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품이 좋을수록 이 세 문장을 자주 말합니다. 반드시 깊이 사귀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은 종종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진정으로 드러냅니다. 품격이 있는 사람의 말에는 자연스럽게 따뜻함과 무게가 담겨 있으며, 몇 마디만으로도 듣는 이가 따뜻한 봄바람을 쐬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들은 텅 빈 아첨의 말이나 달변을 과시하는 법이 없지만, 항상 적절한 말을 사용하여 친절과 지혜를 전달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깊이 사귈 만한 사람들은 이 세 문장을 자주 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각 문장에는 귀중한 품성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일은,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가장 위대한 용기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용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현자 순자는 “크고 어려운 일은 그 사람의 책임감을 보게 하고, 순조롭거나 역경에 처했을 때는 그 사람의 도량을 보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항상 어려움을 피하고 “저는 못해요” 또는 “너무 어려워요”라고 자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인품이 좋은 사람들은 항상 마음속에 “이 일은,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품고 있습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문장에는 믿음직스러운 품성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감히 짊어지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대표하는 베트남 인물 중 한 명은 명장 흥다오 대왕 쩐 꾸옥 뚜언입니다. 몽골-원나라 군대가 침략하여 조정이 붕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왕에게 단호한 선언을 올렸습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신하가 온 힘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설령 죽더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은 맹목적인 자신감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을 명확히 인식한 후에도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또 다른 인물인 혁명가 판 보아우는 책임감을 감히 짊어지는 정신의 빛나는 본보기입니다. 나라가 노예 상태에 빠졌을 때, 그는 앞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고 유신 운동과 동유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시련은 인간이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곳이다”라고 믿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의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은 맹목적인 자신감이 아니라, 현실을 명확히 인식한 후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선택한 용기입니다.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는 못해요”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데 익숙해져, “시도하다”라는 말에 숨겨진 잠재적인 능력을 잊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 어떤 사람은 책임을 떠넘기지만, 어떤 사람은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최종 결과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태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합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쉽게 약속하지 않지만, 조용히 행동합니다. 그들은 진정한 책임은 텅 빈 구호가 아니라, “나는 믿음직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임을 이해합니다. 이런 사람들과 사귀면, 가볍게 여겨지거나 배신당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어깨로 필요한 책임을 짊어져, 안정감과 든든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건 제 잘못입니다. 제가 고치겠습니다.”

미국의 위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수정하는 행동으로 고칠 수 없는 실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문화의 위인 공자는 “군자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귀한 것은 그 잘못을 고칠 줄 아는 것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려운 것은, 잘못을 저지른 후에 변명하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솔직하게 “그건 제 잘못입니다. 제가 고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한 사람의 겸손과 진실함을 보여주며, 동시에 그 사람의 품격을 측정하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에는 “먼저 자신을 탓하고, 그 다음에 남을 탓하라 (Tiên trách kỷ, hậu trách nhân)”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자기반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깊은 삶의 철학입니다.

베트남 역사에서 판 보아우는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의 빛나는 본보기입니다. 그는 한때 자신의 구국 노선에 오류가 있음을 인식하고, 더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용감하게 반성하고 자기비판을 했습니다. 그는 옛 견해에 고집하지 않고, 기꺼이 변화하고 자신을 새롭게 했습니다.

반대로, 현실에서 어떤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가장 먼저 변명을 찾고, 상황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며, 자신의 문제를 전혀 보지 못합니다. 팀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사람은 “그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라며 재빨리 손을 털어버립니다. 말다툼할 때, 어떤 사람은 “분명히 당신이 잘못했잖아요”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로는 이길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지고 맙니다.

“그건 제 잘못입니다. 제가 고치겠습니다”라는 문장은 몇 마디에 불과하지만, 비범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이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진실을 존중하고 체면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비판받거나 계산당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실수에서 성장하며, 진실함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겸손함은 어떤 화려한 말보다도 거리를 좁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괜찮아. 모든 건 다 지나갈 거야.”

일본의 선승 스즈키 다이세쓰는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지 말라. 그것을 받아들이라. 그러면 그것이 당신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모든 폭풍우 뒤에는 반드시 찬란한 햇살이 비추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에는 항상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가혹한 말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괜찮아. 모든 건 다 지나갈 거야”라고 말해줍니다. 이 문장에는 거창한 철학이 담겨 있지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감과 따뜻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베트남 문화에는 “큰 파도를 보고 노를 놓지 마라”라는 깊은 격려의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인내를 권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려움은 결국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베트남 문학에서는 작가 남까오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공감 능력을 능숙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작고 불행한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느꼈습니다. 그의 글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공감과 이해의 공유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텅 빈 격려의 말이 아니라, “당신의 고통을 제가 이해합니다”라는 느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힘내세요”, “강해지세요”와 같은 말로 관심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만, “괜찮아”라는 세 단어의 힘을 잊고 있습니다. 친구가 실직했을 때, “괜찮아, 천천히 찾아봐. 나는 너를 믿어”라는 말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라는 말보다 훨씬 더 따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한 일을 겪었을 때, “괜찮아, 집에 가자”라는 말은 “내가 말했잖아”라는 말보다 더 위로가 됩니다.

“괜찮아. 모든 건 다 지나갈 거야”라는 문장은 한 사람의 본질적인 친절함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드러운 말로 “당신은 강해질 필요 없어, 내가 기꺼이 당신과 함께 새벽을 기다릴게”라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사람들과 사귀면, 인생의 쓴맛 속에서도 항상 누군가가 당신에게 한 스푼의 설탕을 더해줘서, 앞길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은 거울처럼, 사람의 영혼을 비춥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믿음직하고 책임을 감당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건 제 잘못입니다. 제가 고치겠습니다”라고 감히 말하는 사람은 겸손하고 진실한 사람입니다. “괜찮아. 모든 건 다 지나갈 거야”라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따뜻하고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 문장은 의도적인 소통 기술이 아니라, 말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인간의 품성입니다.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과 함께하면, 삶은 진실함으로 따뜻해지고, 믿음직함으로 든든해질 것입니다.