊지 않을 누군가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너희 먼저 가. 나무가 똑바로 서면 갈게.”
민은 어깨를 으쓱하고 친구들과 함께 달려갔습니다. 안은 남아서 낡은 천 조각으로 나무줄기를 대나무 막대기에 묶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안의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흩날렸습니다. 티혼은 안의 발치에 놓인 채 계단 아래로 굴러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도 어린 나무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작은 잎 하나만 잃었을 뿐이었습니다. 안은 그 잎을 주워 들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자란다는 건 한 번도 잃어 본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란다. 중요한 것은 흔들릴 때마다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법을 배우는 거야.”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초롱꽃나무는 안의 어깨 높이까지 자랐고, 줄기는 가늘지만 단단했습니다. 계절이 끝나 갈 무렵의 어느 아침, 가지에 동그랗고 예쁜 꽃봉오리들이 나타났습니다. 안은 일곱 개의 꽃봉오리를 셌습니다. 안은 너무 기뻐 마당을 빙빙 뛰어다녔지만, 티혼이 일렀습니다.
“꽃봉오리를 잡아당겨서 보려고 하지 마. 꽃도 스스로 피어날 시간이 필요하단다.”
안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안은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서두르면 어떤 일은 망가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씨앗을 너무 일찍 파내면 결코 빛을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흘 뒤, 첫 번째 꽃봉오리가 피었습니다. 연보랏빛 꽃잎들이 종 모양으로 겹쳐 있었습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꽃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처마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들릴 정도였습니다. 이어 두 번째 꽃, 세 번째 꽃도 차례로 피어났습니다. 나무 전체가 작은 종들의 줄을 두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안은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안은 문득 꽃나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꽃잎의 색깔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매일 아침 물을 길어 온 일, 흙을 덮어 준 순간들,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꿋꿋이 견딘 시간들 속에도 있었습니다. 그런 말없는 날들이 없었다면 오늘 이렇게 다정한 종소리가 울려 퍼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 밤, 안은 티혼을 창가에 놓았습니다.
“고마워.” 안이 말했습니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오래전에 포기했을 거야.”
낡은 물뿌리개가 살짝 흔들렸습니다. 옆면의 찌그러진 자국이 달빛 아래에서 반짝였습니다.
“나는 그저 물을 담고 네가 잊지 않도록 일러 주었을 뿐이란다. 씨앗을 진정으로 보살핀 것은 너야.”
안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너는 내가 귀 기울여 듣는 법을 가르쳐 줬어.”
물뿌리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잠이 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물건들은 사람이 곁에 참을성 있게 앉아 있을 때에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처마 아래의 땅은 안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안은 작은 나무 몇 그루를 더 심었지만, 첫 번째 초롱꽃나무를 잊지는 않았습니다. 골목의 아기가 씨앗을 떨어뜨리면 안은 그것을 주워 아이에게 심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친구가 자신이 바라는 일을 아직 이루지 못해 슬퍼할 때면, 안은 나뭇가지와 잎이 나타나기 전에 뿌리가 먼저 자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가 정원을 돌보는 모습을 바라보며, 온화한 눈빛에 기쁨을 담았습니다.
“이제는 할머니가 예전에 했던 말을 이해하겠니?”
안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도 누군가가 참을성 있게 보살피면 정원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작은 선행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요.”
밤이 내리고, 바람이 다시 처마를 지나갔습니다. 보랏빛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처럼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안은 방에 누워 눈을 감고 귀 기울였습니다. 따뜻한 흙 아래에서 나무뿌리들이 여전히 말없이 길게 뻗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 싹트지 못한 씨앗이 아주 많을 것이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아름다운 일들도 아주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씨앗을 심고, 보살피며, 서둘러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것들은 반드시 빛을 향해 올라갈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이야기에서 얻는 작은 교훈
《처마 밑의 씨앗과 작은 물뿌리개》는 모든 성장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줍니다. 아직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들인 노력이 쓸모없다고 성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 좋은 습관 하나, 또는 작은 행동 하나도 땅에 심은 씨앗과 같습니다. 인내와 사랑으로 길러진다면, 그것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또한 알맞게 보살피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베푼다는 것은 언제나 아주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잘 관찰하고, 귀 기울이며, 다른 사람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안이 부드럽게 물을 주고, 햇볕이 강할 때 감싸 주며, 바람이 세게 불 때 지켜 주고, 나무가 스스로 꽃을 피울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법을 배운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아끼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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